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알프스 산자락 아래서 다문화로 빚은 진한 맛

  • 아트옥션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8-04-11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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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산자락 아래서 다문화로 빚은 진한 맛

    멀리 알프스 산자락이 보이는 프리울리의 포도밭.

    프리울리 줄리아 베네치아(이하 프리울리)는 이탈리아의 20개 주(州) 가운데 하나다. 반도 북동쪽 끝에 자리하며 북으로는 알프스, 남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고, 동으로는 국경이 그어져 있다. 주 이름에 포함된 베네치아는 사실 프리울리에 속해 있지 않다. 베네치아는 서쪽으로 닿아 있는 베네토 주에 속한다.

    프리울리는 북쪽으로 가면 알프스 넘어 오스트리아, 동쪽으로는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이뤄 이국적인 풍광을 띤다. 즉 다문화가 녹아 있는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한때 번성한 베네치아 제국이 다스렸던 적도 있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살을 맞대고 있는 슬로베니아와는 여러 차례 마찰이 있었다.

    특히 고리치아에 가면 여러 나라의 특징이 담긴 건축물이 많이 보인다. 와인은 문화가 꽃피어 탄생한 것이니, 프리울리 와인 속에는 여러 문화가 합쳐져 다양한 와인이 잉태된다. 이 지역은 다른 지방보다 휠씬 많은 수의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프리울리의 알프스는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어서 양조장은 모두 알프스 이남에 자리한다. 그래서 기대와는 달리 프리울리의 포도밭은 대체로 평탄하다.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한 포도밭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콜리오(Collio)에 가면 그 이름처럼 언덕으로 이뤄진 밭이 많다.

    다른 지방보다 많은 수의 포도 품종 원료로 써



    콜리오는 고리치아를 중심으로 슬로베니아와 접경을 이루는 일정 구역을 부르는 원산지 명칭으로, 프리울리에서 가장 품질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특히 콜리오의 화이트 와인은 유명하다. 알프스의 낮은 자락이 끝없이 변화하며 이어지는 언덕 사면으로 포도밭이 발달해 있다. 남쪽에 자리한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북쪽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육풍의 영향으로 생기는 일교차는 청포도가 완숙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서늘한 기후에서 오랫동안 익어가는 포도에는 당분과 산미가 함유돼 맛깔스런 와인을 선사한다.

    유럽연합의 규정 덕에 이탈리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에서 재배한 포도에도 콜리오라는 원산지 명칭을 달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경을 긋는 과정에서 슬로베니아에 속하게 된 포도밭은 슬로베니아의 원산지명을 따라야겠지만, 포도밭 소유주가 같으니 국경으로 나뉘더라도 그 소유권을 인정해 콜리오로 원산지를 표시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팔츠 지방에서 슈패트부르군더(피노누아의 독일식 호칭)를 기가 막히게 양조하는 프리드리히 베커는 조상 대대로 짓던 포도밭이 2차 대전 이후 프랑스령으로 넘어가버렸다. 국경을 그었더니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 쪽으로 그 땅이 남게 된 것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야 그 밭을 드나들 수 있었고, 그 후 수확도 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롭지 않은가. 프랑스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 독일 와인이라니. 슬로베니아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 이탈리아 와인이라니.

    이처럼 와인 세계에서는 국경보다 토양의 특성이 중요하다. 실제 가서 보면 국경은 그저 행정상의 구분일 뿐, 포도밭 전체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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