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본능을 채워주기 위해 봉사하는 생명의 불꽃이다. 평소에는 남자의 두 기둥 사이에 볼품없이 늘어져 있지만 ‘유사시’에는 ‘포신’을 110도 곧추세우지.
남녀는 나를 매개로 일진일퇴, 용호상박 일전을 벌인다네. 그 환희는 참으로 대단하지. 남녀 가리지 않고 겨울잠 자던 미세 얼굴근육까지 살아 움직이게 하지. 렘피카의 유화 ‘그룹 오브 포 누드’(Group of Four Nudes, 1925년)에 나오는 여인들의 표정을 보시게나. 후훗, 이제 고개를 끄덕이는군. 그래, 그게 바로 나야.
그런데 나는 가끔 억울하다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혹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등장해선 안 될 ‘무엇’이야. 늘 습하고 어두운 곳에 유폐돼 있다네. 가끔 내 이름이 세상에 나올 때면 그건 욕이거나 닉네임이지. 그래서 새로운 발파 용역을 맡을 때는 언제나 조마조마 노심초사라네.
처음부터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를 ‘팰러스(phallus)’라 부르며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했지. 나를 추종하는 여자들에게는 가리지 않고 거침없는 쾌락과 환희를 선사하며 씨앗을 뿌렸는데….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곳곳에 산재한 남근석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네. 하느님의 준엄한 계율로 나를 얽매더니 생산 목적 이외의 어떠한 활동도 가로막더라고. 중세 의사들은 나의 직립을 돕는 ‘세우미’(手)가 활약(masturbation)하려 하면 ‘마귀’가 든 증거라고 주장했지.
의사들은 시력 감퇴와 발기부전, 간질병 등에 걸릴 수 있다고 호도하기도 했어. 오죽하면 ‘탈무드’에도 아내와 관계를 하지 않고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기록했을까. 그때는 여성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조이스틱(joy stick)’으로서의 기능도 ‘한 여인의 붙박이’로만 가능했던 게야. ‘살짝’의 터치에 금세 굴기하면 경거망동, 주책바가지가 돼버린 시대였지.
내 친구들의-예를 들면 섹스, 삽입, 조루, 발기부전, 오르가슴-운명도 마찬가지였어.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하다고 사람들은 말을 아꼈지. 서구의 기독교적, 동양의 유교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데 나로서는 ‘암흑기’였지.
그런데 20세기 들어 드디어 ‘쇼생크 탈출’에 성공했지. 추종자들이 나의 ‘신성(神性)’을 잊지 않았던 게야. 눈물나더군. 먹는 피임약과 발기부전 치료제는 나와 친구들을 양지로 끌어냈고, 곧 한국에 시판된다는 먹는 조루 치료제는 다시 나의 활약상을 공론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정보·통신, 교통수단의 발달도 나의 탈출을 도왔던 게야.
먹는 피임약으로 여성 성해방
피임약은 나의 ‘공회전’을 확실하게 늘린 계기가 됐어. 생각해보시라. 그동안 나의 두 혈주(血柱)를 활용한 종족은 남성이었지. 그레코로만형을 구사하는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언제나 ‘빠떼루’도 없이 자유자재로 경기를 진행했지. 여성은 그저 남성들의 욕구를 받아들일 뿐이었어.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도, 욕망을 발산하는 것도 어려웠지. 종족 보존이라는 나의 ‘원초적 DNA’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어.
그런데 1900년대 들어 미국에서 마거릿 생어(1879~1966)라는 간호사가 활약하기 시작했지. 11명의 자녀 중 6번째로 태어난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배부른 모습뿐이었다네.
그래서 그는 ‘여성은 스스로 임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 피임을 단순한 의료행위로 여기던 당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었다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들면서 나의 활약으로 인구과잉이 문제가 됐고, 인구폭발을 막아야 한다는 신(新)맬서스주의자들이 점차 힘을 얻었지. 결국 나의 ‘오리지널’ 기능을 막으려는 산아제한 운동이 펼쳐지게 된 거야.
