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5

2009.03.03

北, 10년 건너뛴 ‘협박의 추억’

잇따른 겁주기 공세로 위기감 조성 … 다중 정치 메시지 통해 실리 챙기기

  •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 kidabsj@hanmail.net

    입력2009-02-25 1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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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10년 건너뛴 ‘협박의 추억’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7회 생일을 하루 앞둔 2월15일 평양에서 열린 ‘2·16 경축 중앙보고대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 부장, 장성택 당 비서국 행정부장(오른쪽부터).

    북한이 ‘공세 모드’를 쉽게 풀지 않을 태세다. 북한은 최근 군 총참모부를 앞세워 임전태세를 강화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를 통해 남한 사회의 친북 좌파세력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 2월2일에는 총참모부가 핵폐기 불가론에 가까운 핵폐기 조건론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며 미국의 오바마 새 정부를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 부장 왕자루이(王家瑞)를 면담하면서 6자회담과 비핵화선언의 유용성을 강조하며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공격 타깃별로 다중적 메시지를 정교하게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타깃은 다름 아닌 북한 주민이다. 북한은 조선중앙TV에 총참모부 대변인을 직접 출연시켜 임전태세를 강조하면서 외부 위협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해이해진 북한 주민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내부 결속 효과도 얻으려는 성격이 강하다. 아울러 북한체제 유지에 대한 군부의 역할을 과시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두 번째 타깃은 남한이다. 적극적인 대남 정치공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포지션 변화를 유도하려는 심리전의 일환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용산 참사 같은 돌발사건, 그리고 금융위기 여파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악화되면 이명박 정부의 부담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고도의 심리전 펴고 있는 조평통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은 분명 북한에 있지만, 그 정치적 책임은 고스란히 남한 정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남북관계에서 오랫동안 되풀이돼온 남한 정부의 숙명이다. 조평통은 그 숙명적 남북관계를 파고들면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조평통은 1960년 4·19혁명 직후 남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남한 내부의 적화역량을 키우기 위해 만든 노동당 전위조직이다. 조평통이 나선 것 자체가 북한의 대남정책에 우호적인 남한 사회의 결집을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타깃은 오바마 정부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미끼’를 던지면서 ‘테스트’를 병행하는 형국이다. 왕자루이 부장을 통해 북한이 밝힌 메시지를 최종적으로 수령하고 해석하는 곳은 미국 정부 내 안보팀이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척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오바마 정부를 향해 섭섭한 감정을 표출했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아이템이 바로 장거리 미사일이다. 미국이 인공위성을 통해 24시간 북한 내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를 드러내놓고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의도적이었다는 뜻이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한 많은 고위 관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관심 끌기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공세 모드’를 연출, 지휘하는 컨트롤 타워는 어디일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 수립 방향과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명의로 단행된 북한군 인사 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은 갑작스럽게 인민무력부 부장에 김영춘, 평양방어사령관에 리영호를 임명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에서 김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권력 엘리트 가운데 영향력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심인물로 장성택 당 비서국 행정부장과 리제강 당 비서국 조직부 부부장을 꼽는 데 이론이 없다. 그렇다면 새로 발탁된 이들 군 인사가 누구와 가까운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부장은 한 차례 부침(浮沈)을 겪긴 했지만, 당 조직부 부부장 자리에 올랐던 1995년 11월부터 2003년 말까지 최고의 권력 실세로 꼽혔다. 김정일가(家)의 사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그러다 2004년 중반 실각한 이후 2006년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다시 등장할 때까지 내부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컨트롤 타워’ 인민군 인사에 주목

    반면 2001년 1월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오른 리제강 부부장은 2005년 12월까지 고영희, 김정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정철을 공식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리 부부장은 아예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05년 12월 김 국방위원장이 모든 후계 논의의 중단을 지시하자 그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었다. 고영희의 사망도 그의 영향력 쇠락에 한몫했다.

    새로 임명된 김영춘 인민무력부 부장은 1995년 인민군 차수에 이어 총참모장에 올랐던 인물. 리영호 신임 평양방어사령관은 2005년까지만 해도 무명의 상장에 불과했다. 주목할 점은 장성택 부장이 최고 실세였을 때 김 부장과 리 사령관이 군 실세로 급부상한 대목이다.

    리 사령관이 맡기 전까지 평양방어사령관 자리에 장 부장의 친형 장성우가 앉아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김 부장, 리 사령관은 장 부장과 우호적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3년부터 김 부장과 리 부부장이 가깝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권력 기반을 평가할 때 장 부장이 리 부부장에 비해 다소 앞서 있는 것 같다. 누가 김 국방위원장을 대신해 후계자가 될지도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공식적인 결정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단서를 노출하고 있지 않다. 다만 ‘김정남-장성택-군부’ 라인이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1998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한과 미국 간의 직접 대화를 이끌어냈다. 당시 김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노동당 실세는 장성택이었고, 군 실세는 당시 총참모장 김영춘이었다. 장성택-김영춘 라인은 공세 모드로 외교적 실리를 취한 추억을 갖고 있다. 그 추억이 지금을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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