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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크리켓 영웅 피살 꼬리 무는 미스터리

승부조작 폭로하려다 희생, 도박조직 개입 등 음모설 난무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oogle.com

英 크리켓 영웅 피살 꼬리 무는 미스터리

영국 크리켓 영웅이자 현 파키스탄 대표팀 감독인 로버트 울머가 호텔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아일랜드에 불의의 패배를 당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다. 크리켓을 국기로 삼는 파키스탄의 대표팀을 이끌고 중미의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에 참가한 울머 감독은 카리브해가 내려다보이는 페가수스 호텔 12층 374호, 자신이 묵던 방 욕실에서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에는 팀 성적 부진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가 자살했으리라 점쳐졌다. 그러나 자메이카 경찰이 부검을 통해 울머 감독이 면식범에게 목 졸려 사망했다고 발표하자, 영국 스포츠계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 열흘 넘도록 수사 상황 함구

특히 울머 감독이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 펴낼 자서전에서 국제 크리켓 무대 뒤에 감춰진 승부조작 스캔들을 폭로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 피살사건이 아니라, 부패로 얼룩진 국제 스포츠계의 거대한 음모에 의해 영국 출신 크리켓 감독이 희생된 희대의 스포츠 추리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사의 스포츠’로만 알려진 크리켓 경기를 둘러싸고 도박사들이 개입된 승부조작이나 금품거래가 횡행한다는 사실은 영국에서는 공공연한 소문이 된 지 오래다. 이번 피살사건을 계기로 영국 언론은 크리켓 승부조작 기법까지 소개하면서, 울머 감독이 이와 관련한 국제적 음모의 희생양이 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자메이카 경찰은 사건 발생 열흘이 넘도록 용의자 확보 여부 등 구체적인 수사 진척 상황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파키스탄 팀의 패배에 분노한 열성팬들의 소행일 가능성, 파키스탄 팀 내 갈등에 따른 우발적 사건일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찰은 호텔방에서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흔적이 없는 데다 자메이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이 흉기나 총기를 사용해 일어난다는 점을 들어 외국인, 그것도 울머 감독을 잘 아는 주변 인물에 의한 소행일 것이라는 정도만 공개했다. 경찰은 파키스탄 선수 전원의 지문을 채취했으며, 아일랜드 선수들은 물론 사건 당일 이 호텔에 묵었던 300여 명 투숙객 전원의 유전자 검사까지 실시할 방침이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최고의 크리켓 축제 중에 일어난 울머 감독의 피살사건이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음모설로 번지자, 파키스탄에서는 외무부 대변인까지 나서 각국 언론들의 추측성 보도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파키스탄크리켓협회는 로이터 등 일부 언론과 접촉해 ‘울머 감독이 피살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영국과 파키스탄 미묘한 신경전으로 번져

이처럼 울머 감독의 피살사건이 크리켓 강국인 영국과 파키스탄의 미묘한 신경전으로까지 번지고 있지만, 자메이카 경찰은 여전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상황을 가만히 복기해보면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인물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압축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평생 운동으로 다져진 장신의 스포츠맨을 쥐도 새도 모르게 목 졸라 죽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울머 감독이 피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그가 묵었던 374호에서 비명소리나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투숙객은 아무도 없다. 호텔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는 당시 화재대피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비상구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곳을 통해 374호에 접근한 제3의 인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관심은 그날 밤 페가수스 호텔 12층에 묵었던 투숙객들로 모아지지 않을 수 없다. 머지않아 20여 명에 불과한 12층 투숙객들 가운데 한 명으로 경찰 수사망이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인 크리켓 영웅의 피살사건을 놓고 숨막히는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주간동아 2007.04.10 580호 (p56~57)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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