남편의 ‘전투 요구’를 거부할 권리와 자식을 적게 낳을 권리가 있다는 마거릿의 주장은 먹혀들어갔지. 마거릿은 국제가족계획협회 초대회장이 되어 피임약 개발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그레고리 굿윈 핑커스 박사에게 개발을 의뢰했어. 그 결과 1960년 5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에노비스 10’이라는 경구용 피임약을 승인하게 된 게야.
덕분에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의 부담 없이 맘껏 그레코로만형을 즐기게 됐어. 출산 시기를 계획하는 등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조절하게 되면서 사회 참여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나의 출현을 요구했고, 혼전(婚前) ‘불법 무면허 운전’이 남발되기도 했다네.
피임약 출현이 필연이었다면 발기부전 치료제의 등장은 우연이었어. 1982년 프랑스 의사 로널드 비락(Ronald Virag)은 하지(下肢) 혈관수술을 했지. 작은 혈관을 쉽게 봉합하려고 혈관 확장제 ‘파파베린(papaverine)’을 주사했는데 아, 글쎄 환자의 중요 부위가 우뚝 일어선 게야. ‘물건’이 특수혈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지. 이후 파파베린은 고개 숙인 물건을 되살리는 약물로 명성을 날렸고 발기부전 연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지.
파란 알약의 혁명 …‘屈起 희망’을 선사하다
10년 전 한국에 상륙해 ‘해피 드러그(happy drug)’로 정착한 ‘비아그라’도 애초 화이자(Feizer)사(社)가 개발한 협심증 치료제였어.
임상실험 과정에서 ‘세우미’라는 뜻밖의 기능이 밝혀진 거고. 파란 알약의 비아그라는 ‘제2의 성혁명’이라 불릴 만큼 큰 화제를 몰고 왔지. 남자에게는 강하고 힘찬 그레코로만형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여자에게는 언제든 약 한 알로 나의 굴기와 함께 환희를 만끽할 수 있게 한 거지.
그런데 말이야. 더 중요한 사실은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 얘기를 술자리에서의 음담패설 수준을 넘어 양지로 걸어 나오도록 한 거야. 성에 대한 담론을 폭발시킨 뇌관이 됐다고. 남자들의 개인적인 성 문제로, 노화로 인한 당연한 현상쯤으로 치부되던 발기부전을 이제는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바꿔놓은 거지.
그동안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던 여성의학 및 여성 성기능 장애의 연구도 정신적인 부분과 순수 기질적 문제를 분리해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네.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약이 삶의 질 향상에 쓰이는 시대가 된 거지. ‘QOL (Quality Of Life) 의약품’ 시대가 시작된 거야.
‘굴기력 부족’과 함께 나의 큰 약점은 ‘급분사(急噴射)’였다네. 1분도 안 돼 분사하는 모습에 ‘급실망’하는 여성들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지.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희망이 보이고 있어. 나의 ‘기습 분사’를 막는 먹는 조루 치료제가 등장한 거야.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조루는 신경과나 정신과적인 요소와 연결해 생각했어. 당시에는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내가 빨리 분사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는 등 원인 분석도 주먹구구였다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추 내 신경전달물질이 조루 치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기질적인 원인에 대한 의학적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했지. 그러더니 최근 유럽에서는 ‘프릴리지’(성분명 다폭세틴)라는 먹는 조루 치료제가 등장했어. 곧 한국에도 시판된다니 성인 남자 30%에 해당한다는 조루 남성과 그의 여성 파트너 모두 제3의 성혁명 시대를 맞이하게 된 거지.
그동안 은폐의 대상이고 부끄러움의 대명사이던 조루가 드디어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됐어. 사실 조루는 발기부전보다 증상을 겪는 환자도 많고, 삶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심각한 대표적인 성기능 장애가 아닌가.
음, 이제 나도 펜을 놓아야겠어. 나의 굴기와 분사로 번성한 인류는 역시 현명한 것 같아. 나의 약점을 하나둘 고쳐나가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한 가지만 알아뒀으면 해. 내가 아무리 강하게 오래 굴기한다 해도 그건 때에 따라 이기(利器)가 될 수도, 흉기(凶器)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말이야.
