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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추적

신데렐라 될 뻔한 ‘에르메스의 여인’

가짜학위 파문 신정아 교수 명품 선물로 주위 환심 사고 재벌가로부터는 파혼 아픔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신데렐라 될 뻔한 ‘에르메스의 여인’

신데렐라 될 뻔한 ‘에르메스의 여인’

7월18일 광주비엔날레 정문에서 광주 전남 지역 예술인연대 회원들이 신정아 공동감독 선임과 관련해 비엔날레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모 재벌그룹 회장의 장남 A씨는 외환위기 이후 아버지 회사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 규모가 더 큰 재벌집안 딸과 결혼했다. A씨는 결혼을 약속한 B씨가 있었음에도 집안의 만류로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B씨는 A씨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A씨와의 결혼을 굳게 믿어왔던 B씨가 받은 충격은 컸다. 결국 B씨는 구설수를 두려워한 A씨 집안의 뜻에 따라 도망치듯 외국 유학을 떠났고, B씨가 유학을 떠난 사이 A씨 집안은 재벌가 며느리를 맞아들였다. B씨의 집안도 만만치 않은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가세가 기운다는 게 파혼 사유였다고 한다. 주변에선 ‘서로 격이 맞지 않은 탓도 있지만, 경영난을 겪던 이 재벌기업이 정략적으로 다른 재벌가 며느리를 맞아들인 것’이라는 소리가 당연히 나왔다.”

2002년 10월24일자(356호) ‘주간동아’ 커버스토리 ‘재벌 3세대 혼맥’은 한 재벌가의 아들과 그 여자친구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을 다뤘다. 당시 독자들은 기사에 나온 B씨와 A씨 집안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나 시인도 부인도 않는 재벌의 ‘묵비권’ 전략과 ‘B씨의 가슴 아픈 사랑을 파헤치지 말라’는 동정 여론 속에 이 사건은 세인의 기억에서 잊혔다. 5년이 지난 요즘, 이 불행한 사랑이 다시 세인의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사랑의 주인공이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동국대 신정아(36) 교수. 최근 가짜 학위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씨가 바로 기사 속의 이니셜 ‘B’다. 신씨는 당시 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신씨가 재벌가 며느리가 될 뻔한 소문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7월13일 한 언론의 보도도 신데렐라가 되려다 만 신씨의 아픈 과거를 거론했다.



파혼 충격 후 도망치듯 외국 유학

“신씨를 이해하기 위해선 K미술관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 큐레이터가 된 정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처세술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미술관 관장의 며느리가 된다는 풍문까지 나돌았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신씨는 아픔을 품은 채 유학길에 오른 셈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학위가 진위 논쟁에 휘말린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신정아,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2007년 10월 어느 날 ‘후앙 미로’ 특별전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신씨가 불쑥 찾아왔어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고 싶다면서요. 유학 경험도 있어 ‘영어통역을 맡기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곧바로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어요.”

1997년 금호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였던 경기대 박영택 교수는 신정아 동국대 교수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러나 10년이나 지난 일.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아르바이트생 신정아’는 가물가물하다. 계속된 대화 속에서 그가 어렵게 생각해낸 것이 “아주 싹싹한 사람” 정도다.

신씨가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명함을 내민 것은 1997년 12월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전격 발탁되면서부터다. 박 교수와 관장 측의 불협화음으로 큐레이터 자리가 공석이 되자 금호미술관 측은 신씨를 큐레이터로 발탁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박 교수는 “당시 관장은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을 큐레이터에 앉히고 싶어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미술계 원로들에게도 아주 잘했다고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큐레이터 자리를 손에 넣은 신씨는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짧은 시간 안에 미술계 원로들과 인맥을 구축했던 것. 한 미술계 인사는 90년대 후반의 그를 “예의 바르고 예쁘고, 완벽했다”고 기억한다. 많은 미술계 원로들이 침이 마르게 신씨를 칭찬했을 뿐 아니라,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신씨의 별명은 ‘에르메스의 여인’이다. 최근 한 언론은 그가 주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품을 선물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신씨를 아는 미술계 인사들은 그의 첫인상을 ‘지적, 럭셔리, 우아’로 설명한다. ‘에어백이 8개나 달린’ 고급 외제차는 럭셔리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밖으로 보여지는 신씨는 이처럼 화려했다.

삼풍백화점 생존설은 사실일까

미술계 관계자들은 신씨가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동안 큐레이터들의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고, 현장 작업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신씨를 몇 번 만났다는 한 미술기자는 “미술이든 사생활이든 대화가 거의 없었다. 분위기가 썰렁했던 기억만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주장하는 예일대 박사학위 취득일은 2005년 5월14일이다. 당시 이 내용은 대부분의 중앙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다음은 그중 하나다.

“신정아(33)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 (5월)14일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국내 큐레이터로는 미술 관련 외국박사 1호이자 한국인으로는 첫 예일대 서양미술사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 논문은 최근 1년간 밤잠을 자지 않고 e메일을 통해 첨삭 받는 방식으로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신씨와 친분 있는 인사들은 당시 학위 취득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학위를 받은 뒤 축하파티도 열었다. 그러나 서울대 미대를 입학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예일대 박사’ 신씨를 의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신씨에게는 독특한 경력이 하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의 극적인 생존’이다. 그에게 이 사건은 하나의 ‘훈장’이 됐다. 이런 식이다.

