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사진작가 강재구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촬영했다. ‘레이어드’룩처럼 티셔츠와 교복 블라우스, 재킷을 겹쳐 입고, 단추를 풀기도 하고 잠그기도 한 모습에서 ‘개성’을 원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로지 학교와 학원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한국의 청소년들은 이렇게 커밍아웃했다. 언론이 주목했고, 사회학자들이 허겁지겁 분석에 나섰다. 그리고 영화와 미술이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6월25일 개봉한 영화 ‘반두비’와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청·소·년’은 2009년 현재의 청소년들에 대한 예술 장르의 가장 빠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두비’가 광장에 선 촛불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픽션이라면, ‘청·소·년’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음습한 뒷골목에서 파편화한 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다큐멘터리다. ‘반두비’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소리라도 한 번 질러보는 17세 여고생 민서라면, ‘청·소·년’의 주인공들은 모호한 얼굴에-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는 청소년이 많았다고 한다-말도 웅얼웅얼, 동네를 배회하는 ‘애들’이다.
‘반두비’의 당찬 고딩은 영어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고 불법 외국인노동자를 사랑하면서 희망을 꿈꾸지만, ‘청·소·년’에 등장하는 초·중·고딩들은 성적순으로 줄 세운 학교와 재개발을 앞둔 집을 오가며 사는 아이들로, 당최 꿈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들은 반항(혹은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른들이 세워놓은 권위와 규칙의 경계를 넘나든다.
<b>2</b> 어찌 됐든 오늘 아침에도 이 길을 올라가야 한다. 두 남학생은 무슨 꿈을 갖고 있을까. 오석근 촬영(좌측사진). <b>3</b> 권우열은 연합통신에 보도된 ‘뒷감당 안 되는’ 졸업식 사진을 변형해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눈물겨운 저항과 반항의 몸짓
<b>4</b> 양재광은 학원버스들을 촬영했다. 선전문구에 가려 그 안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일민미술관 김태령 디렉터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문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4권을 기획했다고 말한다. 9명의 사진작가들이 전국을 누비며 그들을 좇았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눈에 청소년만큼 단순하게 유형화된 대상도 없었던 것 같다. 과연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보여주듯 ‘서열화를 위한 무한경쟁’과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소비욕구’ 외에 그들에겐 어떤 문화도 없기 때문일까.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자. 똑같은 교복을 어떻게든 개성과 유행을 살려 입으려고 눈물겹게 노력한 여고생들, 문방구에서 파는 스티커를 얼굴에 잔뜩 붙여 ‘아트’를 한 남학생, 만화책 하나면 어디나 눌러앉는 아이들, 시시포스처럼 굽은 어깨를 한 채 교정을 올라가는 두 남학생,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시간 이후에도 돈을 안 받고 의리로 ‘심부름을 해주는’ 고3 다빈이, 그리고 최다 등장 소품인 휴대전화.
이 사진들은 청소년들이 관처럼 좁은 틀 안에서 몸을 비틀고, 소리 지르고,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른들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신기하게도 모두 다 청소년이라는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말이다. 이 사진들 속에서 ‘반두비’ 민서의 얼굴을 발견한다. 2009년 한국의 청소년들은 민서이면서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전시회 ‘청·소·년’은 8월23일까지 열린다. ‘반두비’는 7월 열리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초청작이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일반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