그리고 강도와 분사 조절만으로는 여성을 사로잡을 수 없다네. 진정한 관계는 남녀가 정신과 육체를 공유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게나.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끊임없는 육체적 대화로 환희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나를 만들어주게나.
남녀는 나를 매개로 일진일퇴, 용호상박 일전을 벌인다네. 그 환희는 참으로 대단하지. 남녀 가리지 않고 겨울잠 자던 미세 얼굴근육까지 살아 움직이게 하지. 렘피카의 유화 ‘그룹 오브 포 누드’(Group of Four Nudes, 1925년)에 나오는 여인들의 표정을 보시게나. 후훗, 이제 고개를 끄덕이는군. 그래, 그게 바로 나야.
그런데 나는 가끔 억울하다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혹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등장해선 안 될 ‘무엇’이야. 늘 습하고 어두운 곳에 유폐돼 있다네. 가끔 내 이름이 세상에 나올 때면 그건 욕이거나 닉네임이지. 그래서 새로운 발파 용역을 맡을 때는 언제나 조마조마 노심초사라네.
처음부터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를 ‘팰러스(phallus)’라 부르며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했지. 나를 추종하는 여자들에게는 가리지 않고 거침없는 쾌락과 환희를 선사하며 씨앗을 뿌렸는데….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곳곳에 산재한 남근석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네. 하느님의 준엄한 계율로 나를 얽매더니 생산 목적 이외의 어떠한 활동도 가로막더라고. 중세 의사들은 나의 직립을 돕는 ‘세우미’(手)가 활약(masturbation)하려 하면 ‘마귀’가 든 증거라고 주장했지.
의사들은 시력 감퇴와 발기부전, 간질병 등에 걸릴 수 있다고 호도하기도 했어. 오죽하면 ‘탈무드’에도 아내와 관계를 하지 않고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기록했을까. 그때는 여성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조이스틱(joy stick)’으로서의 기능도 ‘한 여인의 붙박이’로만 가능했던 게야. ‘살짝’의 터치에 금세 굴기하면 경거망동, 주책바가지가 돼버린 시대였지.
내 친구들의-예를 들면 섹스, 삽입, 조루, 발기부전, 오르가슴-운명도 마찬가지였어.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하다고 사람들은 말을 아꼈지. 서구의 기독교적, 동양의 유교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데 나로서는 ‘암흑기’였지.
그런데 20세기 들어 드디어 ‘쇼생크 탈출’에 성공했지. 추종자들이 나의 ‘신성(神性)’을 잊지 않았던 게야. 눈물나더군. 먹는 피임약과 발기부전 치료제는 나와 친구들을 양지로 끌어냈고, 곧 한국에 시판된다는 먹는 조루 치료제는 다시 나의 활약상을 공론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정보·통신, 교통수단의 발달도 나의 탈출을 도왔던 게야.
먹는 피임약으로 여성 성해방
피임약은 나의 ‘공회전’을 확실하게 늘린 계기가 됐어. 생각해보시라. 그동안 나의 두 혈주(血柱)를 활용한 종족은 남성이었지. 그레코로만형을 구사하는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언제나 ‘빠떼루’도 없이 자유자재로 경기를 진행했지. 여성은 그저 남성들의 욕구를 받아들일 뿐이었어.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도, 욕망을 발산하는 것도 어려웠지. 종족 보존이라는 나의 ‘원초적 DNA’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어.
렘피카의 유화 ‘그룹 오브 포 누드’. 섹스 황홀경에 빠진 요부들의 이미지가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그래서 그는 ‘여성은 스스로 임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 피임을 단순한 의료행위로 여기던 당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었다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들면서 나의 활약으로 인구과잉이 문제가 됐고, 인구폭발을 막아야 한다는 신(新)맬서스주의자들이 점차 힘을 얻었지. 결국 나의 ‘오리지널’ 기능을 막으려는 산아제한 운동이 펼쳐지게 된 거야.
남편의 ‘전투 요구’를 거부할 권리와 자식을 적게 낳을 권리가 있다는 마거릿의 주장은 먹혀들어갔지. 마거릿은 국제가족계획협회 초대회장이 되어 피임약 개발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그레고리 굿윈 핑커스 박사에게 개발을 의뢰했어. 그 결과 1960년 5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에노비스 10’이라는 경구용 피임약을 승인하게 된 게야.
