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2008.01.22

바지락과 쫄깃한 면발 입 안의 절묘한 하모니

  • 허시명 여행작가 twojobs@empal.com

    입력2008-01-16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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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락과 쫄깃한 면발 입 안의 절묘한 하모니

    나비앤필드의 봉골레 스파게티.

    음식점은 간판도 없었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라는 도도한 자세. 그렇다고 이름조차 없는 건 아니었다. 나비앤필드(Navi · Field). 오래전 나온 스피커 이름의 조합으로, 오디오 마니아들이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식점 창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를 거부하는, 감성을 듬뿍 담은 LP판 아날로그 소리다. 주방장 이종욱(38) 씨에게 음식 하나를 추천해달랬더니 ‘봉골레 스파게티’를 소개한다.

    음식을 받고 보니 봉골레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 바지락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입을 벌린 바지락이 스파게티 면발 주변을 둘러쌌다. 바지락 수를 대충 헤아려보니 25개가 넘는다. 바지락 속에 마늘 조각도 몇 점 보였다. 다른 부재료와 양념으로 이탈리아 파슬리인 프레제몰로, 토마토, 소금, 후추가 들어갔다.

    스파게티 면발은 올리브유를 뒤집어써 반들반들했다. 단백질이 많은 경질밀의 강력분을 사용해 면발엔 딱딱한 기운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주로 중력분을 쓰기 때문에 면발이 말캉하다.

    올리브유 맛이 입 안에 남는데, 이를 닦아내는 데는 와인이 제격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와인과 함께 즐긴다. 그런데 우리는 피클 반찬을 곁들인다. “피클은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씨는 말한다.

    와인과 곁들여야 제격 … 주방장은 서른 넘어 요리에 투신 새 길 개척



    말이 나온 김에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한국 스파게티의 차이를 따져보았다. 우리는 이탈리아 면요리로 스파게티가 대표인 줄 알지만, 이탈리아 면요리의 대명사는 파스타다.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 또는 스파게티를 다른 음식과 곁들인 코스요리로 즐긴다. 그러나 우리는 일품요리로 즐긴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림 스파게티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는 크림 스파게티를 즐긴다. 우리의 스파게티 문화가 미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생겨난 변화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최초로 붐을 일으킨 외국 음식이 이탈리아 요리이고, 그 속에 스파게티가 있었다.

    봉골레 스파게티를 솜씨 좋게 내놓은 이씨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요리업계에 뛰어들었다. ‘내 음식 내가 만들어 먹는’ 정도였는데, 벤처기업 총무부 일이 무료해서 이탈리아 요리학원을 3개월 다니고 이탈리아 북부 아스타시의 ICIF 요리학원을 6개월 다녔다. 이탈리아 유학에 3000만원, 부대비용 1000만원을 들여 바꿔낸 인생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니 즐거움은 줄어들고 고단함은 늘었다. 하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은 게 많다”며 이씨는 흥겨워한다. 나비앤필드(02-734-3101)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국립민속박물관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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