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9

2011.01.03

사랑의 가치 당신에게 갑니다

이수동 작가의 설레고 따뜻한 신년맞이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1-01-03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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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가치 당신에게 갑니다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 분)의 그림을 그린 이수동(52) 작가. 싸이월드 미니홈피마다 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아래 끼적인 글귀는 홈피 주인의 심사를 짐작게 했다. ‘해후’ ‘그녀가 온다’ ‘당신이 잠든 사이’…. 제목에서 보듯 그의 시선은 사람과 사랑을 응시한다. 지난 10년간 그의 작품이 폭넓은 사랑을 누리는 이유다.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송아당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이수동’ 이름 석 자를 알린 일등공신은 ‘가을동화’. 그 다음은 싸이월드다. 그는 본디 대구에서 활동하던 지역작가였다. 2004년에야 서울로 올라왔다. 아내와 두 딸을 두고 혼자 생활하려니 아무래도 마음이 헛헛했다. 쉴 새 없이 작업하면서 미니홈피에 글과 그림을 부지런히 올렸다. 1촌이 1800명으로 늘고 이름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미니홈피를 닫았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은 정말 감사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오픈되니 곤란한 부분이 생기더군요. 원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 그림 값에 대한 핀잔, 심지어 그림을 자주 그린다는 지적이 가감 없이 날아왔어요. 고민 끝에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

    그는 최근 그림과 에세이를 모아 ‘토닥토닥 그림편지’(아트북스 펴냄)라는 책을 냈다. 그림마다 일기처럼 간단한 감상을 덧붙였다. “달君! 어서 오시게. 이 밤 자네와 한잔하며 긴 이야기 나누고 싶네”(어서 오시게), “많이 미안하거나 혹은 너무 보고 싶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당장 장미꽃 한 다발 사들고 문을 나서세요”(장미꽃 한 다발). 용기와 위로를 주는 그림과 글이다.



    “언제부턴가 주제를 ‘사랑’으로 정했어요. 큰딸이 제가 열렬히 사랑하던 스물다섯 살이 됐어요. 딸과 팬들에게 제가 넘어지고 부서지며 배운 사랑의 가치를 전하고 싶었어요. ‘피곤하고 힘들어도 보고 싶으면 논밭을 가르고 마중 가라’(마중), ‘좋은 술이 생기면 곧장 한걸음에 달려올 친구들을 불러라’(좋은 술이 생겼다)는 사소한 메시지들이죠.”

    사랑의 가치 당신에게 갑니다

    꽃 피워 놓고 기다리다, 61×90.9cm, 2010년, 꿈꾸는 마을, 50×25cm, 2010년, 좋은 술이 생겼다, 24.2×33.4cm, 2010년 (왼쪽 그림부터).

    꼭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리는 건 아니다. 가족, 친구, 은사 등 사람 사이 따뜻한 모든 감정을 대상으로 한다. 그림 그리는 남편과 아빠로 가족에게 소홀했던 탓에 가족 사랑이 특히 각별하다. 40대 후반에 이름을 얻기 전까지 살림은 아내가 미술학원을 하면서 꾸렸다.

    “돈도 못 벌고 방랑벽은 넘치고. 화가는 구조적으로 가족한테 잘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특히 대구 마초에 술을 좋아해 아이들이 저를 싫어했죠. 저는 예술을 한다지만, 가족을 엮는 90%는 돈과 사랑이니까요. 그래서 컬렉터들한테 성의를 다합니다.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물감 걱정 없이 그림 그리고 딸들과도 사이가 회복된 거니까요.”

    사랑의 가치 당신에게 갑니다

    男子, 40.9×53cm, 2010년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가만히 캔버스를 들여다보다가 글귀를 보면 내용이 맞아떨어진다. 그의 영감을 건드리는 것은 시, 꿈, 그리고 착시. 시 글귀에서 화폭을 구상하고 꿈과 신기한 이미지에서 그것을 발전시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시는 글로 된 비주얼인데, 차츰 덜 보게 되더군요. 쉰이 넘은 지금은 시가 말하는 게 내 생활이구나 싶어요. 반수면 상태에서 꿈을 꾸거나 한 곳을 응시할 때 보이는 착시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방법도 자주 씁니다. 10년 전에는 그림이 꼿꼿하고 외로웠는데, 지금은 많이 밝아졌어요. 제 마음이 변한 까닭이죠. 2011년에도 묘하게 설레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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