덕분에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의 부담 없이 맘껏 그레코로만형을 즐기게 됐어. 출산 시기를 계획하는 등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조절하게 되면서 사회 참여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나의 출현을 요구했고, 혼전(婚前) ‘불법 무면허 운전’이 남발되기도 했다네.
피임약 출현이 필연이었다면 발기부전 치료제의 등장은 우연이었어. 1982년 프랑스 의사 로널드 비락(Ronald Virag)은 하지(下肢) 혈관수술을 했지. 작은 혈관을 쉽게 봉합하려고 혈관 확장제 ‘파파베린(papaverine)’을 주사했는데 아, 글쎄 환자의 중요 부위가 우뚝 일어선 게야. ‘물건’이 특수혈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지. 이후 파파베린은 고개 숙인 물건을 되살리는 약물로 명성을 날렸고 발기부전 연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지.
파란 알약의 혁명 …‘屈起 희망’을 선사하다
10년 전 한국에 상륙해 ‘해피 드러그(happy drug)’로 정착한 ‘비아그라’도 애초 화이자(Feizer)사(社)가 개발한 협심증 치료제였어.
임상실험 과정에서 ‘세우미’라는 뜻밖의 기능이 밝혀진 거고. 파란 알약의 비아그라는 ‘제2의 성혁명’이라 불릴 만큼 큰 화제를 몰고 왔지. 남자에게는 강하고 힘찬 그레코로만형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여자에게는 언제든 약 한 알로 나의 굴기와 함께 환희를 만끽할 수 있게 한 거지.
그런데 말이야. 더 중요한 사실은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 얘기를 술자리에서의 음담패설 수준을 넘어 양지로 걸어 나오도록 한 거야. 성에 대한 담론을 폭발시킨 뇌관이 됐다고. 남자들의 개인적인 성 문제로, 노화로 인한 당연한 현상쯤으로 치부되던 발기부전을 이제는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바꿔놓은 거지.
그동안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던 여성의학 및 여성 성기능 장애의 연구도 정신적인 부분과 순수 기질적 문제를 분리해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네.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약이 삶의 질 향상에 쓰이는 시대가 된 거지. ‘QOL (Quality Of Life) 의약품’ 시대가 시작된 거야.
‘굴기력 부족’과 함께 나의 큰 약점은 ‘급분사(急噴射)’였다네. 1분도 안 돼 분사하는 모습에 ‘급실망’하는 여성들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지.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희망이 보이고 있어. 나의 ‘기습 분사’를 막는 먹는 조루 치료제가 등장한 거야.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조루는 신경과나 정신과적인 요소와 연결해 생각했어. 당시에는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내가 빨리 분사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는 등 원인 분석도 주먹구구였다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추 내 신경전달물질이 조루 치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기질적인 원인에 대한 의학적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했지. 그러더니 최근 유럽에서는 ‘프릴리지’(성분명 다폭세틴)라는 먹는 조루 치료제가 등장했어. 곧 한국에도 시판된다니 성인 남자 30%에 해당한다는 조루 남성과 그의 여성 파트너 모두 제3의 성혁명 시대를 맞이하게 된 거지.
그동안 은폐의 대상이고 부끄러움의 대명사이던 조루가 드디어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됐어. 사실 조루는 발기부전보다 증상을 겪는 환자도 많고, 삶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심각한 대표적인 성기능 장애가 아닌가.
음, 이제 나도 펜을 놓아야겠어. 나의 굴기와 분사로 번성한 인류는 역시 현명한 것 같아. 나의 약점을 하나둘 고쳐나가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한 가지만 알아뒀으면 해. 내가 아무리 강하게 오래 굴기한다 해도 그건 때에 따라 이기(利器)가 될 수도, 흉기(凶器)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말이야.
그리고 강도와 분사 조절만으로는 여성을 사로잡을 수 없다네. 진정한 관계는 남녀가 정신과 육체를 공유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게나.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끊임없는 육체적 대화로 환희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나를 만들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