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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도입 땐 통신비 인하?

통신사와 상관없이 휴대전화 개통…제조사와 통신사 계산 속 소비자는 환영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블랙리스트 도입 땐 통신비 인하?

블랙리스트 도입 땐 통신비 인하?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방안에 포함된 ‘블랙리스트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일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블랙리스트는 나쁜 의미 같은데, 통신요금 인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서 블랙리스트는 좋고 나쁨을 떠나 통신사와 상관없이 개인이 휴대전화를 직접 사서 개통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에는 그동안 블랙리스트 제도가 없어 통신사에서만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었고, 제조사는 통신사에만 휴대전화를 팔았다. 정부는 소비자가 직접 제조사에서 휴대전화를 사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면 휴대전화의 가격 거품이 사라지고, 보조금 같은 마케팅 비용 구조가 투명해져 결국 통신요금이 내려가리라 본다.

A씨는 경품으로 최신 휴대전화를 받았지만 금세 난감해졌다. B통신사의 혜택이 마음에 드는데 새로 받은 휴대전화는 C통신사에서 개통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A씨는 C통신사에서 개통한 뒤 곧바로 B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했다.

범용개인식별모듈 카드 넣으면 작동

A씨가 억울했던 점은 귀찮은 개통 과정 말고도 또 있었다. 자기 휴대전화로 개통했기에 통신사로부터 보조금을 한 푼도 못 받았지만, 통신비는 보조금을 받는 사람과 차이가 없는 비싼 요금제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에 A씨와 비슷한 사례가 많은 이유는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기본적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 제도란 휴대전화마다 있는 고유 국제단말기인증번호(IMEI)가 사전에 등록된 경우에만 통신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국내 통신사는 제조업체로부터 휴대전화를 사서 각각의 IMEI를 목록으로 만들어 관리했다. 이 목록에 없는 휴대전화에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블랙리스트 제도에서는 어떤 휴대전화든 범용개인식별모듈(USIM) 카드만 넣으면 사용할 수 한다. 한국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 같은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했다. 친구나 가족이 쓰다 만 중고 휴대전화에 자신의 USIM 카드만 넣으면 사용할 수 있는 것.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더라도 중고 휴대전화를 구해 쓸 수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은 외국산 휴대전화도 사용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휴대전화 도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화이트리스트 제도 덕분이다. 한번 분실이나 도난 신고가 들어온 휴대전화는 사용이 중지되기 때문에 재활용하기 어려웠다. 또 통신사가 휴대전화를 일괄 사들여 사용자에게 되팔면서 소비자의 휴대전화 구입비용을 일부 지원해주는 보조금 제도가 정착하는 데도 한몫했다.

통신사의 보조금은 결과적으로 부작용을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신상’ 휴대전화를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2년간 특정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위약금과 휴대전화 값을 한 번에 다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화이트리스트 제도의 단점은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통신사가 싫어하는 휴대전화는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기 어려웠다. 제조사는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최대 고객인 통신사의 눈치를 보느라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보다 통신사 요구에 따르는 ‘맞춤형 휴대전화’를 만들어왔다.

특히 소비자가 휴대전화의 정확한 값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제조사와 통신사는 각각 마케팅 비용으로 보조금을 내놓고 소비자에게 ‘원래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지만 2년간 비싼 특정 요금제를 이용하면 공짜로 주겠다’고 유혹한다.

정부는 전담반 만들어 적극 추진

블랙리스트 도입 땐 통신비 인하?

통신업계는 도난 문제나 보조금 혜택 등을 이유로 블랙리스트 제도의 실효성에 부정적이다.

이 말은 약정에 얽매이기 싫은 고객은 100만 원짜리 휴대전화를 제값 주고 사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휴대전화 값이 100만 원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약정이 싫은 소비자는 통신사가 보조금을 계산해 미리 올려놓은 값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요금도 마찬가지다. 통신사가 보조금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놓은 요금제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제도를 통신요금 인하 방안 가운데 하나로 논의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면 통신사의 보조금은 줄어들고, 제조사는 휴대전화의 가격 거품을 걷어내 결과적으로 통신비 인하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본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단순히 통신요금 인하 방안으로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행 방안을 정교화하기 위해 6월에 전담반을 구성할 예정이다. 전담반에는 국내 통신사 3개 사와 제조사, 학자가 참여하며 블랙리스트 제도 정비를 위한 세부적인 논의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통신사마다 각기 다른 멀티메시징서비스(MMS)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에 같은 휴대전화에서 통신사만 바꾸면 MMS를 수·송신할 수 없다. 전담반에서는 이 같은 표준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한다.

블랙리스트 제도의 단점은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휴대전화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도둑’이 늘어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통위는 ‘이통사 통합 IMEI 관리 센터’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가 이곳에 자신의 휴대전화 IMEI를 한 번만 등록하면 통신사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관리 받을 수 있도록 한 개념이다. 더불어 소비자가 자신의 IMEI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 안에 있는 IMEI를 외부로 노출할 예정이다. 방통위는 또 외국에서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휴대전화, 범죄용으로 신고된 휴대전화가 국내로 불법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 공조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에 대한 휴대전화 제조사와 통신사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통신사가 대리점에 주는 판매 장려금이 줄어들어드는 등 휴대전화 유통 과정이 투명해지지 않겠느냐”며 “제조사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 쏟아져 국내 업체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제조사 관계자는 “삼성, LG 같은 회사는 자체 유통망이 있어 새로운 제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지만, 중견 기업들은 양판점과 백화점, 인터넷 유통망을 뚫기 위해 가격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여기에 중국산 저가 휴대전화나 중고제품과도 경쟁해야 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면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 직접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며 “ 비싼 스마트폰은 보조금과 약정할인 혜택을 받으려는 고객이 더 많아 인하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제 대리점뿐 아니라 인터넷, 백화점, 하이마트 같은 양판점 등 다양한 곳에서 휴대전화를 살 수 있고, 선물로 주고받기도 편해졌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외국산 휴대전화를 사기도 쉬워졌다. 약정 할인을 받기 위해 비싼 요금제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주간동아 790호 (p50~51)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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