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2

2009.02.10

통일교 ‘포스트 문선명’은 누구냐

문 총재 90세 고령에도 왕성한 활동 … 막내 형진, 4남 국진 씨 행보 관심 집중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02-02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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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교 ‘포스트 문선명’은 누구냐

    한국 나이로 90세를 맞았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선명 총재.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1월31일 만 89세, 우리 나이로 90세인 구순을 맞았다(음력 기준). 1920년생인 문 총재는 여전히 정정하다. 그의 건강은 타고났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지난해 7월19일 그를 태운 헬기가 악천후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블레이드가 나무에 걸려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헬기는 서울에서 청평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다행히 추락 직후 바로 폭발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그와 수행원들은 헬기를 빠져나왔다. 젊은 사람들도 당황할 상황에서 89세 노인이 빠르게 몸을 움직인 것.

    지금도 문 총재는 통일교 간부들을 대상으로 ‘훈독회’라는 새벽 종교행사를 주재한다. 한 번에 수십 일씩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 통일교 교리와 정신을 전파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국내외 정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그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통일교 50주년 행사에서 30분 가까이 대중 연설을 하며 강한 평안도 사투리로 “열린우리당 사람들, 닫힌우리당 사람이 되지 마시라우야”라고 일갈해 폭소를 자아냈다. 2012년 여수에서 개최하는 해양엑스포 오프닝 행사도 통일교가 세운 호텔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 경도됐던 형진 씨 본부교회 당회장



    하지만 고령이다 보니 향후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총재는 부인 한학자 여사와의 사이에 7남6녀를 두었으나 장남과 차남, 6남을 잃었다. 가부장의 가치를 인정하는 통일교의 특성으로 본다면 후계자는 남은 4남 중에서 나올 것이 분명하지만, 문 총재의 활동력이 여전히 왕성해 후계자를 점찍는 일이 아직 무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문 총재가 이끄는 통일교 조직은 크게 종교와 기업으로 나뉜다. 종교조직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불리는데, 이 조직의 대표기관은 서울 청파동에 자리한 본부교회다. 따라서 본부교회의 당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포스트 문선명’을 점쳐볼 수 있다. 현재 당회장은 문 총재의 막내아들(7남, 11번째 자녀)인 형진(30) 씨다.

    문 총재는 자녀들에게 통일교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형진 씨는 미국에서 가톨릭계인 페어필드대학을 2년간 다니다 하버드대 3학년으로 편입해 졸업했다. 형진 씨는 한 살 위인 영진(6남) 씨와 가까웠는데, 영진 씨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던 중 사망했다. 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형진 씨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사상에 크게 경도돼 하버드대에 편입한 이후 7년간 머리를 민 채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다녔다.

    그는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참선과 명상을 계속했으며,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그는 국민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갔고, 예수교계의 포드햄대학을 나온 이연아 씨와 결혼해 4남1녀를 낳았다. 그리고 2007년 8월 아버지에게 안수를 받고 통일교 목사가 돼 귀국했다.

    형진 씨는 스님처럼 수행하던 때의 버릇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한복을 즐겨 입고, 손님을 맞을 때는 반드시 차 대접을 한다. 문 총재는 형진 씨 부부의 4남1녀 가운데 막내인 신준 군을 귀여워해 해외 순방 때마다 꼭 데리고 다닌다. 통일교 조직이 형진 씨에게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화를 비롯한 통일교 관련 기업들은 통일재단의 통제를 받는다. 현재 이 재단의 이사장은 형진 씨보다 아홉 살 많은 4남 국진(39) 씨. 국진 씨는 하버드대에서 경제·경영학을 공부하고 마이애미대학 경영대학원(MBA)을 나왔다. 미스코리아 선 출신의 아내와 결혼해 미국에서 1000억원대 자산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경력이 있다.

    통일그룹 산하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1998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다.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자 2006년 문 총재는 미국에서 자기 사업을 하고 있던 국진 씨에게 통일그룹을 살려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와 통일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국진 씨는 미국식 경영기법으로 줄기차게 구조조정을 해 통일그룹 산하의 여러 기업을 회생시켰다.

    형진 씨가 동양적이라면 국진 씨는 다분히 미국적이다. 국진 씨는 야구 모자를 쓰고 손님을 맞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다. 여기에 조직원에게는 일한 만큼 대우해주는 지극히 미국적인 경영방식을 구사한다. 국진 씨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통일재단 일을 하게 됐는데, 그것은 내게 봉사”라고 말한 바 있어 그가 끝까지 통일재단을 끌고 나갈지는 미지수다.

    전문 경영인으로 기업군 이끄는 국진 씨

    국진 씨와 형진 씨 사이의 5남 권진(34)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며 외부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형의 사망으로 사실상 맏아들이 된 3남 현진(40) 씨도 하버드대를 나왔는데, 현재는 통일교 단체인 세계평화청년연합 세계회장과 피스컵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 총재의 6녀 중에서는 차녀 인진 씨와 4녀인 선진 씨가 하버드대를 나왔다. 인진 씨는 미국 통일교 총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지만, 다른 딸들은 통일교나 관련 기관에서 간부를 맡지 않은 채 자신의 생활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극력 삼가고 있다. 몇몇은 전업주부로 지낸다.

    국진 씨나 형진 씨에 따르면, 문 총재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해외 순방과 종교행사로 바빴기에 아버지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큰 존재로만 여겼다고. 그러다 각자의 방황을 끝내고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노력과 카리스마를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통일교는 한국에서 일어난 종교지만 한국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더 활성화됐다. 당대에 거대 종교단체를 일궈낸 문 총재는 언제까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그리고 문 총재 이후 통일교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통일교 측은 이런 세간의 관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문 총재의 90세 기념행사를 한국과 미국에서 열어 그의 건재를 과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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