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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한일 영공 잡아라!…‘FX 삼국지’

항공기 제작사 빅3 동북아서 수주戰…스텔스 對 비스텔스 놓고 지략 대결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한일 영공 잡아라!…‘FX 삼국지’

한일 영공 잡아라!…‘FX 삼국지’

뛰어난 스텔스 기능으로 북한 전략시설에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F-35.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항공기 제작사의 눈길이 동북아로 쏠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거의 동시에 차기 전투기 도입(FX) 사업을 펼치기 때문이다. 한발 앞선 나라는 일본. 올 3월 일본 방위성은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 유럽의 EADS(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사에 자국의 FX 사업에 뛰어들라는 제안요구서를 보냈다. 마감은 9월 말인데, 록히드마틴은 스텔스기로 유명한 F-35, 보잉은 F-18 슈퍼호넷, EADS는 유로파이터 타이푼(이하 타이푼)을 제안할 계획이다.

한국은 제안요구서 발송 직전 단계인 FX 사업 착수 예산 확보 작업을 하는 중이다. 올해 말 국회가 이 예산을 통과시키면 한국도 제안요구서를 보내는데, 록히드마틴은 F-35, 보잉은 F-15SE, EADS는 타이푼을 내놓을 예정이다. F-15SE는 한국 공군이 보유한 F-15E(한국 이름은 F-15K)에 스텔스 기능을 추가한 것. F-35와 F-15SE에는 스텔스 기능이 있고, F-18과 타이푼에는 없다.

스텔스기 도입 원하는 한일 공군

한일 FX 사업은 스텔스기와 비(非)스텔스기가 혼전하는 양상인데 이는 스텔스가 기종 결정의 핵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텔스란 쉽게 말해 기존 전투기보다 레이더에 덜 잡히는 기능으로, 한일 양국은 스텔스 기능에 가점(加點)을 주는 방식으로 채점한다. 따라서 가격이나 기술협력 등 다른 분야에서 월등히 좋은 점수를 얻으면 비스텔스기도 충분히 ‘간택’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타이푼은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해 한일 동시 석권을 노린다.

일본 항공자위대와 한국 공군은 스텔스기 수입을 주장하지만, FX 사업 최종 결정권을 일본에서는 방위성, 한국에서는 방위사업청이 행사하므로 어느 기종이 승리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한일 공군이 모두 스텔스기를 원한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4강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과 한국이 스텔스기 개발과 수입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한일 영공 잡아라!…‘FX 삼국지’

적의 레이더망이 파괴됐을 경우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F-15SE.

재빨리 움직이는 적기와 주로 싸우는 전투기를 제공기(制空機), 움직이지 않는 지상 목표를 주로 공격하는 전투기를 전폭기(戰爆機)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제공기가 전폭기보다 성능이 좋고 큰 편이다. 전폭기는 제공기만큼은 아니지만 적기와 싸우는 능력도 겸비하기에 ‘다목적 전투기’라고도 불린다. 미국은 스텔스 제공기인 F-22를 개발해 2005년부터 실전 배치했고, 스텔스 전폭기인 F-35는 2016년부터 양산할 계획으로 개발 중이다.

다른 국가는 미국만큼 돈이 많지 않은 탓인지 전폭기만 개발한다. 러시아는 F-22와 비슷한 크기의 스텔스기 ‘팍파(PAKFA)’를 개발하고 있는데, 2016년쯤 양산할 전망이다. 중국도 2018년 양산을 목표로 F-22와 크기가 비슷한 스텔스기 ‘젠(殲, 영어로 쓸 때는 J로 약칭한다)-20’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2018년 양산을 목표로 F-35보다 약간 큰 스텔스 실증기(實證機)를 개발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신신(心身)’ 또는 ‘ATD-X’라 부르는 스텔스기를 개발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이다. 자국 업체가 스텔스기를 개발하고 있는데도 일본 항공자위대가 스텔스기 수입을 주장하는 것은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보다 먼저 스텔스기를 보유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주변 4강이 스텔스기 확보에 혈안이 됐으니 한국 공군도 스텔스기 도입을 강조하는 FX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은 비스텔스 전폭기를 개발하는 ‘보라매 사업(일명 KFX 사업)’도 펼친다.

스텔스기라고 해서 성능이 같을 수는 없다. 국가 간 기술 격차를 고려한다면 미국의 F-22는 물론이고 F-35도 팍파나 젠-20을 이길 것으로 보인다. 스텔스기라고 해서 아예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게 잡힐 뿐이므로 무조건 비스텔스기를 이긴다고 볼 수 없다. 일본은 공중통제기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올해 9월부터 내년 사이에 4대를 도입한다. 탁월한 성능의 레이더를 갖춘 공중통제기가 있으면 비스텔스기도 스텔스기와 싸워볼 만하다. 그렇다면 값이 싼 F-18이나 타이푼을 도입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국방력을 올리는 길이 된다.

한일 영공 잡아라!…‘FX 삼국지’
비스텔스기 도입이 경제적일 수도

일본 항공자위대는 4차에 걸쳐 200여 대의 스텔스기를 도입하려고 한다. 이렇게 큰 시장을 외국 스텔스기가 다 차지하면 신신을 개발하는 일본 항공업계는 위기에 처하므로 1차 FX 사업에서는 스텔스기를 도입하지 말라는 운동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로 인해 타이푼과 F-18이 엄청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이에 호응하기 위해 보잉과 EADS는 자신들의 전투기를 선택해준다면 기술을 대폭 제공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있어 일본 FX 사업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의 FX 사업도 비슷한 구도로 흐를 전망이다. EADS는 타이푼을 선택한다면 한국의 보라매 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대폭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보잉은 한국이 결국 스텔스기로 기울 것으로 보기에, F-15K를 개조한 스텔스기 F-15SE를 내놓으려 한다. F-35는 미국이 내수와 수출을 겸해 만든 기종이지만 F-15SE는 수출 전용기다.

기존 전투기가 비행할 때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폭탄과 미사일은 레이더에 잘 잡힌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스텔스기는 기체 안에 폭탄과 미사일을 넣는데, 그 양이 적은 편이다. 따라서 스텔스기는 침투에는 ‘달인’이나 전투력은 비스텔스기보다 약하다. 그래서 많은 양의 폭탄 등을 장착한 비스텔스기가 공중통제기의 지원을 받아 적 레이더망을 파괴한 후 적진으로 침투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스텔스기를 내놓은 업체는 한일 항공업계의 지원을 받아 FX 사업 수주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한다. 스텔스기를 내놓은 업체는 러시아와 중국의 스텔스기 개발 사실을 근거로 한일도 스텔스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일 시장을 동시에 석권하는 업체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 세 업체씩 뛰어든 한국과 일본의 ‘FX 삼국지’가 숨 막히는 지략 싸움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간동아 797호 (p32~33)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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