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0

2007.04.10

시장경제 지킴이가 필요한 이유

  • 김종선 경원대 교수·경제학

    입력2007-04-04 14: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학생에게 고지식한 선생은 인기 학과보다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그 말을 따른 제자는 수년이 지나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그때 일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런 제자에게 교수는 또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유망한 중소기업에도 눈을 돌리라고 권한다. 그러나 한번 속은 제자가 다시 속을 리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결국 제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기업이 담합을 통해 중소기업에 비해 훨씬 쉽게 돈을 벌고 있음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담합행위는 시장에서의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경쟁 기업들과 생산량이나 가격을 사전에 조율하는 수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요즘 드러나고 있는 담합 사례를 보면 한마디로 철면피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에서부터 주방세제, 정유·유화, 이동통신 등까지 그 실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대기업의 횡포는 담합에만 그치지 않는다. 납품업체를 압박하는 대형 할인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수차례 고발됐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재래시장 소상인들은 하나 둘씩 망하고, 외국에서 건너온 ‘선배’ 유통업체들까지 모두 쫓겨나가고 말았다. 이런 현상을 보고 소비자들은 유통산업의 현대화니 토종 기업의 승리니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시장경제 공정한 룰 지키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수출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환율이 오를 때는 납품업체에 원화로 결제하더니 요즘처럼 환율이 떨어질 때는 달러화로 지급해 중소기업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일전에 본 TV 뉴스에서는 이런 얘기도 있었다. 친인척 보험 모집인을 통해 편의상 본인 서명 없이 가입한 계약자가 막상 지급사유가 생겼을 때 본인 서명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는 얘기다.



    이 글을 아직 경제를 모르는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탐관오리 얘긴가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렇다. 적어도 이런 일을 관행처럼 저질러온 대기업들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이 모두 중소기업을 압박하면서, 소비자를 속이면서 부당이익을 챙기는 것은 아니다. 원화절상이라는 가시밭을 중소협력업체와 함께 헤쳐나가고 있는 대기업이 왜 없겠는가. 10년 후를 내다보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대기업도 많다.

    이런 ‘착한’ 대기업들을 위해서라도, 또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을 지키지 않는 대기업을 적발해 가혹하게 벌해야 한다. 법적 대응이 미흡하다면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 나아가 그동안 부당하게 지불한 가격에 대해 집단소송을 벌이는 일까지도 강구해야 한다.

    시장개혁의 일선에 있는 공정위의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담합 외에도 재판매가격 유지, 약탈가격 설정, 끼워팔기 등 시장에서 일어나는 불공정거래 행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래서 더욱 분발하는, 또 혹시 있을지 모를 피조사 기업과의 ‘담합’을 예방하는 내부장치를 갖춘 시장경제 지킴이의 모습을 기대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