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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34 공항

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공항은 어디론가 떠나고 또한 돌아오는 사람들이 짧게 머무는 포스트모던한 공간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코인로커 베이비스’ ‘인 더 미소 수프’ 등을 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절묘한 타이밍의 문장으로도 세련되어 보이지만, 무엇보다 이 환멸의 대도심에서 근사한 소재를 낚아채는 솜씨가 절륜의 고수라고 할 만하다. 그의 포충망에 걸려든 글감들은 이 ‘글로벌코스모폴리턴스펙터클파나비존’ 시대를 증거하는 결정적인 유류품이 된다.

그의 소설집 중에 ‘공항에서’가 있다. 국내에도 출간되었다. 책 안에는 ‘공항에서’와 그 밖의 단편 일곱 편이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루이즈 부르주아, 스펜서 튜닉, 조너선 보로프스키 같은 미술계의 글로벌 스타들과 닮아 있다. 예컨대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 설치된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은 이 600년 역사의 고도(古都)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에도 있고 시애틀 미술관에도 있다. 수백 명의 집단 누드 사진으로 유명한 스펜서 튜닉은 미국 뉴욕, 프랑스 리옹, 잉글랜드 뉴캐슬, 벨기에 브루게,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에서 사진을 찍는다. 2007년 5월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에서 작업할 때는 무려 1만8000명이 ‘집단 누드’의 모델로 참여하였다. 이런 작업들은 ‘동시의 비동시성’이 확실하게 전개되는 지금 이 시대가 사실상 개별 영토의 고유한 삶보다는 지구 전체를 관통하는 균질성이 주류임을 방증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그런 거센 흐름을 도심지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포착해낸다. 책상머리에서 개인 작업을 해야 하는 소설가의 선택이다. 단편집 ‘공항에서’에는 공항을 비롯하여 편의점, 술집, 공원, 노래방 같은 익숙한 공간이 등장한다. 마치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서 무기질의 공간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캐릭터로 의미를 발산하듯, 이 소설들에서 무라카미 류는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인물들을 위하여 바로 그 편의점과 공원과 노래방과 공항이 무언의 대화를 건네도록 한다. 이혼 후에 술집을 나가다가 우연히 만난 연하남을 통하여 의족을 만들고 싶은 꿈을 실행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공항에서’도, 이 소통 부재의 한 세월을 가만히 들여다보려는 무라카미 류의 상념이 묻어 있다. 무라카미 류는 말한다.

“이제 사회의 절망과 퇴폐를 그리는 것은 너무 진부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주 잠깐만 발걸음을 옮기면 우리는 어디서나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에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었다. 근대화의 물결로부터 밀려났거나 홀로 남겨진 사람,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휩쓸린 사람들은 고스란히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단편집을 통해서 나는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희망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 전체의 희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희망을!”

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양면성 지닌 초현대적 시설



그런데 그런 희망이 과연 찾아질 수 있을까. 더욱이 편의점에서? 노래방에서? 공항에서? 실은 그것이 찾아질 수 없다는 역설을 통하여 무라카미 류는 희망이 간절함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다.

왜냐하면 김우창 선생이 이런저런 지면에서 밝혔다시피, 공항 같은 초현대적인 공공시설은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우창 선생은 십수 년 전에 국제공항 -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 대한 명상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그중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전근대의 건물에 있어서는 내부 공간도 완전한 내부 공간의 모양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외면 공간의 통일된 질서를 지향한다. 이에 대하여 모던 스타일 또 사실상 포스트모던 스타일은 건축 내부 기능의 골격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니만큼 내면 공간은 더 내면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이러한 ‘내면성’은 북유럽의 관문이 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이나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 혹은 동아시아의 첵랍콕 공항이나 인천국제공항 같은 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 거대한 인위 공간은 1mm의 오차도 없을 만큼 완벽한 수준의 합리적인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매우 편리하고 세련된 곳이다. 물론 비행기를 이용하여 떠나고 또한 돌아오는 기본적인 교통 목적은 일반 이용자의 눈에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시스템으로 정비되어 있다. 이용자의 눈에 보이는 거대한 유리와 날렵한 철골과 세련된 인테리어는 흡사 인공낙원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이토록 완벽한 공간임에도 공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찌 되었거나 공항은 그 옛날의 버스정류장이나 연락선 선착장이나 지하철 승강장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또한 돌아오는 사람들이 길어야 두세 시간 머무는 곳일 뿐이다. 루카치 미학의 수제자였던 아그네스 헬러가 기차역을 논평하면서 티끌 하나 없는 청결함, 정교한 기능성,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성 등을 언급한 것처럼, 공항은 근사한 인테리어 배면에 거미줄처럼 배치되어 있는 하이테크놀로지의 성찬식과 같은 곳으로 우리는 점점 더 이 실질적인 거주 공간마저도 그렇게 바꾸고 싶어한다.

다만 그렇게 할수록 인간적인 공간이 되지 못할뿐더러 이러한 기계미학이 ‘인간적인 영역’까지 스며들 경우 오히려 난감한 비극성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황이다. 첨단 인텔리전스 빌딩이나 아파트에서 악착같이 자판기 커피 한잔 들고 담화를 나눌 장소를 찾거나 매끄러운 베란다로 나와서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강철 시대의 구차스러운 인간의 일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늘 너머 인간의 꿈 ‘지상’으로 내려놓다

공항은, 그리고 비행기는 이 도심의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인간적 메시지 주고받는 곳

공항은 그리고 비행기는 이 도심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보거나 느낄 수 없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수시로 연출한다. 날렵하게 이륙하는 점보 비행기, 광막한 흰 구름의 바다 위를 나는 지극한 투명성, 뇌우라도 당면한 듯 차창 밖으로 거대한 먹구름이 펼쳐지고 이 ‘작은’ 비행기는 검은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러는가 싶더니 이윽고 고도를 낮추면 지상의 지형지물이 저 아래로 펼쳐진다. 공항과 비행기는 하이테크놀로지가 빚어낸 거대한 인위 공간이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인간적인 메시지를 서로에게 주고받는 것이다. 그 작은 힘, 그 작은 메시지, 그 작은 세계에 대한 열망이 우리를 간신히 지상으로 내려놓는다. 시인 신현림의 사랑의 인사가 들려주는 소식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목성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울었다는 사람이 생각나요

그 후 저 하늘 너머는 어떨까 궁금했어요

우주의 질서가 뱀처럼 똬리 틀고

이렇게 은밀히 별들과 연결됐다니, 흥미롭군요

운명선을 닮은 비행선이

저 멀리 흰 선을 그으며 사라지네요

별점 보고 돌아가는

안국동의 해질녘

찰나의 내 육체

시골길 골목길 아스팔트길 고행길

길이란 길 모두 맛보며

내 몸속에 사는 사자랑 달이랑 꽃게랑 노래하고

이승의 슬픔을 흔들며 어여쁜 추억의 한지를 쌓을게요

당신이 잘 지내길 빕니다.



주간동아 2008.12.30 667호 (p64~66)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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