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2009.07.07

어머니는 왜 그 노래만 불렀을까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 곽영진 영화평론가 7478383@hanmail.net

    입력2009-07-01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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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왜 그 노래만 불렀을까

    고레에다 감독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멀어져가는 가족 관계를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담아냈다.

    ‘걸어도 걸어도’는 감독의 자화상이 투영되고 그 어머니의 초상이 그려지는 등 상당 부분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멜로드라마다. 달콤쌉쌀한 재미가 여간 아니지만 흥행 오락영화가 아니라서 널리 선전, 홍보되지는 않았다.

    또 이 영화의 각본 작업까지 겸한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한국의 일반 관객에겐 좀 생소한 이름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차용해온 원곡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다. 이 노래 가사 중 반복되는 어구가 ‘걸어도 걸어도’(步いても步いても·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인데, 이것이 바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속 주인공 료타의 어머니가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내한 인터뷰에서 필자의 질문에 “어머니가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하고 애창해, 어린 시절 가사의 일부분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 추억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영화 밖 이야기이지만, 엔카의 클래식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비단 일본인이나 고레에다 감독에게만 추억의 노래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40대 이상 중·장년층 중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추억의 ‘명곡’이다.



    일본 대중가요가 전면 수입 금지되던 19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 이 곡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대중가요였다. 특히 70년대 후반 한국의 청소년 사이에서는 비록 일부이겠지만, 학교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이 노래의 후렴구 ‘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를 따라 부르던 추억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일본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연전연패한 것을 보면 두 나라는 ‘참 가깝고도 먼 나라’요, ‘많이 닮았으면서 또 조금도 닮지 않은 나라’임을 실감한다. 5, 6년 전이던가.

    한국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가요 베스트 순위에 올라 아주 뜻밖이었던 적이 있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30년 전 그렇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점 또한 의외다. ‘조금도 닮지 않았으면서도 많이 닮은’ 두 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걸어도 걸어도’는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부재를 겪는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2004)보다 덜 비극적이며 수다스럽고 해학적이기까지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때로 숨이 막히는 긴장감을 낳는다. 영화 속에서 흔히 접하는 밝고 해맑은 가족과는 아주 다른데, 오히려 여기에 묘미가 있다.

    이 영화는 10년 전 여름 바다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고 익사한 장남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근하고 따뜻하며 늘 부산스러운 어머니, 이와 달리 어느 가족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도는 아버지, 형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료타, 그리고 아들의 목숨 대신 살아남은 청년 요시오에 대한 부모의 원망과 분노….

    ‘걸어도 걸어도’는 변함없이 무뚝뚝한 아버지와 자식들의 관계, 오랜 세월 본심을 마음 깊이 묻어두고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가족 간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상처와 비밀을 보여준다.

    이 상처는 매년 기일마다 ‘초대’(송환)되는 요시오를 이젠 그만 부르자는 료타의 말을 계기로 예기치 못한 순간 ‘툭’ 터져버린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는 바람난 남편의 목소리를 엿들은 뒤 애증으로 가슴에 콱 박혀버린 이 노래를 오랜 세월 마음속으로만 절절하게 불러온 어머니의 아픔. 가슴에 박힘과 동시에 꽂히는 기막힌 역설!

    감독은 세월이 흐를수록 멀어져가는 가족 관계를 객관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동시에 그리운 마음을 담은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그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한 템포 늦게 찾아온다’는 아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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