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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3일의 행적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yongshiny@hotmail.com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3일의 행적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3일의 행적

이순신 장군의 숨겨진 행적을 발랄한 상상력으로 채운 패러디 사극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공연 내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고도를, 정말 오기는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대화 사이사이의 침묵은 때때로 소스라치게 지루하다. 오로지 기다리는 행위 외에 두 사람은 할 일이 없어 보인다. 만약 고도가 그들을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고도는 존재한다. 바로 고도는 죽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이현규 작·연출, 원작 연극은 이주용의 ‘난중일기에는 없다’)는 제목이 주는 첫인상에서 ‘영웅이 없는 난세(亂世)’를 다루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실제 작품은 사뭇 다르다. 제작진 스스로가 ‘국내 최초 역사 왜곡 코믹액션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라고 칭한 이 작품은 ‘난중일기’에서 빠져 있는 3일 동안 이순신 장군의 숨겨진 행적을 발랄한 상상력으로 채운 패러디 사극이다.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박정환/임기홍 분)과 이순신의 정체를 모르고 그를 생포한 일본 무사 사스케(전병욱/고재근 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하는 조선 처녀 막딸(유정은/박혜나 분)이 벌이는 에피소드가 극의 중심이다. 이순신은 오늘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큰 칼 옆에 차고 민중을 굽어보는 영웅이라기보다 그저 순박하고 사려 깊은 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저 순박하고 사려 깊은 한 인간 내면 노래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서 ‘스팸어랏’의 아서왕이나 ‘피핀’의 찰스 대제 정도의 한정된 예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을 희화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순신은 초반부터 육두문자가 포함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내뱉고 배고픔과 생리현상에 민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일단 이 작품은 적절한 타이밍과 현 세태에 익숙한 유머 코드를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고정된 가치를 뒤엎는 웃음 코드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후반부 세 사람의 ‘동몽이상(同夢異床)’ 장면은 무대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며 큰 재미를 준다.

비록 세 사람 중에서 사스케의 개인사가 가장 자세히 드러나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이순신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서 풍자 대상이기도 한 그가 바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영웅인지, 아니면 그 역시 또 다른 영웅을 기다리는지가 궁금해진다. 막딸이 부르는 주제곡에서 영웅을 기다린다는 막연한 노랫말이 들린다. 그 대상은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도 관객이 함께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연극은 그것에 대해 끝내 속 시원한 답을 주진 않는다.



이 작품에는 2개의 풍자 대상이 존재한다. 하나는 개발독재와 남성우월주의로 대표되는 현 시국이다. 이는 사건 해결과 의견조정 능력을 가진 인물로 유일한 여성인 막딸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정작 이순신은 이 과정에서 모성애를 가지고 평화를 추구하는 대안적 캐릭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다른 하나는 이순신 자체다. 이는 권위를 타파하려는 히피즘의 성향과 닿아 있다. 하지만 그가 독재적이라거나 마초의 키워드를 가진 인물이 아닌데, 왜 그의 권위가 타파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 결말에 이르러 이순신이 호전적인 마초는 아니며 박애주의자의 면도 있다는 사실을 던지고 그간의 일을 개인적인 해프닝에 담아 짧은 여정으로 끝내버리는 점은 더 아쉽다.

이 작품이 패러디 사극 뮤지컬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음악(작곡 장소영)에 있다. 이미 이 작곡가가 전작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난 너에게’의 멜로디를 활용한 것처럼 ‘영웅을 기다리며’의 음악에서는 ‘젓가락 행진곡’을 비롯해 훨씬 많은 패러디 요소를 사용해 친숙한 멜로디를 가공해내기 때문이다. 다만 좀더 예술적인 시어(詩語)를 가사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투 장면이나 두 명의 멀티맨이 합세해 벌이는 앙상블 댄스의 춤(안무 서정선), 소극장에서 빛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조명도 재미를 배가한다. 3월22일까지, 대학로 해피씨어터(구 바탕골소극장), 문의 02-747-2070



주간동아 2009.03.03 675호 (p77~77)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yongshin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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