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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유척·나노크림 기념품 참하고 기특하군!

정부출연硏 알짜배기 기술과 접목… 방문객들 사용 후 “더 구해달라” 문의 쇄도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유척·나노크림 기념품 참하고 기특하군!

유척·나노크림 기념품 참하고 기특하군!

한국화학연구원의 기술로 만든 화장품, 농촌진흥청의 고품질 쌀, 실크비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복합섬유로 만든 수건과 양말(왼쪽부터).

“암행어사 출두요!”

조선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덕 수령이 백성을 괴롭히던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킬 때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암행어사는 왕의 명을 받아 수령의 부정부패나 백성의 어려움을 조사해 처리하던 관리다.

암행어사는 늘 마패(馬牌)와 유척(鍮尺)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말 그림이 그려진 구리로 만든 지름 10cm가량의 원 모양인 마패는 일종의 신분증. 왕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전국 각 지역에서 병졸과 말을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였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 세금을 걷거나 형벌을 내리는 도구가 정해진 규격에 맞는지 측정할 때 사용했다. 즉 백성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거나 심한 체벌을 가하기 위해 규격을 초과하는 도구를 쓰던 악덕 수령을 가려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대전에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최근 유척을 국내 기술로 복원했다. 그리고 이를 연구원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하고 있다.



조선시대 도량형 표준 현대기술로 재현

연구 목적으로 방문한 국내외 연구자나 견학하러 온 학생들에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정부출연연구원에서는 작은 기념품을 주곤 한다. 이들 기념품을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그 연구원에서 개발한 ‘알짜배기’ 기술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유척도 그런 사례다.

조선시대 세종은 박연에게 아악을 정리하면서 황종척(黃鐘尺)을 만들게 했다. 황종척은 황종이라는 악기의 길이를 기본으로 한 자. 유척은 바로 이 황종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길이나 무게, 시간 등 생활 속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측정값의 표준을 결정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조선시대의 도량형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유척을 복원했다. 현대의 기술로 역사 속 표준을 재현해낸 것. 연구원은 이를 방문객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함으로써 과거 우리 조상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측정표준을 정비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유척·나노크림 기념품 참하고 기특하군!

실크치약, 향기 나는 종이(위부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특별한 이벤트 때 유척 이외에 현대식 저울이나 30cm자, 심지어 알코올 측정기도 기념품으로 내놓는다. 이 연구원 홍보팀은 “생산하는 제품에 측정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업에서 만든 ‘정확하고 정밀한’ 제품들”이라고 소개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내 측정표준의 공식 인증기관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저울이나 자, 음주측정기 같은 각종 측정도구는 이곳의 인증을 받도록 돼 있다. 연구원은 이 같은 인증을 받은 측정도구를 기념품으로 주면서 국산 표준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확한 표준을 보급하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쌀도 국산 기술을 보급하는 기념품의 또 다른 예다. ‘탑 라이스’라 불리는 이 쌀은 농촌진흥청이 약 3년 전 직접 개발한 새로운 벼 재배기술로 생산한 것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일반 벼를 재배할 때보다 질소비료를 많이 줘 쌀 속 단백질 함량을 높였기 때문에 밥맛이 더 좋다”며 “완전미 함량이 95% 이상인 고품질 쌀이라는 것도 장점”이라고 밝혔다. 일반 쌀에는 금이 가거나 깨진 불완전미가 많게는 20~30%까지 섞인 경우도 있다는 게 농촌진흥청 측의 설명이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각 도별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 선발된 농가를 대상으로 탑 라이스 재배기술을 지도했다. 탑 라이스를 기념품으로 제공하면서 농촌진흥청은 이 같은 우리 기술과 농가의 노력을 홍보하고 있다.

