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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 캐릭터 들쑤시기

관음증에 빠진 한국 진실 외면 ‘섹스’에만 집착

장자연, 신정아, 그리고 덩

  •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관음증에 빠진 한국 진실 외면 ‘섹스’에만 집착

관음증에 빠진 한국 진실 외면 ‘섹스’에만 집착

덩신밍, 장자연, 신정아(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

여성은 남성 시각 속에서 두 개의 캐릭터를 담당해왔다. 페미니즘의 익숙한 방식에 의하면 그것은 ‘위대한 어머니’와 ‘위험한 창녀’다. 이미 오래된 관습이다. 근대화 이후 이성의 논리가 남성 중심의 논리라고 본다면, 그 후세 사람들은 성별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이분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왜 딱 둘인가? 셋도 넷도 아니고?

남성 캐릭터의 구성은 이와 다르다. 자유로운 보헤미안, 목가적 낭만주의, 입신양명의 성공주의, 허무주의적 룸펜, 사상적 이념주의, 일상적 소시민…. 캐릭터는 끝없이 분화한다. 남성의 수많은 자아 구성에 비해 여성은 왜 딱 둘만을 허용하는 것일까. 어머니와 창녀, 창녀와 어머니. 그것은 조강지처와 애첩, 천사와 악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대처 같은 철의 여성은 이미 남성화한 여성이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와 창녀는 따로 ‘구분된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의 몸에 있는 두 개의 자아’인지도 모른다. 남성은 여성에게 이 두 캐릭터를 동시에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뭐야, 여자가 이리저리 변신하는 포켓몬스터라도 된다는 거야?”라고 짜증을 부릴 수도 있겠다.

몇 주 전 네티즌은 바쁘고도 부지런한 일주일을 보냈다. 장자연의 편지가 친필인지 아닌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확인하는 동안이었다. 장씨의 편지에 나와 있는 실명을 공개하라는 의견에 ‘나도 한 표!’까지는 아니었지만 네티즌은 모두 공개에 목숨을 걸었다. 신정아의 책 ‘4001’은 출간되고 한 주도 지나지 않아 수만 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책에서 신씨는 모 신문기자가 택시에서 자신의 윗옷 단추를 풀려 했고, 모 대학총장이 밤늦은 시간에 만나 부적절한 행위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책은 출간 이틀 동안 40, 50대 남성에게 팔려 나갔으며, 이후 구매층은 30, 40대 여성층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날아온 소식도 있다. 외교부의 여러 영사가 중국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 국가기밀을 빼돌렸다고 알려진 ‘상하이 스캔들’이다. 언론은 중국 여성 덩신밍이 스파이거나 부정한 브로커일 거라며 외교관의 부도덕성을 연일 질타했다.

이 세 명의 여성 중 한 명은 죽은 지 1년이 됐고, 한 명은 감옥에서 나왔으며, 한 명은 중국 어디에 있는지 종적이 불분명하다. 이와 상관없이 이 여성들은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군대에 갔다고 현빈을 벌써 잊어버리다니, 쯧). 그 사이 장씨의 편지는 가짜로 판명됐다. 신씨의 누드사진은 그의 학력 위조와 상관없이 모 신문에 개재됐다. 대단한 국가기밀을 빼내가지 않았음에도 덩씨의 사진은 인터넷에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스캔들’이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오, 신이시여,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스캔들’만큼 흥미롭고 재미있고 짜릿한 이야기가 있을까. 지루하고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 그것이 ‘사랑’이든 ‘불륜’이든 ‘외설’이든 현대적 고독을 덜기엔 ‘딱’인 것이다. ‘실제 사실’보다 누군가의 침실을 엿보고 싶은 관음증에 더 빠져드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는 여성이라는 ‘창녀’ 캐릭터에 대한 흥미다. ‘창녀’ 캐릭터로 ‘보고자 하는’ 집단적 유희이자 편견이다.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자들. 그들은 곧 추문을 통해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의 욕망을 보려 한다. 추문 위에 자신의 욕망을 배설하고자 한다. 세 명의 여성, 그리고 진실은 어디 있는 것일까. 추문은 어떻게 커지고 어떻게 진화하는가.



주간동아 2011.04.11 782호 (p77~77)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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