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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로마에서 발견한 ‘내면의 응시’

비디오아트 대가 ‘빌 비올라展’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로마에서 발견한 ‘내면의 응시’

로마에서 발견한 ‘내면의 응시’

Bill Viola, ‘Observance’(2002),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plasma display mounted on wall, 120.7×72.4×10.2

로마에서 단 하루만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계단?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 성 베드로 성당?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로마에서 제가 하루를 보낸 곳은 Palazzo delle Espozioni였습니다. 이곳은 로마시에서 운영하는 전시공간인데요, 때마침 빌 비올라(Bill Viola, 1951~)의 전시 ‘Visioni Interiori(내면의 비전)’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故) 백남준의 제자이며 두 번씩이나 미국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그야말로 비디오아트의 대가입니다. 2시간 10분이 넘는 작품부터 8분이 채 안 되는 작품까지 모두 16점이 전시됐는데요, 평소 비디오아트만 보면 골치가 아파지는 제가 끼니도 거른 채 7시간을 보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10초가 넘지 않는다는 통계를 생각해보면 7시간은 기적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로마에서 발견한 ‘내면의 응시’

로마 Palazzo delle Espozioni 전경.

그중 제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Observance(의식)’였습니다. 18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옵니다.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요?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일까요? 하지만 좁은 화면에서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의 표정뿐입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슬픔은 화면 밖, 관객의 심장을 짓누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슬픔은 비디오 프레임 밖, 즉 관객이 살고 있는 이곳에 존재하는 듯합니다. 고속촬영 후 매우 느린 시간으로 재생되는 이 작품은 음향마저 삭제돼 있습니다. 깊은 정적 속에서 화면의 프레임은 어느덧 사라지고 관객은 화면 속 인물들 바로 뒤에 서서, 그들의 심정을 함께 나누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빌 비올라는 이 작품을 통해 ‘슬픔을 응시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는 이 슬픔을 대문자로 시작하는 ‘Sorrow’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슬픔이란 개개인의 비애가 아닌 인간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고뇌를 뜻하며, 마치 비디오가 재생되듯 이 번뇌 역시 끊임없이 반복됨을 암시합니다.

어쩐지 불교적이라고요? 정확히 맞혔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기독교 제단화(altarpiec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제로 그는 일본 선종의 대가 다이엔 다나카에게서 불교 교리를 배웠습니다. 빌 비올라는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눴는데요, 망자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입니다. 망자와 미래는 정지돼 있으므로 무한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이 철학과 종교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교감’ 가장 큰 매체로 인류 고통 ‘함께 애도’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는 배우들에게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했을 때’와 ‘내 곁을 영원히 떠난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의 심정을 연기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는 인생을 살며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통과의례죠. 그 슬픔마저 인스턴트로 처리되는 이 시대에 빌 비올라는 특유의 느린 화면을 통해 때로는 억제되고, 때로는 간과되는 이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그리하여 슬픔이 인간의 전제조건임을 부각합니다.

하지만 빌 비올라가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픔의 ‘교감’입니다. 그가 비디오를 예술 매체로 선택한 것 역시 ‘교감’의 가능성이 가장 큰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류의 고통에 ‘함께 애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덕목이라고 강조합니다.

전시장 복도 끝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던 저는 로마의 관광명소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로마제국보다 더 오래됐을 인간 내면의 역사를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 제목 ‘내면의 비전’처럼 말입니다.



주간동아 2009.02.24 674호 (p78~79)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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