“앞에 있던 남자가 날려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모습을 본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살아난다면 선행을 하며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 삼풍의 악몽은 극복됐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큐레이터가 돼 좋은 전시, 특히 가난한 화가들을 도울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미국 캔자스주립대에 유학하던 중 잠시 귀국했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신씨는 1997년경 건물 잔해에 깔렸던 사람들이 불안과 굴레를 벗고 다시 태어난다는 주제를 그린 ‘자유 속에서’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캔자스주립대 유니언갤러리에서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삶과 죽음의 영역을 유영했던 신씨는 그 경험을 고스란히 예술세계에 투영했던 것이다.

큐레이터 능력에 대해 반응 엇갈려

그는 올해로 10년차 큐레이터가 됐다. 업계에서 ‘중견’ 소리를 들을 정도의 캐리어다. 전시기획자 신씨에 대한 미술계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린다. 특히 또래 미술인들의 평가는 가히 부정적이다. 대중에게 영합하는 기획만 있을 뿐 의미 있는 작업은 없다는 혹평이다. 이들은 그의 예술을 모방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가 대박을 터뜨린 기획 대부분이 창조가 아닌 외국 기획전을 그대로 수입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기획이 ‘뉴욕의 다국적 디자이너전’(2003년)이다. 한 관계자는 “2003년 전시기획부문 대상을 받았을 당시 상을 준 ‘월간미술’에 ‘이 기획이 왜 상을 받았는지’를 문의하고 항의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며 신씨의 능력을 꼬집었다.

기존의 틀을 깬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정반대 평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일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 전시에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는 것이 몇몇 미술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전문가는 “성곡미술관에서 기획했던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이나 ‘월간미술’에서 전시기획자상을 받았던 ‘뉴욕의 다국적 디자이너전’의 경우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미술 속의 음악’, 어린이를 위해 마련된 ‘쿨룩이와 둠박해’ 등은 관객 눈높이에 맞춘 획기적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005년 여름 성곡미술관에서 기획했던 ‘행복한 동화책 여행-존 버닝햄,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 떠나요’전에는 무려 7만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 화제가 됐다.

신씨의 허위 학력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5년 신씨가 교수에 임용될 당시부터 이 논란은 미술계에 잠복해 있었다. 미대 교수 모임인 대학미술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이 논란을 주도했다. 2005년 9월경에는 4~5명의 자체 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협의회는 예일대 측에 공문을 보내 그의 학위가 가짜라는 증거를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한 미대 교수의 설명이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동문 명단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조사 결과를 동국대 A 교수에게 전했는데, 동국대는 임용을 강행했어요. 이해할 수 없었죠.”

협의회는 4월에도 신씨가 지도교수였다고 주장하는 예일대 셔마이스터 교수에게 서한을 보내 “신씨를 지도한 바 없다”는 답을 받았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신씨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위치와 성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큐레이터를 ‘미술 정치’가 완성되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인맥도 만들 수 있고, 이용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씨가 바로 그런 경우”라며 혀를 찼다.

청송에서 본 신정아 교수의 가정환경

모친 빚에 시달리는 등 시골부자설 사실 아닌 듯


신씨는 1972년 경북 청송에서 주유소와 택시회사를 경영하는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부친이 사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언론이 파악한 신씨의 가정사다.

하지만 신씨 가정을 잘 아는 고향 이웃들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조그마한 시골에서 주유소와 택시회사를 갖고 있다고 무슨 돈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신씨의 어머니가 현재 수천만원대 빚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3년 전 신씨에게 거액을 빌려줬다는 이 지역의 한 자영업자는 언론에 비친 신씨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공개했다.

“평소 이씨(신씨의 모친)는 상당한 재력가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에서 금전거래가 많았다. 내 돈도 2000만원이나 빌려갔다. 그러나 아직까지 갚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딸에 대한 소문도 서울과 감이 다르다. 그는 “딸이 유학도 갔다 왔고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대학교수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현재 청송군 진부면에서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이 어린이집을 두고도 지역에서는 말이 많다. 자치단체장을 지낸 모 인사와 관계돼 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신씨 기억 속의 가족, 어머니, 고향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 같다. 신씨는 언젠가 한 칼럼에서 “어머니는 사랑으로 가득하고 수줍음이 깃든 눈으로 나를 껴안으며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고 말씀하셨다. … 새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젊은 어머니가 황홀하게 그려진다”고 쓴 바 있다.

조용했던 경북의 오지 청송은 요즘 시끄럽다. 어머니를 만나겠다며 서울에서 온 기자 20~30명이 산속 암자 앞에 진을 치고 있는가 하면, 신씨의 어린 시절을 확인하려는 취재진의 전화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어린이 학생회장을 지낸 ‘똑부러지는’ 아이로만 알았던 신씨의 일그러진 삶을 접하는 고향 사람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주간동아 2007.07.31 596호 (p18~20)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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