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소식을 접하고 환호하는 이집트 시민들.
“글쎄….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겠지?”
이집트의 철권 통치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에 시달려온 이집트 사람들의 대화가 아니다. 이집트와 국경선을 맞댄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말이다. 2월 12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이었다. 무바라크 퇴진이 알려지자, 150만 가자지구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거리로 뛰쳐나와 그의 퇴진을 반겼다. 지나는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댔고, 젊은이들은 초록색의 하마스 깃발을 흔들며 기쁨을 나눴다. 일부 하마스 대원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며 “알라흐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아랍 민중을 배신한 부역죄”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가자지구 사람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반긴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강경 저항조직인 하마스와 끊임없는 유혈투쟁을 벌여왔다. 특히 2007년 하마스가 유혈쿠데타를 통해 가자지구를 접수하자, 그 지역을 봉쇄함으로써 150만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무바라크는 미국-이스라엘 동맹에 협력하면서 가자지구 주민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2월 이집트인들이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할 때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바라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정책에 협력함으로써 아랍 민중을 배신한 부역죄를 저질렀다”고 여긴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탓에 가자지구 주민은 의약품과 생필품 부족에 허덕여야 했고, 가스를 비롯한 난방연료가 부족해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음식을 만들려 해도 가스가 떨어져 굶어야 하는 정도였다. 가자지구 주민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집트로 통하는 비밀터널을 뚫어 생필품을 몰래 들여오곤 했다. 2009년 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때 현지를 취재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이집트로 통하는 터널은 놀랍게도 2000여 개에 달했다.
무바라크 정부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접경지대의 경비를 강화해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을 거들었다. 2010년 미국-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라 무바라크 정부는 국경 일대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 팔레스타인의 비밀터널을 막으려고 철근으로 지하벽을 쌓고, 철근옹벽 바깥에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나 볼 수 있는 전자감시 장치를 달았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무바라크 정부에 1억2000만 달러의 공사대금을 대줬다. 이 공사로 팔레스타인 사람이 파놓은 기존의 비밀터널 가운데 상당수의 이집트 쪽 입구가 막혀버렸다. 그래서 비밀터널을 더욱 깊이 파들어 가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터널이 허물어져 땅속에 파묻혀 죽는 일도 생겨났다.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가자지구의 상황은 심각했다.
이즈음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거의 질식 상태였다. 2007년 하마스가 유혈쿠데타로 가자지구를 접수한 뒤, 특히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가자지구에 들어가 14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뒤 이스라엘은 봉쇄 강도를 더했다. 가자지구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막아 건축 자재나 생필품 유통마저 어려웠다. 2010년 5월 국제평화운동가들이 구호품을 실은 배로 가자지구 해변에 다가가다가 9명이나 이스라엘 특공대에게 죽은 사건도 이스라엘 봉쇄정책이 낳은 비극적 결과다.
150만 가자지구 사람이 바깥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숨통은 이집트 국경과 맞닿은 라파 검문소. 이 검문소마저 미국-이스라엘의 압력에 밀린 무바라크 정부가 통제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없었다.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라파 검문소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응급환자를 싣고 카이로의 대형병원으로 들어가려던 앰뷸런스가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생겼다. 지금 라파 검문소는 정상으로 되돌아가, 출입이 예전처럼 엄격히 통제되고 있긴 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변화를 기대한다. 이집트에 새로 들어설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숨통을 옥죄는 이스라엘 봉쇄정책에 무바라크처럼 협조적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다.
라파 검문소 문 활짝 열리나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관인 국제연합 난민구제사업국(UNRWA) 관계자들은 “만일 라파 검문소의 문이 좀 더 활짝 열린다면 긴급환자 수송은 물론, 각종 의약품이나 식용유, 석유가스 등 생필품을 넉넉히 들여와 팔레스타인 사람이 어려움을 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농부에게는 판로를 잃어 밭에서 썩어나가던 토마토, 딸기, 올리브, 꽃 등을 수출할 길이 열린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이집트 카이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카이로의 정치풍향계가 어떻게 돌아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풍향계도 물론 관심거리다. 이집트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팔레스타인을 일방적으로 억누르는 봉쇄정책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국회인 크네세트의 외교국방위원장 샤울 모파즈(전 국방장관)는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한술 더 떠 “적성국가인 시리아와도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해 빼앗은 골란고원의 반환 협상에 응하는 등 아랍권의 바뀐 정치 상황에 적극 대처해 지금의 위기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논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집트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가자지구에 대한 이집트의 국경 봉쇄도 느슨해지리라 본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2006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 역임)는 “이집트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면서 가자지구 봉쇄가 풀릴 것으로 내다본다. 팔레스타인 평화협상팀을 이끄는 나빌 사스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최대 친구였던 무바라크가 사라진 지금 상황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금까지처럼 팔레스타인을 힘으로 몰아붙이기보다) 타협적인 정책을 펴도록 이끌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무바라크가 퇴진한 뒤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최고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군부 실세다. 이들은 지난날 무바라크 독재 권력의 물리적 바탕이었다. 이스라엘은 동맹국 미국의 협력 하에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지금까지의 중동지배 구도를 그대로 이어가길 바란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집트 새 정부가 어떻게 짜일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최대 관심거리다. 다름 아닌 그들의 생존권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