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백골단 아닙니다 경찰관 기동대라 불러줘요”

경찰 사복체포조 부활… 780여 명 선발해 교육 중, 7월쯤 현장 배치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4-07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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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골단 아닙니다 경찰관 기동대라 불러줘요”
    회색이 살짝 감도는 하얀색 오토바이 헬멧, 청색 재킷과 청바지, 그리고 짧지만 위협적인 곤봉….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1980~90년대 대한민국 시위문화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세칭 ‘백골단’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이 정체불명의 사복경찰관들은 그 자체로 권위주의시대의 상징이 됐으며, 그들이 휘두른 곤봉은 시대를 관통하는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3월15일 경찰청은 ‘경찰관 기동대’ 혹은 ‘경찰관 부대’로 명명한 ‘2008년형 백골단’의 부활을 공식 선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경찰청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나온 어청수 경찰청장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시위현장에서 경찰권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 오는 9월부터 전경 대신 경찰관으로 구성된 체포전담 부대를 신설, 불법시위 현장의 전면에 배치할 방침이다.”

    1980~90년대 악명 탓 국민들 걱정스런 반응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과 국민은 깜짝 놀랐다. “과거 군사정권으로 돌아가자는 소리냐”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백골단’이 순식간에 뉴스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누리꾼(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008년형 백골단’의 화려한 복귀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됐던 3월29일 서울 도심에서의 등록금 인상 반대 대학생 시위는 그래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백골단’은 직업 경찰관 중심의 사복부대인 특수기동대(형사기동대 혹은 사복기동대)를 일컫는 별칭이었다. 이들이 쓰던 헬멧 뒤편에 백골 마크가 있어 ‘백골단’이 됐다는 말도 있고, 헬멧이 마치 백골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경위는 아무도 모른다. 10여 년간 운영되던 이 조직은 96년 발생한 연세대사태를 끝으로 최소 인원(서울지방경찰청 내 3개 중대)만을 남겨둔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시위대를 벌벌 떨게 했던 사복체포조(백골단) 대원들은 모두 무술 유단자였다. 특히 유도대학(현 용인대) 출신과 특전사 출신이 대거 특채돼 주류를 이뤘다. 이들의 임무는 주로 시위 주동자 체포였는데, 시위진압 부대 뒤쪽에 있다가 특정 건물과 시위 주동자를 목표로 기습진압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부활한 ‘2008년형 백골단’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일반 경찰관 비해 특별수당 혜택… 탄력근무제 검토

    이번에 ‘경찰관 기동대’로 이름 붙여진 사복체포조는 일단 공개채용 방식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난다. 지난해 12월 경찰청은 공개채용을 통해 780여 명의 기동대원을 선발해놓은 상태다. 이 중에는 60여 명의 여성대원도 포함돼 있다. 2년간 기동대 근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선발 당시 경쟁률이 3대 1을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시대가 변했다. 예전처럼 화염병과 최루탄이 범벅 되던 시위는 더 이상 없다. 대민(對民)활동을 우선으로 하는 기동대에 구직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선발된 기동대원들은 현재 충북 충주에 자리한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며, 7월25일까지 24주간의 교육을 끝낸 뒤 13개 중대로 재편돼 현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들이 받고 있는 교육은 일반직 순경의 교육과정에다, 업무 특성에 맞춘 기동대 특화교육과 시위진압 전술 실습 등이 추가된 형태라고 경찰청 측은 밝힌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경찰관 기동대’ 창설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병력자원 감축으로 인한 전·의경제 폐지에 대비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아직 운영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며, 인력수급에 따라 인원 구성이나 편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세대 백골단’은 어떤 장비와 복장을 갖추게 될까. ‘백골단’의 상징인 청색 재킷을 다시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아직 ‘경찰관 기동대’의 복장과 장비가 결정되진 않았지만, 경찰청 측이 기동대만의 특수 복장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동대를 관리하는 경찰청 경비대의 한 관계자는 “진압복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쓴다. 다만 기존 전경들보다 활동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량화 등을 고려해 기존 진압복을 개선한다는 게 경찰청의 계획이다. 진압복 개량화의 핵심은 경량화, 편의성, 고급화다. 자연스레 현재 진압복의 평균 제작단가(18만원)보다 다소 비싸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기동대원들의 근무조건은 일반 경찰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업무 특성을 감안한 특별수당 등이 도입되면 일반직 경찰 공무원보다 처우가 개선되리라는 게 경찰청의 설명. 이 밖에도 경찰청은 기동대에 한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탄력근무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경찰청 측은 “현재 기동대원들에게는 기동 업무수당 8만원, 위험수당 4만원, 활동비 12만원(잠정 편성)이 결정돼 있다. 좀더 구체적인 처우 문제는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 등과 협의 중이다. 기동대원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매진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찰청의 설명에도 ‘경찰관 기동대의 탄생’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경찰관 기동대=백골단’이라는 등식을 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고민이 점점 깊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동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백골단’에 비유함으로써 기동대의 임무와 의미가 부정적으로 각인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화적인 시위는 최대한 보장하되,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불법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된 조직인 만큼 국민이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주길 바란다. 절대 과거와 같은 백골단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도 꼭 ‘경찰관 기동대’로 불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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