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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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정국’에 정치 올 스톱하나

6월 국회는 ‘노무현 국회’…3대 쟁점법안, FTA 국회비준 난망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6-05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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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 정국’에 정치 올 스톱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 봉하마을을 찾은 정세균 대표(가운데) 등 민주당 지도부의 표정이 심각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오늘도 말 한마디 했다가 욕만 먹었는데….”

    5월27일 야당과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나라당 안상수 신임 원내대표 측근의 이야기다. 화근이 된 것은 안 대표가 이날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한 발언이다. 다음은 문제의 발언 중 일부다.

    “참으로 어려운 때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서 이를 변절시키고, 소요사태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다.(중략) 북핵사태로 세계가 경악하고 분노하는 이때 국민장의 슬픔에 젖어 참으로 큰 위기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정례화한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 발언을 공개했다. 별문제 없으리라고 판단한 것. 하지만 야당으로부터 “애도하는 국민을 소요세력으로 무시하는 망언이며 국민 없는 국민장을 만들려는 의도가 드러났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군홧발로 억압하던 군부독재 시절의 상투적인 논리와 똑같다” “북한의 핵실험을 이용해 한반도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한나라당이야말로 음모를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언론은 이 사실을 앞다퉈 보도했고, 잔뜩 예민해진 여론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수세에 몰린 여당, 목소리 키우는 야당



    야당은 정치적으로 뭐라도 꼬투리만 잡히면 가만있지 않을 태도인 반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게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死後) 정치권의 분위기다. 민주당은 공세적인 반면 한나라당은 수세적인 상황에 몰린 것. 이런 분위기는 당장 6월에 열릴 임시국회 시기 및 법안과 현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당 최고위원회와 원내 대책위원회 회의의 분위기를 볼 때 6월 첫 주에 여야 협의를 거쳐 빠르면 6월8일부터 임시국회를 여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유리한 국면에서 임시국회를 열어야 쟁점법안이나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 등을 자신들 중심에서 협상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난감한 처지다. 정국운영에 수세적인 입장에서 임시국회 개원을 서두를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6월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마냥 미룰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측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국회에서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을 처리해주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아직 공식적인 논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자세다. 안상수 원내대표실 관계자의 이야기다.

    “과거 탄핵정국과 비슷한 상황이어서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일단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고 6월10일까지는 여론의 흐름을 살펴야 할 것 같다. 6·10항쟁 주기와 맞물려 정치적인 이슈가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시국회 개원을 그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지만 자칫 민심을 외면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고, 정치 일정상 마냥 미룰 수도 없어 고민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측 지도부의 분위기를 볼 때 이르면 6월8일, 늦어도 6월15일 이전에는 임시국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임시국회에서 다룰 의제다. 당초에는 언론관계법안과 비정규직법안, 금융지주회사법안의 3대 쟁점법안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문제를 놓고 여야 사이의 한바탕 격전이 예상됐다.

    민심 향배 따라 정국 방향 결정

    한나라당은 2월 여야 합의를 지켜야 한다며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언론관계법안 처리를 천명해온 데다, 비정규직법안 역시 7월1일 시행 이전에 개정해야 하는 만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금융지주회사법안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금산분리 정책의 핵심법안으로, 4월 임시국회 때 여야 합의를 보고도 한나라당 의견조율 실패로 부결된 것인 만큼 이번엔 반드시 처리한다는 게 한나라당 계획이었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이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은 금융지주회사법안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협상 가능성을 보일 뿐 언론관계법안과 비정규직법안은 결사 저지할 태세였다. 민주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결정하자는 유보적인 태도를 고집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엄청난 변수는 6월 임시국회의 판을 완전히 뒤집었다. 수적 열세에 몰려 있던 민주당은 쟁점법안 논의를 뒤로 미루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문제를 전면에 부각할 계획이다.

    이강래 신임 원내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검찰수사 전반에 걸친 국정조사에 이어 특별검사제 실시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정조사와 특검 대상에는 검찰 조사과정은 물론 현재 지지부진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관련한 각종 의혹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세균 당 대표도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노 전 대통령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거기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이 왜 책임을 지지 않느냐는 (국민의) 질책이 있었다. 그건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당초 쟁점법안과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도 불사하려던 한나라당은 일단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자세로 돌아섰다. 안상수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일단 쟁점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대치 상황으로 가면서까지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한다고 해도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금처럼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는 야당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민주당 처지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이번 임시국회를 ‘노무현 국회’라고 정의했다. 추모의 민심 속에 노 전 대통령만 있을 뿐 민주당은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 등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최대한 길게 유지하면서 민심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흡수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소나기 피하는 심정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정국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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