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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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그러진 주민 자치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4-08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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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경비원 감시에 주민끼리 의견 교환도 못합니다.”

    북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나간다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닙니다. 지방 사립대 총장, 서울대 단과대 학장, 대기업 고위 간부 등 소위 ‘한자리한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는다니 속사정이 궁금했습니다. 아파트를 찾아갔더니 누가 감시라도 하는 듯 만남의 과정조차 ‘007작전’ 수준이었습니다.

    이들은 “아파트 주민대표회의 회장과 동대표들이 아파트 관리 규약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여러 번 바꿨고, 임기를 중임에서 연임으로 늘였으며, 운영비 사용도 멋대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회장과 동대표들은 정부의 아파트 표준 관리 규약보다 주민대표회의 의결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꽃집을 운영했던 회장과 그를 지지하는 동대표들은 10여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자 일부 주민은 ‘아파트 지킴이’ 단체를 만들어 문제를 알리고 있습니다. 주민 300여 명은 ‘변화’를 꿈꾸지만 상대편의 저항은 거셉니다. 그들은 아파트 지킴이가 자기주장을 담은 유인물과 편지를 각 세대에 돌리자 경비원을 시켜 유인물을 제거하고 우편물까지 빼갔습니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유인물과 우편물 받기를 원치 않는 주민이 있어서 그랬다”고 항변합니다.

    우리의 일그러진 주민 자치
    결국 갑갑해진 아파트 지킴이 측은 관할 구청에 해결을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은 “주민 자치 영역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문제는 다수의 아파트 주민이 이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현 대표들은 “우리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출마하면 그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비판 자료를 모으고 문제를 제기한 반대편에는 누구 하나 ‘총대 멜’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에 재건축 문제까지 얽혀 있다 보니 일반 주민은 헷갈리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리도 중앙 정치판과 꼭 닮아 있을까요? 무관심 속에 방치된 주민 자치는 이제 주민 사이에 갈등과 반목을 키우는 계륵이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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