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2007.09.04

외국인 선수 급증이 자국 선수 성장 저해?

영국 정부의 깊어가는 축구 고민

  • 런던=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7-08-29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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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선수 급증이 자국 선수 성장 저해?
    “돈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외국 선수들을 사오느니 영국 축구 꿈나무 육성에 발벗고 나서라!”

    고든 브라운 신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내각의 제임스 퍼넬 문화부 장관이 외국인 선수가 판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향해 내뱉은 쓴소리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 외국인 용병 선수가 급증한 것은 물론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문화체육 정책을 대표하는 현직 각료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퍼넬 장관은 요즘 영국 축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면서 유소년 축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도대체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외국인 선수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기에 장관이 직접 나서는 것일까.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20개 클럽에는 66개국에서 330명에 이르는 외국인 선수가 등록돼 있다. 지난 시즌 280명에 비해 2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스타급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 선수라고 보면 된다는 이야기다. 프리미어리그가 첫선을 보인 15년 전 외국인 선수는 고작 11명에 불과했다.

    이번 시즌 들어서도 이런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까지 리버풀이 11명, 맨체스터 시티가 8명, 아스날과 맨유가 각각 4명의 외국인 선수와 계약을 마쳤다.



    물론 명망 있는 외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로 몰려드는 것은 그만큼 영국 축구의 위상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만큼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두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영국 축구대표팀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기록한 초라한 성적표를 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잉글랜드팀이 월드컵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은 1966년.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가 돼버렸다. 축구 종가 영국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주저앉아버린 셈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 러시를 비판하는 축구 관계자들이 정부가 나서서라도 프리미어리그의 선수 충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 규제 찬성론자들은 영국 대표팀이 최근 수년간 각종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재능 있는 국내 유소년 선수 육성은 외면한 채 흥행몰이를 할 수 있는 외국인 용병을 수입하는 데만 눈독을 들여온 프리미어리그의 관행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조차 일부 스포츠 종목이 선수 배정에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드래프트제를 실시하는데, 현재 프리미어리그는 돈 많은 클럽 구단주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선수를 충원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운영에 대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측은 외국인 선수 쿼터제 같은 인위적 규제를 도입할 경우 좋은 선수들을 다른 유럽국가들에 빼앗기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쿼터제 도입으로 국내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해도 이는 ‘수적 증가’에 불과할 뿐 이들의 실력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영국 축구대표팀의 침체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 급증하기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실력 없는 감독이나 전술 문제는 제쳐두고 외국인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논란에 휩싸인 프리미어리그 측은 “축구 꿈나무를 길러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주된 관심사”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아직 구체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임금상한제나 쿼터제를 검토한 적이 있으나 실제 시행한 적은 없다. 퍼넬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정부가 한 걸음 나아갈지, 아니면 한발 물러설지가 결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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