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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열두 살에 마주친 ‘삶의 무게’

‘영원의 아이’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열두 살에 마주친 ‘삶의 무게’

열두 살에 마주친 ‘삶의 무게’

덴도 아라타 지음/ 북스피어/ 720쪽, 848쪽/ 각 권 1만7000원, 1만8000원

잊고 살던 친구를 명동거리에서 만난 듯 반가웠다. ‘마이 페이버릿(my favorite)’ 일본 소설 중 하나인 ‘영원의 아이’가 업그레이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출판사와 역자 모두 바뀌었고, 3권에서 2권으로 줄면서 두께도 훨씬 두툼해졌다. 덴도 아라타의 이 작품은 1999년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뒤 곧 절판됐다. 머리도 마음도 말랑말랑하던 10년 전 감상을 되살릴 수 있을까.

“계속 버림받아온 우리니까 이제 와서 신이 구원해줄 리 없어.”

“그럼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역시 우리 자신이라는 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험준한 산을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열두 살 또래인 유키, 료헤이, 쇼이치로는 후타미 병원 제8병동에서 만났다. ‘조금 이상한’ 아이들이 모인 제8병동의 또 다른 이름은 동물원. 이곳 아이들도 각자의 증상을 빗댄 동물 애칭으로 불린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자기 몸에 물을 뿌려대는 유키는 ‘루핀(돌고래, 돌핀의 애칭)’, 엄마가 지진 담뱃불 흉터가 온몸에 가득한 료헤이는 ‘지라프(기린)’, 어두운 곳에만 가면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쇼이치로는 ‘모울(두더쥐)’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따뜻하고 안전한 둥지가 아니다. 몸도 마음도 덜 자란 나이에 부모에게 학대받은 세 아이는 가족은 물론 자신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으로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신이 아닌 누구도 구원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세 아이는 목숨을 걸고 신의 산 정상까지 오른다. 안개 속에서 고대하던 ‘빛나는 사람’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숨죽여 구원을 기다린다. 하지만 지나가던 등산객의 “그것은 태양광이 공기 중 물방울에 번지면서 후광이 비치는 ‘브로켄 현상’”이라는 말에 고사리손으로 돌을 던지며 “거짓말”이라 부르짖는다.



1년간 병원생활을 마친 세 아이는 뿔뿔이 흩어졌다가 17년 뒤 재회한다. 우연한 만남을 가장했지만 료헤이와 쇼이치로는 계속 유키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성인이 된 이들은 간호사, 변호사, 경찰관으로 치열한 삶을 이어간다. 어떻게든 과거의 나를 지우고 인정받기 위해 헌신적이고 금욕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끝내 학대받은 대로 다른 사람들을 할퀴고, 연인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하는 등 상처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한다.

소설은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물론 연달아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도 흡입력 있다.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한편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드러낸다는 점에서 ‘영원의 아이’는 성장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등장인물들. 애처롭지만 강인하고, 뒤틀린 한편 밝은 소년 소녀의 모습은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영원의 아이’는 2000년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학대를 받은 건 아니지만, 뜨거운 목욕탕 물로 등을 밀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는 순간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수년간 아이들의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괜찮아, 어쨌든 가족이니까”라는 말만으론 부족한 가족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가족 환상의 벽을 깨고 싶다고도 했다. 이처럼 주인공들의 희비가 내 것처럼 아픈 이유는 구절구절 녹아든 작가의 진심 때문일 것이다.

열두 살은 묘한 나이다.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이도 아니다. 천진난만하면서 어른 세계 대부분을 눈치로 이해하고, 순진한 얼굴로 잔인하게 그것을 흉내 낸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훌훌 과거를 털고 어른이 되는 주인공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포장하고 싶은 진실을 들춰내며 냉정하게 “삶의 본질은 비극”이라고 도발한다. 거기에 “구원자는 오로지 자신뿐”이라며 쐐기를 박는다. 아프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책을 덮고 나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슴 먹먹한 감동은 비슷하다. 다만 그때는 나의 어린 시절을 거슬러 더듬었다면, 이번에는 미래의 아들딸을 떠올리며 한 발짝 떨어져 세 아이와 교감했다. 주인공들과 같은 또래 청소년은 물론 부모, 교사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아이들의 세계를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되고, 휴가용 읽을거리로도 마침맞다.



주간동아 2010.08.16 750호 (p86~87)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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