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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 감독

실화에서 캐낸 원석 상상력으로 보석 가공

실화에서 캐낸 원석 상상력으로 보석 가공

실화에서 캐낸 원석 상상력으로 보석 가공
박진표 감독은 키가 크다. 그에게 키가 몇 센티미터냐고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키 이야기하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도 좋아’를 2002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다. 박진표 감독이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했는데 무대가 너무 컸던 데다 당시 뒷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잘 생각나진 않았다. 하지만 키가 무척 컸던 것은 기억에 남았다.

그때 나는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섹스신도 기대치를 뛰어넘었지만, 할머니의 몸속으로 삽입되는 할아버지의 성기가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 속의 그분들은 배우가 아니라 영화 내용의 실제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도 야하거나 천박하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슬펐다. 우리도 저렇게 늙어갈 것이 아닌가. 남녀 사이 애정의 모습은 20대나 70대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대됐고, 도쿄 필름엑스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은 ‘죽어도 좋아’는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기 위해 반년 넘게 심의와 싸워야 했다. 주인공 할아버지의 성기 노출이 문제가 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것. 이에 불복한 영화사는 재심의를 신청했고, 결국 세 차례의 심의 반려라는 진통을 겪은 후 필름 삭제 없이 성기 노출 장면을 어둡게 처리하는 ‘색보정’으로 극장에서 개봉될 수 있었다.

방송국 PD 출신 … 다큐멘터리 주로 제작

실화에서 캐낸 원석 상상력으로 보석 가공
박진표 감독을 사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두 번째 작품 ‘너는 내 운명’이 개봉된 이후 청담동 카페에서다. 그것도 계획된 만남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부터 내통하던 사진작가 김용호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박 감독을 만난 것이다. 그때 나는 학교 후배이기도 한 ‘얼굴 없는 미녀’의 김인식 감독을 만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그가 앉아 있었다. ‘너는 내 운명’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영화사 ‘봄’의 이유진 씨와 함께였다. 이유진 프로듀서와 나는 탱고 바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이유진도 나처럼 탱고 마니아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한 번도 함께 춤을 춰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홍대 앞 어느 탱고 바에서 춤을 신청했는데,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에 수만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다음에 추자고 하는 것이었다! 직업적으로 부딪치는 사람들과 춤을 춘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춤은 춤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그 자체로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합석했고 그날 술은 이유진 프로듀서가 샀다. 내 기억으로, 내가 영화사 관계자에게 술이나 밥을 대접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지난 15년 동안 냉정한 비평을 위해 나는 그런 자리를 일부러 피해왔다. 커피 한잔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인적인 접대가 아니라 여러 명이 어울린 술자리였던 데다 ‘너는 내 운명’이 개봉된 지 꽤 지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술값을 낼 때 굳이 막지 않았다.

‘너는 내 운명’은 ‘죽어도 좋아’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다. ‘죽어도 좋아’를 볼 때만 해도 박진표 감독은 고독한 작가주의의 길을 걷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는 내 운명’은 굉장히 뜨거운 영화였다. ‘죽어도 좋아’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온 그 작품은, 시골 노총각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던 유흥업소 종업원 출신의 여성이 에이즈(AIDS)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겪게 되는 파국과 진정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박진표 감독은 원래 텔레비전 방송국 PD 출신이다. 방송국에서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했다.

실화에서 캐낸 원석 상상력으로 보석 가공
이형호 군 유괴사건 소재 … 실제와 많이 달라

그의 세 번째 작품은, 그때 술을 샀던 이유진 프로듀서가 새로 만든 영화사 ‘집’에서 제작했다. 이 프로듀서가 독립하면서 박진표 감독을 데려간 셈이다.

1991년 압구정동 이형호 군 유괴사건이 났을 때 박진표 감독은 한 방송 제작사의 조연출로 일하고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유괴된 지 44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 이형호 군 사건을 심층 보도했는데, 그 프로그램의 조연출이 박 감독이었다.

“‘그놈 목소리’의 마지막에 이형호 군을 유괴했던 실제 범인의 목소리와 몽타주를 공개했다. 현상수배극을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다. 영화 자체로 봐주시고, 범인에 대해서는 영화가 끝난 후 생각해달라.”

박진표 감독은 지금까지 모두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와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대중을 상대로 하므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가령 ‘너는 내 운명’에서 시골 노총각과 그의 부인은 험난한 장애물을 넘어 사랑을 지키는 것으로 돼 있지만, 현실에서 그 부부는 결국 헤어졌다.

‘그놈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는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가 텔레비전 방송국 9시 뉴스 앵커로 그려졌지만, 실제로 이형호 군의 아버지는 동대문에서 상가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도 영화에서는 한여름으로 설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2월에서 3월 사이였다. 트렁크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형사가 차와 함께 범인에게 납치되는 장면이 영화엔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영화에서 유괴당한 아이 목소리를 들려주면 돈을 주겠다는 부모의 말에 범인은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결국 영화에서 이 목소리는 녹음된 것으로 밝혀지지만, 실제 범인은 단 한 번도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또 영화에서는 유괴된 상우가 외아들이지만, 실제로는 3형제였다. 그리고 가족들이 두 차례에 걸쳐 1억원씩 모두 2억원의 현금을 범인에게 주지만, 실제로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1991년 2월20일 범인은 상업은행 서울 상계동 지점에서 700만원을 출금하려다 은행 창구직원이 사고 계좌임을 알고 놀라는 표정을 본 뒤 황급히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실제와 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현실의 소재를 가지고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영화적으로 각색했지만, ‘그놈 목소리’에는 범인과 가족이 갖는 긴장감이나 소재를 바라보는 독창적 안목이 부족한 듯하다.

범인과 가족 긴장감 넘치나 독창적 안목은 부족

“영화를 본 후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건 당시 이형호 군의 아버지가 ‘술을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손이 시커멓게 멍들 때까지 문을 때려도 아픈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진표 감독은 중앙대 영화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지만 방송사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뒤늦게 영화에 뛰어들었다. 사건을 취재하던 당시 방송사 조연출로서의 강렬한 기억이 이 소재를 다시 영화로 만들게 했을 것이다. 실화에서 건져올린 소재를 영화적으로 재미있고 싱싱하게 가공하는 데 탁월한 박 감독에게 계속 실화 소재의 작품을 만들 것인지 묻자, 그는 웃기만 했다. 棟영화 ‘그놈 목소리’ 시사회장. 설경구, 김남주와 함께한 박진표 감독(왼쪽부터).



주간동아 573호 (p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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