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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불어라! 신바람 풀려라~ 2011 04

신명 코리아에 세계인도 ‘덩실’

사물놀이·난타에서 한류·찜질방 문화까지…남다른 열정, 타인과의 공감 극대화가 원천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신명 코리아에 세계인도 ‘덩실’

신명 코리아에 세계인도 ‘덩실’

한국의 역동적인 ‘신명’을 서양의 공연 방식으로 재해석한 난타.

#1. ‘둥둥둥둥 쿵타닥 쿵쿵…’. 4명의 요리사가 칼, 국자, 도마, 냄비 등 주방기구를 타악기 삼아 사물놀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주방에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비언어극 ‘난타(Nanta)’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꼭 봐야 하는 공연이 됐다. 실제 ‘난타’를 상연하는 전국 4곳의 난타전용관에서는 공연을 따라하며 신이 난 상태로 공연장을 나서는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다.

#2.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워리어스 웨이’는 장동건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관객들의 영화평은 엇갈렸지만 공통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 좁은 복도에서 인류 최고의 전사인 양(장동건 분)이 검을 휘두르며 총을 쏘는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 이때 신명 나는 사물놀이 연주가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누리꾼들은 “사물놀이와 총 소리가 어우러져 내 심장도 뛰는 것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고 전율이 일었다”고 호평했다. 사물놀이와 액션 영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광경에 모두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이 두 사례는 사물놀이를 상업적으로 잘 활용한 문화상품의 대표 격이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의 4가지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1978년 김덕수를 중심으로 한 놀이패가 풍물놀이를 무대예술로 각색한 것이다. 사물놀이는 특유의 긴장과 이완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적인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대표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사물놀이’라는 단어가 등재됐을 정도. 난타는 이에 착안해 기획 단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사물놀이 장단에 서양의 공연 양식을 접목한 작품이다. 1997년 초연된 이래 2010년 상반기까지 1만6500여 회 무대에 올랐고, 540만여 명이 관람했다. 난타를 제작하는 PMC프로덕션 측은 “세계 250여 개 도시를 돌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렸다”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신명’에 반한다”고 자부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초자연적 상태로 가는 것

전문가들은 사물놀이가 세계에서 통하는 이유로 ‘신명’을 꼽는다.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송혜진 교수는 “신명은 무속의 영향에서 나온 것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초자연적인 상태로 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신명은 한국의 전통문화뿐 아니라 민족성 저변을 이루고 있었지만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그 특징이 점차 사라지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통예술에는 원형에 가까운 신명이 오롯이 드러난다. 송 교수는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진다든지, 낮은 음에서 시작해 높은 음으로 가는 등 즉흥적인 것이 전통예술의 특징”이라며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이완시키며 신명으로 이끈다”고 전했다.



신명은 사물놀이뿐 아니라 판소리, 산조, 종묘제례악 등 여러 전통 음악과 강강술래, 무속춤, 농악춤 같은 전통 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조는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 점증적으로 빨라지는 매우 정제된 기악독주곡이다. 송 교수는 “해외에서 전통 공연을 하다 보면 유난히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감동을 받는 관객이 많다. 신명은 타인에게 전염된다”고 덧붙였다.

과거에 비해 한국인에게서 신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하나, 한국인의 피에는 여전히 신명이 흐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송 교수는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몇몇 외국인 지휘자가 흥미로운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본에 먼저 들른 지휘자는 악보대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일본 오케스트라의 능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한국 오케스트라를 만나면 이내 실망한다. 일본 오케스트라에 비해 한국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 하지만 실제 공연에 들어가면 예상치 못했던 다이내믹한 힘을 체험하고 놀란다. 심지어 한국 오케스트라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악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신명의 심리학’ 저자이자 심리학 전공자인 한민 박사는 신명을 문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신명을 ‘자신의 가치가 최적으로 구현되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통칭’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신명의 3요소는 자기 가치의 구현, 공감, 자기표현이라고 분석한다. 이어지는 한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타인 앞에서 자신의 가치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신명을 경험한다. 자기 가치가 구현됨으로써 느끼는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 등의 감정은 주변 사람들과의 공감 과정을 통해 극대화되고, 이 공감을 바탕으로 신명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다채롭고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명을 문화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꼭 전통예술에만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이미 한국인 고유의 신명을 반영한 문화 콘텐츠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류’다. 가수 ‘소녀시대’ ‘카라’ 등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 역시 신명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해외 팬들이 한국 가수에게서 느끼는 큰 특징은 관객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표현력이 탁월하다는 점. 한 박사는 “한국 가수가 해외 가수보다 음악성이나 가창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더라도 관객을 몰입시키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능력은 최고라고 평가받는다. 또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능력도 단연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구성이나 기술, 배우의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더라도 이를 보는 이들이 극에 공감하고 몰입하도록 만드는 힘이 탁월하다는 것. 그것이 한국 드라마의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분석이다. MBC 장근수 드라마 국장은 배우들의 열정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 국장은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며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본능에서 나온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국인이 살아왔던 것 자체가 신명

신명 코리아에 세계인도 ‘덩실’

최근 일본 가요계에서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소녀시대’.

한국인의 정(情) 역시 신명의 3가지 요소인 자기 가치의 구현, 공감, 자기표현력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문화와 이를 반영한 공간들도 신명에서 나온다. 노래방, 찜질방, 온천 테마파크 등이 그 예다.

한국의 신명은 독특한 문화 현상이다. 한 박사는 “한국과 비교해 중국은 다른 이와의 공감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문화이고, 일본은 자기표현의 수위가 낮은 문화”라고 비교분석했다. 서구권의 경우에는 ‘내가 곧 네가 되고, 네가 곧 내가 된다’는 신명의 개념을 생소하게 여기고 대부분이 ‘신명’이란 용어를 잘 모른다. 이 때문에 사물놀이, 난타를 비롯해 한국의 신명을 나타내는 문화를 만난 이들은 그 강렬하고 독특한 경험에 큰 매력을 느낀다.

타악 솔리스트 최소리와 소리연구소는 2007년부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리랑 파티’라는 공연을 하고 있다. 전통 타악 연주에 한국무용, 창작무용, 태권도, 비보이 등 온갖 춤이 어우러지는 이 공연은 유명세를 타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도 선을 보였다. 소리연구소 곽동아 실장은 “아리랑 파티는 최소리 감독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전 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 끝에 만든 공연이다. 해외 관객들이 우리 고유 예술의 역동성에 크게 놀라고 그 반응 역시 뜨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높게 평가되는 신명이 국내에선 점점 잊혀가는 것도 사실이다. 한 박사는 “신명을 과거의 것으로, 전통예술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단정 짓는 이가 많다. 우리가 신명과 유사한 개념의 서구 것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신명에는 소홀하다”고 비판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몰입(flow)해야 하고 열정(passion)을 가지고 톨레랑스(관용)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몰입, 열정, 타인과의 나눔을 다 포함한 것이 신명이다.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고, 그대로 살아왔던 것 자체가 바로 신명이다.”



주간동아 2011.01.03 769호 (p26~28)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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