고품질 ‘탑 라이스’ 제공하는 농진청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윤철 박사팀은 2004년 키토산-나노실버 복합섬유를 개발했다. 게, 새우 같은 갑각류의 껍데기를 녹여 만든 실을 키토산 섬유라고 부른다. 갑각류 외피의 주성분이 바로 키토산이다. 천연성분으로 만들어진 키토산 섬유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환경친화적인 소재이며 보습성이 우수하다고 알려졌다.

연구팀은 키토산 섬유를 만들 때 나노실버를 혼합했다. 나노실버는 은을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로 아주 잘게 쪼갠 것. 키토산 섬유와 나노실버를 섞어 만든 이 새로운 섬유에 연구팀은 ‘크리니버’라는 이름을 붙였다.

박 박사는 “크리니버는 유해한 세균을 전기적인 힘으로 끌어당겨 세포막 조직을 파괴해 죽이는 기능이 있다”며 “키토산 섬유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나노실버의 항균성까지 추가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크리니버 기술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하 창업보육센터 내에 있는 기능성 섬유 전문 중소기업인 텍산메드테크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현재 텍산메드테크는 이 기술로 항균효과가 있는 수건과 양말을 생산하고 있다.

박 박사는 “발냄새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바로 발에서 각질을 먹고 사는 세균”이라며 “항균성을 갖춘 크리니버 양말은 이 세균을 죽여 발냄새를 없애줄 수 있다”고 했다.

연구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세운 신생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설립 초기에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연구기관은 이런 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지원하는 의미에서 제품 일부를 구입해주기도 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이 같은 경우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우리 연구원이 방문객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하는 수건과 양말이 바로 텍산메드테크에서 구입한 것”이라며 “제품을 기념품으로 활용하면서 실제로 이 기업이 많이 성장했다”고 밝혔다.

연구원이 아무리 우수한 연구성과를 기업에 이전해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에 내놓았을 때 팔리지 않으면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품 판매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게 바로 홍보와 마케팅. 신생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대기업에 비해 홍보나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럴 때 제품을 기념품으로 활용하면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 정부출연연구원의 홍보 담당자는 “기념품을 받아간 방문객들이 집에서 사용해보고 마음에 든다며 더 구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여성 방문객에게 나노크림과 나노에센스를 기념품으로 준다. 화장품기업 아마란스가 한국화학연구원 심병철 박사팀이 2002년 개발한 나노기술을 이전받아 판매하고 있는 제품이다. 방문판매 방식이기 때문에 보통 매장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심 박사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유용 성분들은 피부에 흡수되지 못하고 표면에만 있다 씻겨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피부의 지질층을 통과해야 하는데, 유용 성분이 보통 물에 잘 녹는 친수성 물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만원 내외로 가격 제한 홍보팀 고민

이에 심 박사팀은 피부와 성질이 비슷한 50~100나노미터 크기의 미세한 입자를 만들어 그 속에 유용물질을 집어넣었다. 이 나노입자를 넣어 만든 화장품이 나노크림과 나노에센스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이광길 박사팀이 수년 전 개발한 실크비누와 실크치약은 각각 이원생활환경과 동성제약으로 기술이 이전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판매를 늘리기 위한 홍보 활동이 더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 박사는 연구실을 찾은 방문객에게 이 비누와 치약을 선물하곤 한다. 물론 기술도 함께 설명하면서 말이다.

이 박사는 “누에고치에서 피브로인과 세리신이라는 단백질을 추출해 만든 제품들”이라며 “실크치약은 충치를 예방하고 이를 희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피브로인을 첨가했으며, 실크비누엔 천연보습인자(NMF)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출연연구원 홍보 담당자들에겐 여러 가지 기술이나 제품 가운데 어떤 것을 기념품으로 선택할지도 고민거리다. 정부출연기관이다 보니 기념품 가격대도 보통 3만원 내외로 제한이 있다. 한 정부출연연구원 홍보팀장은 “생산 및 구입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념품을 마련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귀띔했다.



주간동아 2008.04.15 631호 (p56~58)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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