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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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으라고?

이탈리아 유적지 곳곳 초대형 광고판 설치…문화유산 후원도 좋지만 지나친 마케팅 ‘눈살’

  • 로마=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1-04-11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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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으라고?

    이탈리아는 콜로세움 복원에 필요한 2500만 유로를 마련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아 왔다.

    환자명 : 콜로세움

    나이 : 2000여 세

    거주지 : 이탈리아 로마

    직업 : 문화 관광업

    직업상 특이사항 : 365일 24시간 야외 근무



    피부과 증상 : 골 깊은 주름, 기미, 검버섯, 다크서클

    정형외과 증상 : 관절염, 골다공증, 류머티즘, 디스크, 척추협착증 등 고령에 따른 복합 증상

    내과 증상 : 스모그 공해로 인한 호흡기 장애

    이비인후과 증상 : 소음 공해로 인한 청각 장애

    고대 유적 ‘전문의’라 할 수 있는 고고학자들이 콜로세움을 정밀 진단한 뒤 대대적인 치료와 수술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병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더 깊어지는 법. 콜로세움은 공기 좋은 바닷가를 찾아가 휴양할 수도 없는 몸이다. 큰 수술비가 엄두가 안 나 눈가림식 부분 치료만 받다 보니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근원적인 치료에 무려 2500만 유로가 필요하다.

    콜로세움은 로마 거주 고령자 중 하나지만 국민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게다가 이탈리아 정부가 2011년 예산을 짜며 문화계 지원금을 대폭 줄인 탓에 콜로세움 병원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문화부 예산은 정부 총예산의 고작 0.19%인데 이는 2004년 0.34%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액수. 결국 콜로세움 보호자 로마 시가 문화부와 손잡고 나섰다. 로마 시는 지난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콜로세움 후원자를 공개 모집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모집 조건과 규정 탓에 후원자를 찾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중병 콜로세움 후원자 공개 모집

    올 1월 콜로세움에서는 콜로세움 후원자 발표 및 후원 서명식이 있었다. 이날 이탈리아 명품 구두업체 토즈(Tod’s)의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회장은 2500만 유로 상당의 복원금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서명했다. 회장의 입에서 나온 첫말은 “콜로세움 전면에 절대 대형 토즈 구두 광고를 걸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이었다. 다만 콜로세움 앞 광장에 크기 2m 미만의 복원 안내판을 세우고 거기에 토즈의 후원 참여를 알리는 극히 절제된 광고만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유적지 복원 공사를 후원하는 기업의 광고와 관련해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거금을 후원하는 기업은 유적의 명성을 등에 업고 최대한 마케팅 효과를 얻고자 한 반면 문화재 보호 관련 단체들은 “광고판이 너무 크다, 선정적인 자태로 상품을 홍보해 유적의 품위와 가치에 먹칠한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베니스 두칼레(Palazzo Ducale) 궁 복원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초대형 광고판이 이 지역 명소인 ‘한숨의 다리’를 완전히 가린 것이다.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은 다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명품 보석 불가리(Bulgari) 광고 모델인 줄리앤 무어의 초대형 사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칼레 궁 정면에 초대형 코카콜라 광고가 내걸리자 보수적인 베니스 시민들은 “광고도 광고 나름이지, 궁 앞에 음료수 병이 걸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노했다.

    여러 시민단체는 대규모 복원 사업을 핑계로 대형 광고판을 허용한 베니스 시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베니스 시는 “광고판 설치 조건이 없다면 누가 후원을 하겠느냐. 몇 달간 관광 유적지가 광고에 가리는 수모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두칼레 궁이 조각조각 무너지는 판에 코카콜라 병 하나 걸리는 걸 두고 품위니, 미관이니 운운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는 것. 도시 전체가 ‘열린 박물관’인 베니스를 관리·보수하는 베니스 문화재청은 “중앙정부에서 받은 15만 유로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계문화유산의 3분의 1이 모여 있다. 이 때문에 민간 기업, 문화 재단의 전폭적 후원 없이는 유적을 후세에게 남기기 어려운 상황. 로마의 스쿠데리에 델 퀴리날레(Scuderie del Quirinale) 전시관은 출판그룹 레오나르도 몬다도리가, 카피톨리나 미술관은 피렐리 그룹이, 에르콜라노 고고학 유적지는 HP(Hewlett-Pakard)그룹이 없었다면 복원되기 어려웠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도 마찬가지다.

    후원 사업은 다국적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은행 산하 문화재단이 문화재 복원 사업을 지원했다. 특히 볼로냐 은행(Banca di Bologna)은 지방에 있는 작은 규모의 은행에 불과하지만 볼로냐 지역 10개 성문의 복원 공사비 전액을 지원했다. 이 은행은 주고객인 볼로냐 시민에게 볼로냐 역사와 문화를 되찾게 해줘 대기업이 아니라도 문화 사업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경제적 부담이 클 때는 여러 기업이 한 프로젝트에 공동 참여해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유명 유적을 브랜드로 만든다면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8월 몬자(Monza) 상공위원회 마케팅 연구소는 유적의 브랜드 가치를 발표했다. 콜로세움이 91억 유로로 1위에 등극했다. 코카콜라 브랜드 가치의 두 배에 달한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82억 유로, 로마 트레비 분수는 78억 유로다. 유적지 인지도, 연간 방문 관광객, 지역 경제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해 나온 값이다. 델라 발레 토즈 회장은 단돈 2500만 유로로 91억 브랜드 가치를 지닌 콜로세움에 자신의 이름과 토즈 기업명을 한 귀퉁이에나마 영원히 새기게 된 셈. 이탈리아 명품 기업들은 예술과 문화 후원을 통해 역사를 이어나가는 것을 기업과 가문의 최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정부 지원 줄어 민간 자본 절실

    이탈리아의 많은 유적과 문화재가 여전히 후원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폼페이 검투사의 집 지붕 붕괴는 이탈리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이탈리아의 수치’라고 표현했고, 본디 문화부 장관은 국회의 불신임 투표에 부쳐졌다가 기사회생했다. 잔니 알레만노(Gianni Alemanno) 로마 시장은 콜로세움 복원 사업 서명식에서 “드디어 악몽이 끝난 기분이다. 긴축 재정으로 정부 지원이 줄어든 만큼 민간 자본이 절실하다. 다른 기업인도 델라 발레 화장을 따라달라”고 촉구했다.

    델라 발레 회장의 복원 사업 후원 결정은 이탈리아 기업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서명식 보름 뒤 이탈리아 관광공사 회장인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Valentino) 그룹 회장 출신 마테오 마르조토(Matteo Marzotto)는 “개인적으로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복원 공사를 맡고 싶다. 이탈리아 기업인마다 문화재를 하나씩 맡는다면 이는 확실한 투자이자 유산을 후세에게 되돌려주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문화 예산을 자르고 또 잘라도, 문화재 사랑으로 기업가들이 뭉친다면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가 꽃필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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