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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 ③

‘젖병 물리고 응가 치우다 아기들과 사랑에 빠져요

세종대 동아리 ‘죽순’의 영아보호소 자원봉사 … “만남 짧지만 우리 정성 부모 못지않죠”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젖병 물리고 응가 치우다 아기들과 사랑에 빠져요

‘젖병 물리고 응가 치우다 아기들과 사랑에 빠져요

아기들을 돌보는 세종대 동아리 ‘죽순’ 회원들.

“아유, 응가 했구나~.”

스무 살을 갓 넘긴 듯 보이는 남학생이 갓난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들어 똥기저귀를 벗겨낸다. 엉덩이에 묻은 누런 배설물을 신속히 닦아내고, 똥기저귀는 조심스럽게 돌돌 말아 공처럼 만들었다. 배설물을 처리하는 솜씨뿐이 아니다. 목욕시키고 타월로 물기를 닦아준 뒤 분을 바르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새로 입힌 옷의 앞깃은 살며시 여며 리본으로 예쁘게 매듭지었다. 젖병을 물리고, 우는 아기를 안아 어르는 모습은 기본. 아기 돌보는 기술이 여느 엄마들 못지않다.

입양 대기 중인 아기들 위해 2년째 꾸준한 봉사

세종대 봉사동아리 ‘죽순’의 김영승(22) 군은 2년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한 대한사회복지회 서울영아일시보호소(이하 영아보호소)에서 아기 돌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두 가지 이상 할 만큼 바쁜 요즘이지만, 매달 둘째 넷째 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있는 봉사활동엔 빠지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설과 추석, 성탄절 모두 이곳 영아보호소에서 아기들과 함께 지냈다.

“손길이 필요한 건 공휴일이나 명절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때는 사람들이 부족할 테니 더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우리 동아리에서 열명이 여기에 왔어요.”



기자가 찾아간 1월8일에도 10여 명의 ‘죽순’ 회원이 일손을 도우러 찾아왔다. 대부분 1학년과 2학년인 이들은 방학임에도 봉사활동을 쉬지 않는다.

영아보호소는 미혼모나 경제 사정 등으로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 아기들이 태어난 직후 맡겨지는 곳이다. 10여 명의 보육사가 있지만 30명 넘는 아기를 돌보기엔 충분치 않기에 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죽순’은 10여 년째 영아보호소에서 보육사를 도와 아기 돌봄 봉사를 해오고 있다.

‘젖병 물리고 응가 치우다 아기들과 사랑에 빠져요

자원봉사를 하는 2시간 동안 아기 목욕, 우유 먹이기, 청소 등을 한다.

보호소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소지품을 맡긴 뒤 분홍색 가운으로 갈아입은 ‘죽순’ 회원들은 손을 씻었다. 아이들을 찌르지 않게끔 머리를 묶어야 하고 손톱도 길면 안 된다. 짙은 화장이나 진한 향수냄새 역시 금지. 이들은 보통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여 동안 아기 목욕, 우유 먹이기, 청소 등을 한다.

“봉사활동은 전적으로 자율이에요. 하지만 다들 약속된 시간은 지키려고 하죠. 10년간 저희 동아리랑 보호소가 쌓은 신뢰를 무너뜨려도 안 되고요.”

봉사동아리인 만큼 김장 봉사, 연탄 나눔 봉사, 노인 돌봄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아기 돌봄 봉사는 ‘죽순’ 회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죽순’의 회장 이태승(22) 군은 “봉사활동 날을 기다리는 친구들까지 있을 정도로 호응이 크다”고 말한다.

‘죽순’의 OB 모임인 ‘대나무’ 선배들 역시 지금까지 기부와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영아보호소 박혜숙 보모장은 “(봉사자가) 자주 바뀌는 것보다는 꾸준히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면서 ‘죽순’에 대해 “10년 이상 의지해온 믿음이 가는 이들”이라고 고마워했다.

물론 아기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 스스로 목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들을 안는 방법부터 우유 먹이는 법, 트림 시키는 법, 기저귀 가는 법까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가 필요하다. 때로 배설물 처리를 잘못하는 경우엔 봉사자 옷에 누런 자국이 남기도 한다. “대학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해보려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다”는 1학년 임연진(20) 양은 봉사 초기에 아기를 안아보고는 당황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제 투박한 손으로 작은 아기를 안았는데 진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아기가 파르르 떨면서 우는데 이유를 모르니까 같이 울고 싶어졌죠. 나중에야 그 울음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란 걸 알았어요.”

처음엔 어색했다지만 이젠 ‘엄마 자세’가 나온다. 임양이 울던 한 아기를 들어 어깨에 얹자 아기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의 아기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입양될 때까지 보호소에서 돌봄을 받는다. 태어나기 전부터 입양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아기들이 1~2주 사이에 양부모를 만나 떠나게 되고, 입양되지 않을 경우 3개월 정도 머문 뒤 위탁가정이나 기관으로 간다. 하루에 서너 명의 아기가 보호소로 맡겨지고 또 서너 명의 아기가 떠나는 만큼 만남과 헤어짐이 연속된다. ‘죽순’ 회원들은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헤어져야 하니 아쉽지만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어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때론 힘들지만 아기 눈망울 보면 다시 힘이 솟아요”

“입양되는 아기들은 괜찮지만 몸이 아파서 입양이 어려운 아기들도 있어요. 더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선뜻 맡아줄 부모를 찾기 어렵죠. 그런 아기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이태승 군)

그래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안아주게 된다고 한다. 봉사하는 2시간 내내 적게는 몸무게 3kg 남짓한 핏덩이 신생아부터 많게는 6개월 넘은 6kg 이상의 아기까지 수십 명의 아기를 안고 어르는 동작을 반복한 회원들. 그만하면 지쳤을 법도 한데 힘든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결이 뭘까. 임연진 양의 말이다.

“아기 눈을 보면 저도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미소를 보면 힘도 나고요. 오히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죠.”

고백하자면, 기자 역시 취재 중 아기를 안아보려 시도했지만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완벽히 내 보살핌에 의지해야 하는 작은 몸뚱이를 보듬는 행위란 여간 두렵고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더불어 아기를 끌어안아 보살필 만큼 사랑이 넉넉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아기를 돌보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성숙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죽순’ 회원들보다 더 나이 많은 기자가 심히 부끄러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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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1.22 620호 (p66~67)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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