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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대는 두 남자, 특별한 게 있다

승부사 강호동 VS 마왕 신해철 … 몸과 말의 건방짐 외면할 수 없는 매력

  •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zakka75@hanmail.net

들이대는 두 남자, 특별한 게 있다

들이대는 두 남자, 특별한 게 있다
MBC‘황금어장’의 한 코너 ‘무릎팍 도사’는 기존 토크쇼와 다르다. 여타 토크쇼가 가식과 홍보, 위선과 덕담으로 점철된다면 이 코너는 허구한 날 삼천포로 빠지면서 방송용과 비방(非放)용의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출연자의 비위를 맞추는 다른 MC들과 달리 이 코너의 좌장 강호동은 출연자를 도발하고 때로는 들이댄다. 아니, 자주 들이댄다. 그래서 출연자의 진심 비슷한 것들을 끄집어내고 위험수위 높은 발언도 이끌어낸다.

2월21일은 신해철이 출연한 날이었다. 이날의 ‘무릎팍 도사’는 어느 때보다 ‘위험’했다. 신해철은 “불법으로 음악 다운받는 사람들은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비롯해 대마초 비불법화, 간통죄 폐지 등 기존 주장들을 다시 한 번 터뜨렸다. 그가 폭탄 발언을 할 때마다 비상 사이렌이 울렸고 강호동은 과장된 표정으로 당황해했다. 자신을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빌기도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매일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MBC FM에서 ‘고스트 네이션’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고스트 네이션’에는 별도 작가가 없다. 신해철 혼자 말하고 음악을 튼다. PD도 국장급이 맡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방송사고를 감당하기 위해서다. 심야시간이라 누가 듣겠나 싶지만 그를 ‘마왕’이라 부르며 추종하는 일군의 열혈 청취자들이 있다.

음악의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고 출연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신해철 혼자 떠들 뿐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의 고민에 직격탄을 날리고,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며, 자신의 생각을 위험수위까지 펼친다. ‘무릎팍 도사’를 진행하는 강호동과 ‘고스트 네이션’의 신해철 모두 ‘위험한’ 프로그램을 이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강호동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천하장사였다. 그는 약관 스무 살에 이만기를 모래판에 꽂으며 씨름계를 평정했다. 기술 씨름이 주도하던 씨름판을 힘과 몸집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단숨에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음악은 여느 ‘오빠’들 처럼 발라드가 아니었다. 대학가요제 데뷔 무대에서 그는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했고 리드 기타까지 담당했다.

두 사람은 같은 해 자신들의 이력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도 똑같다. 1993년이었다. 신해철은 넥스트를 결성, 귀공자 이미지를 버리고 로커로 변신했다. 강호동은 이경규의 도움에 힘입어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의 한 코너 ‘소나기’에서 “행님아~”를 유행시키며 개그맨으로 변신했다.

들이대는 두 남자, 특별한 게 있다

2월21일 신해철은 ‘무릎팍 도사’ 게스트로 출연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최근 재즈 앨범 ‘Songs For The One’을 발표했지만 신해철에게는 여전히 넥스트에서 쌓은 로커 이미지가 강하다. 사투리와 로커, 한국의 문화지형도에서는 모두 비주류다. 그러나 그들은 비주류 이미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제국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제국을 지키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강호동은 철저한 승부사다. ‘무릎팍 도사’에서 주도권을 출연자에게 넘겨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상대방의 빈틈이 보이면 눈빛을 번쩍이며 그 틈을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화제가 될 만한 답변을 이끌어낸다. ‘야심만만’ ‘X맨’ 등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선 언제나 그런 식이다.

아슬아슬한 프로그램 진행

이 프로그램에는 어린 여자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다. 30대 후반 또는 40대 중견 연예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자신의 세계가 확립된 사람들이다. 강호동은 그 완성된 세계의 빈 곳을 노린다.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듯하면서도 샅바는 절대 놓지 않는 모래판의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씨름은 상대 선수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신해철은 강단의 웅변가다. 그에게는 상대의 반응이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 눈앞에 있든 자신의 생각을 글 쓰듯 말한다. 상대는 대화자가 아닌 독자가 된다. 심지어 인터뷰할 때도 그에게는 추가 질문이 필요 없다. 질문을 던지면 답변을 하고, 스스로 부족하다 싶으면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논리정연하지만 딱딱하지 않다.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에게 적만큼이나 지지세력이 많은 것은 그의 ‘설화(舌禍)’가 우발적인 게 아니라 확신범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강호동이 거구의 사내들과 맨몸을 맞대며 야성적 감각을 체화했다면 신해철은 무대에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압도하며 자신의 아우라를 쌓았다. 신해철이 ‘100분 토론’에서 쟁쟁한 출연자들을 제치고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은 대화가 아닌 연설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웅변 하나로 수만 대군의 사기를 쥐락펴락했던 로마 장군 같다. 강호동은 몸이고 신해철은 말이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다. 강호동은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계속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든다. 신해철은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하나의 완결체로 자신의 생각을 찔러넣는다. 강호동의 방식은 싸움에 유리하고, 신해철의 방식은 논박에 유리하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는 대중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싸움구경처럼 재미있는 건 없다. 하지만 상대를 제압하는 토론구경처럼 통쾌한 것도 없다. 억지가 승리하는 싸움구경은 낄낄거리게 되고, 논리가 승리하는 토론관람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호동이 인기 있는 고등학교 오락부장이라면 신해철은 추종자를 거느린 대학교 학생회장인 것이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승부수를 던졌고 그때마다 도박에 성공한 두 사람은 그러나 환경의 변화로 향후 입지가 달라질 가능성이 보인다. 지금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건 TV다. 강호동의 텃밭이다. 하지만 신해철은 딜레마다. 8년 만에 솔로 앨범을 냈지만 그가 뮤지션으로서 탄력을 받기에 음악은 대중문화에서 헤게모니를 잃었다. 따라서 뮤지션 신해철은 하나의 크레딧일 뿐, 그가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주수단은 말이 됐다. 신해철의 음악보다 그의 말이 더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강호동은 어떻게 아성을 이어나갈까. 신해철은 어떻게 말에 음악을 얹을까. 이 몸과 말의 싸움꾼이 향후 벌이게 될 전투의 주된 관전 포인트다.



주간동아 2007.04.10 580호 (p62~63)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zakka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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