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2009.07.07

예술, 몰두와 통섭 사이

전혀 다른 생각들이 어울려야 명작 탄생

  • 이기호 antigiho@hanmail.net

    입력2009-07-01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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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몰두와 통섭 사이

    2007년 4월 개관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 석관동 신축 교사.

    이 칼럼의 제목이 ‘소소한 일상’이지만, 사실 요즘 도무지 ‘소소’하지 못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아니, 생활은 ‘소소’하게 흘러갈지 모르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큰일이 연이어 터지는데도 애써 ‘소소’하게만 지내려 하는 내 모습이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만난, 늙은 제자가 보내온 문자 한 통이 치명타였다. 일주일 전이던가, 새벽 2시 무렵 날아온 문자였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워낙 오랜만에 온 문자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반사적으로 답문을 작성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 친구가 다니는 학교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다니는 친구였다.

    나는 “그래, 너는 어떠니?”라고 쓴 문자를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문자를 받을 제자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괜스레 내 문장이 치졸해 보였다. 다시 몇 개의 문장을 고쳐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새벽 2시에 온 문자였다. 그건 십중팔구 상처받은 마음이 안부가 아닌 위로를, 그리움이 아닌 질문을 위해 건넨 문자이리라. 그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문장을 적는다는 것이 선생으로서, 아니 그보다 몇 년 더 산 인생 선배로서 도무지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그날 제자에게 아무런 문자도 보내지 못한 채 담배 몇 개비를 연거푸 피우고 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잠은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2년 넘게 한예종에서 시간강사를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폐지 결정이 나온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소속이다. 내가 맡은 강의는 ‘글쓰기’였고, 나 말고도 여러 명의 젊은 소설가와 시인이 나눠 진행했다. 강좌는 서사창작뿐 아니라 가야금이나 멀티미디어, 연극이론, 영화연출 등 다른 전공 학생들에게도 개방돼 있었다.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뭐야, 이렇게 섞어놓으면 어느 장단에 맞춰 강의를 하라는 거야.’

    문학 전공자 대상으로밖에 강의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출석부를 보고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조교가 말해줬다.

    “그냥 편하게 하시면 돼요. 다 선생님 강의계획서 보고 신청한 학생들이니까요.”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냥 입안으로 삼키고 말았다. 조교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그때 삼킨 말은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기본도 안 된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소설을 가르쳐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한예종에서 강의한 2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행복했다. ‘소설의 기본도 안 된 애들이’ 써낸 소설 덕분이었다. 가야금을 켜던 손으로, 유리공예를 하던 손으로 써낸 소설은 그래서 새로웠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감각과 언어들이 거기 숨어 있었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 군상이 수시로 출몰했다. 강의 전날까지 끙끙거리며 그들의 소설을 독해해내려 애쓰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여럿 있었으나, 나름 독특한 형상화와 논리를 갖춘 작품들이었다.

    내가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그때 강의시간에 함께 읽은 소설들이 각자의 전공에 미세하게 혹은 격렬하게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였다. 이는 가르치는 자에겐 행복한 경험이자 한편으론 어깨가 비석처럼 무거워지는 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이 내 눈앞에서 한 주 걸러 한 번씩 일어나니, 그것이 신기해서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달려갔었다.

    한예종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이론보다 실기에 중점을 두고, 기초예술에 더 몰두하라는 것이다. 통섭이니 협동과정이니 하는 것을 다 그만두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이른바 예술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다.

    외부에서 한예종 흔들기, 학생들 상처

    ‘한국예술문화센터’라면 모를까, 한예종은 분명 학교다. 이론을 누구보다 ‘빡세게’ 공부한 사람들만이 다른 예술, 즉 자기만의 예술을 할 수 있다. 그게 기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술은 예술만 바라보아선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

    언제나 예술 이외의 곳에 질문이 숨겨져 있고, 예술가들은 그것을 찾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자다. 그래서 장한나는 음대가 아닌 철학과로 진학했고,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탄생시켰고, 전공이 다른 2명의 카이스트 교수는 합작으로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통섭이고, 협동과정이다.

    한예종의 학생들은 상당액의 등록금을 납부하면서 학교를 다닌, 학교의 큰 주체 중 하나다.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은 채 그들이 배우고 있던 커리큘럼에 대해 외부인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학생들이 받은 교육이 잘못되고 부실한 것이었다면 그들 스스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대학 분규는 대부분 내부에서 촉발했는데, 이번에는 외부에서 들쑤시고 내부에선 지키려고만 드는 형국이니….

    내가 만나본 한예종 학생들은 누구보다 감각의 촉수가 예민한 이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이번 일로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상처가 예술가를 예술가로 키우는 것은 맞지만, 이처럼 눈에 빤히 보이는 상처는 예술가를 투사로 변모시킬 뿐이다. 나는 그것이 못내 불안하고, 또 아까운 예술가들을 잃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걱정만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긴 문자를 늙은 제자에게 쓰게 된 것이다.

    함께 상처받았고, 함께 지켜보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이제 준비하고 있노라고. 이런 게 통섭이고 협동과정일 터이니 배운 그대로, 가르친 그대로. 꼭 그만큼의 화학반응으로.

    *사외 기고는 주간동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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