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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그 위에 국회 법사위원장이냐”

최연희 의원 성추행 봐주기 판결 논란 … 피해 여기자 “진심 왜곡 재판부에 또 충격”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法 그 위에 국회 법사위원장이냐”

“法 그 위에 국회 법사위원장이냐”

최연희 의원은 이번 선고유예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율사(律士) 출신 국회의원의 성추행 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역시 관대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6월14일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불구속 기소된 최연희 의원(62·무소속)에게 1심을 깨고 벌금 5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죄를 저지른 자 중 깊이 뉘우치는 사람에 대해 형의 선고를 미루었다가 2년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형벌을 내리지 않는 제도다. 이번 판결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던 1심 형량과 비교할 때 무죄선고나 다름없는 셈.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최 의원은 이번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재판부가 선고를 유예한 결정적 근거로 든 것은 바로 피해자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다. 최 의원이 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담은 편지를 피해자에게 전달했고, 여기자는 이를 받아들여 피고인을 용서한다는 뜻을 밝힌 것. 피해자가 용서한다는 의견서를 보낸 것은 고소를 취하하는 것과 비슷한 일로 판단했다는 게 담당 판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이러한 법리 해석을 두고 여성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6개 여성단체는 “사법부가 이번 판결을 통해 성추행이 경미한 범죄에 불과하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비판했다. 한국여기자협회 역시 성명서를 통해 “항소심 재판부가 내린 선고유예는 성범죄 문제 대처에 진일보한 우리 사회의 합의를 거꾸로 되돌리는 횡포에 가까운 판결”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판결은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용서의 의미를 지나치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법무법인 한결 박주민 변호사는 “피해자가 의견서를 내면서 ‘인간을 향한 용서가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길 바란다’는 전제를 달았는데, 재판부가 그것을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해 법적인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고유예로 의원직 유지

“피해자가 피고인을 용서했다지만,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거나 합의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해석한 재판부의 판결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서울대 법학과 조국 교수는 “피해자가 용서한 만큼 형량이 낮아질 수 있겠지만,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사건 자체로만 본다면 실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돼야 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매사에 모범이 돼야 할 공인에게는 법 적용이 엄격해야 한다. 하물며 일반인이 강제추행을 저질렀을 때 선고유예 판결이 나오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2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사건 당시 최 의원의 상황에 대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은 인정할 수 있으나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언급한다. 이는 피고인이 범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선고를 유예한 재판부의 판결은 ‘가해자 봐주기’로 보인다.”

그렇다면 비슷한 유형의 강제추행을 저지른 일반인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1999년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이 노래방에서 종업원인 30대 여성을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진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원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유형력(신체에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순간적인 것이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을 원심법원에 파기환송했고, 원심 법원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벌금 200만원의 원심 판결이 그대로 적용됐다. 이와 비교할 때, 공인인 최 의원에 대한 항소심 형량은 지나치게 가벼운 셈이다.

최 의원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추행의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석한 것에 대해서도 법률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피해자 측 문건영 변호사는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여전히 외적으로 가해진 힘의 정도만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는지를 따져야 할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의 자리는 사라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조국 교수 역시 “가슴을 만진 (최 의원의) 행동을 심각하지 않다고 여긴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최 의원의 행동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두른다거나 팔을 만지는 행위와 달리 가슴이나 둔부, 성기를 만지는 행위는 심각한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법원은 판·검사 생활을 했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인 최연희 의원의 처벌 수위를 놓고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판사는 이번 선고유예 판결이 가해자를 봐주는 차원에서 내려졌다는 시각에 동의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니까, 법원이 최 의원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선고를 유예하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 보면 피해자의 용서를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에게 벌금형 정도는 선고돼야 한다.”

지역구 삼척은 환영 분위기

피해 여기자 측도 이번 판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해자의 한 동료는 “피해 여기자가 자신의 진심을 재판부가 악용한 것에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사실 피해 여기자가 의견서를 내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최 의원의 딸이 찾아와 울면서 사과편지를 전했고 용서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의 이유로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명시돼 있었던 만큼, 그는 이 대목에 대한 변화가 있음을 재판부에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는 인간적인 이유에서 용서를 결심했고, 의견서를 내며 자신의 용서가 정치권 등에서 악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의원에게 무죄나 다름없는 선고유예 판결이 나온 것을 보며 피해자도 충격을 받았다. 법조인들 사이에서조차 검찰이 법리적 해석의 잘못을 문제삼아 상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건이 재판부 판결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반면 최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 주민 중 상당수는 이번 선고유예 판결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3선 의원을 지내며 지역 발전을 위해 힘써온 그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의원직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 다음은 우현각 삼척시번영회장의 이야기다.

“일반인이 그랬다면 뉴스감도 아닌데, 최 의원은 공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사건의 쇼크 때문인지 최 의원은 이제 절대 술도 안 마시고, 서울에 의정활동이 없을 때마다 지역구로 내려온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 때문에 더 헌신적으로 지역구에 봉사한다. 일각에서는 ‘관대한’ 판결이라고 하는데, 우리 지역을 위해서는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최연희 의원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인다. 지역 민심도 호의적인 데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서 “도와달라”는 러브콜도 받았기 때문이다. 법원이 최 의원에게 선고유예라는 면죄부를 주기까지 과정을 지켜본 피해자 측 관계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디서든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는 판사가 유일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곳이 국정감사가 열리는 국회다. 그런데 최 의원은 법원을 감사하는 국회 법사위의 위원장이 아닌가. 게다가 피해자를 아는 법조인들이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을 보며 ‘고위층 인맥이 무섭다’는 것을 절감했다.”



주간동아 2007.07.10 593호 (p48~49)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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