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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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머무는 곳, 가족이 우리 힘이다

혼자 ‘끙끙’ 말고 함께 의논, 위로가 실직 해결 실마리

  • 최영미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사무처장

    입력2009-02-27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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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이 머무는 곳, 가족이 우리 힘이다
    정부와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이 잇따라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수정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폭풍 전야의 조용함을 보이던 각종 고용지표도 나오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공식 실업자 수는 84만8000명, 실업률은 3.6%였다. 하지만 ‘취업준비’ ‘쉬었음’ ‘구직 단념자’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 취업 희망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실업자 수는 346만명, 실업률은 15%에 이른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게다가 경기침체 때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는 임시·일용직 근로자 수는 처음 7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1월 사실상 실업률 15%

    고용불안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한 예로 핵심 수출산업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 수출은 무려 55%가 줄었으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반도체 및 부품 생산은 42.8%, 기업의 설비투자는 24.1% 줄었다. 내수 위축으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조업단축과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근로자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은 단순히 통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의 평화와 안전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심각한 삶의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가까스로 한숨 돌린 서민의 삶의 뿌리가 다시 한 번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실직을 당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래도 자신감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다지만 열심히 찾아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나 하나 일할 자리가 없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는 기존의 생활을 떠받쳐주지 못하는 불안정한 자리임을 알게 되면 드디어 당황과 분노, 불안감에 휩싸인다. ‘왜 이렇게 된 거지? 가진 것은 없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더 노력해봤자 나아질 수 없는 것일까?’….

    다시 6개월이 지나면 그나마 비축해놓은 돈도 떨어져 적금을 중단하고, 아이들을 언제까지 학원에 보낼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각종 대출 이자에 시달린다. 그 속에서 알코올 의존도와 가정폭력 및 이혼이 증가하고,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기는 생이별도 생겨나며, 가족의 집단자살이 연이어 벌어졌던 것이 외환위기 당시 가족 해체의 실상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좀 다르다. 사람들은 이제 실업이 자기가 못나서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하면서 과도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사회안전망은 고용보험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또 아이러니하지만 이제 남성 혼자 벌어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져 맞벌이가 일상화됐다. 이는 우리 사회가 실업을 더 이상 개인이 혼자 견뎌야 하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혼자 해결하려야 할 수도 없는 문제임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남성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자신의 어려움을 자녀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등 아직 우리 사회는 일종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실직자, 특히 실직 남성들은 친구나 술 등 외부에서 위로를 받으려 한다. 그리고 불안함과 미안함이 가족에게는 서로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거꾸로 폭언이나 폭력, 불평불만으로 나타나기 쉽다.

    심리적 분열은 가족 해체로 가는 길

    하지만 우리의 힘은 무엇보다 가족이다. 실직을 당해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그 어려움을 가장 먼저 겪는 것은 가족이며,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는 것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어려움을 털어놓고 자신의 노력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의논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일상적 고용불안의 시기를 이겨나가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고유의 인격과 결정권을 가진 한 개인’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언제까지나 남편은 가족의 부양자이고, 아내는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을 잘해야 하는 안사람이며, 아이들은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는 돈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하면서 술만 마시는 남편에 대한 불만, 남들은 부업이라도 해서 남편을 돕는데 그것도 못하냐는 아내에 대한 불만, 부모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밖으로만 나도느냐는 아이들에 대한 불만이 서로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분열이 가족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제는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산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불안함과 미안함을 가족에 대한 폭언과 폭력이나 술로 숨기려는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실업을 자기 혼자만의 문제로 여기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된다. 바로 옆을 보라. 나의 표정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에 같이 울고 웃는 내 가족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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