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한우는 횡성에서 태어난 수송아지 중 6개월 이내 거세한 뒤 사육해야 하며 도축할 때 1등급을 받아야 인정받는다. 사진은 강원도 횡성군의 한 축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은 6월17일 타 지역산(産) 쇠고기 204t, 생산지가 확인되지 않은 쇠고기 483t 등 총 687t을 ‘횡성한우’ ‘횡성토종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한 혐의로 강원도 횡성군 A농협 조합장과 직거래 판매팀장 등 관계자 13명을 형사고발했다.
농관원은 이들이 2008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경기, 충남·북, 경남·북, 전남·북 등 타 지역산 쇠고기와 구체적인 생산지를 알 수 없는 한우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타 지역산 소를 짧게는 구매 당일, 길게는 구매 후 6개월간 사료를 먹여 도축한 뒤 횡성한우로 표시해 서울 등 수도권의 농협 한우 직거래판매장과 음식점, 육가공업체 등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엄격한 횡성한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한우 대표 브랜드인 횡성한우를, 그것도 농협이 원산지를 속여 팔았다는 뉴스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반응이다. 횡성군 홈페이지에는 “한우 하면 횡성을 떠올렸는데 정말 실망했다” “휴가길에 횡성에서 횡성한우를 먹었는데 사기당한 것 같다” “횡성군이 가짜 횡성한우를 판매한 농협을 공개하고 사과해야 한다” 등 소비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거세 수소 도축 당시 1등급이 ‘횡성한우’
시민단체인 소비자연대는 농관원 발표를 근거로 농협이 소비자를 속였다며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와 A농협 조합장 및 관계자를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먹거리사랑시민연합도 농협중앙회에 해당 농협 문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1995년부터 14년여 동안 횡성군민이 약 130억원의 예산과 정성을 들여 쌓아온 횡성한우의 신뢰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기를 맞은 이유는 뭘까.
횡성한우는 횡성에서 사육되는 암소에 엄선한 정액을 투입해 태어난 수송아지 중 6개월 이내에 거세한 뒤 사육한다. 그중 도축 당시 1등급 평가를 받아야 횡성한우로 인정받는다(전국 ‘브랜드 한우’의 1등급 출현율은 75%대에 머물지만, 횡성한우는 86%대다). 이런 규정을 적용하면 지난해 횡성에서 도축된 1만772마리의 한우 중 1등급을 받은 거세우 5779마리를 제외한 암소 3020마리, 비거세 수소 1032마리, 1등급을 받지 못한 거세우 941마리 등 4993마리는 횡성한우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다.
사건이 터지자 일부 언론은 횡성군이 횡성한우가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자 그동안 엄격하게 적용하던 횡성한우의 기준을 임의로 완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횡성에서 소를 키우면서도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암소 및 비거세우 사육농가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지역의 수입을 늘린다는 명분도 기준 완화를 거들었다고 덧붙였다. 군이 거세우만 취급하던 횡성축협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해부터 농협을 통해 횡성한우가 아닌 쇠고기를 횡성한우로 판매하도록 했으며, 이는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연임을 의식한 현직 군수의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군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2007년 말 횡성에서 사육되고 있는 전체 한우 3만4856마리 중 거세우는 1만542마리(30.2%)인 반면 암소는 2만832마리(59.8%)로 암소가 거세우보다 배나 많지만, 모든 유통망이 브랜드육인 거세우에 집중돼 암소는 ‘찬밥신세’가 됐다는 것. 실제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의 악조건에도 횡성한우 거세우 거래가격(2009년 1월 기준)은 평균 572만3000원으로, 2007년 4월 520만9000원보다 9.8% 올랐다. 반면 암소는 490만8000원에서 448만2000원으로 8.6%, 미래의 어미소가 될 암송아지는 38.9%나 가격이 떨어졌다.
군 관계자는 “명품 횡성한우의 모태가 되는 암소를 지켜내기 위해 일반 상인에게 헐값에 판매되는 암소의 브랜드화 계획을 세우게 됐다”며 “횡성한우를 ‘명품 횡성한우’와 ‘횡성한우 암소’로 분리해 명품 횡성한우는 명품 브랜드로, 암소는 암소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농협이 외지에서 들여온 한우를 6개월 이상 횡성에서 키운 뒤 횡성한우로 판매했을 경우 처벌은 가능할까. 답은 ‘처벌할 수 없다’이다. 현행 농산물품질관리법에는 타 지역의 소를 어느 정도 키워야 이동한 지역의 소로 인정해주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단지 외국산 소를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사육하면 ‘국내산’이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외무역법 규정’을 국내산 한우의 원산지 표시에 준용한다. 따라서 외지 소를 횡성으로 가져와 6개월 이상 기른 뒤 횡성한우라고 표기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A농협 관계자는 “‘가축에 관한 출생·이동에 관한 법률’ 공포(2008년 12월22일) 이전에 사들여와 (6개월 이상) 사육한 한우를 모두 횡성한우로 둔갑시킨 것처럼 조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농협은 또 직거래 장터 등을 통해 판매한 쇠고기는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표기했고, ‘횡성한우’ 브랜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횡성한우 범위 기준 조례 제정 추진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횡성한우 직거래 장터’를 찾은 사람들(오른쪽사진).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군은 ‘짝퉁’ 횡성한우의 출현을 막고 투명한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2007년부터 ‘횡성한우 지원 및 육성 조례안’ 제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횡성한우의 범위를 ‘횡성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일정 기간 키운 한우를 모두 횡성한우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횡성에서 태어나 6개월 이내에 거세된 수소 중 1등급 판정을 받은 한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축협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제정이 미뤄졌다. 이때 촉발된 횡성군과 축협의 갈등은 이후 횡성한우 전용도축장, 횡성한우 유통회사 설립 등 횡성한우와 관련된 정책 사업에서 엇박자를 내는 계기가 됐다.
축산농가도 의견이 나뉜다. 엄격한 기준의 횡성한우를 고집하는 것도 좋지만, 명절 전후 외에는 수요가 없어 5, 6개월씩 소를 출하하지 못한 채 마냥 키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료값 때문에 수도권 축산물 도매시장에 100만원 이상 싸게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군의회는 올해 초 횡성한우 조례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쟁점이 되고 있는 횡성한우의 정의를 비롯한 육성 계획, 이력관리 및 유통구조 개선 등의 규정을 담은 조례를 의회 차원에서 마련해 입법예고하기로 했다.
군의회는 7월까지 지역 양축농가 및 한우 관련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아 늦어도 10월에는 조례안을 입법예고한다는 계획이다. 횡성군의회 윤세종 의장은 “가짜 횡성한우 유통을 보며 그동안 횡성한우를 믿고 아껴준 국민에게 횡성군민을 대표해 사죄드린다”며 “국민이 믿고 구입할 수 있게 진품 횡성한우 유통체계를 반드시 확립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