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7

2007.01.02

아우성과 상실을 넘어서

  • 김기정 연세대 교수·정치학

    입력2007-01-02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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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는 훌륭한 법조인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오래전에 썼던 ‘어느 제야(除夜)에’라는 시는 “그 많은 아우성과 그 많은 상실을 남기고 너는 갔다”로 시작된다. 그가 시를 썼던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제야도 그랬거니와, 2006년 한 해도 그의 시구처럼 수없이 많은 아우성과 상실을 남긴 채 저물고 있다. 북한 핵실험에 따른 동북아 국제정치의 긴장이 나라 밖에서 터져나온 아우성이었다면, 바다이야기나 부동산 사태로 인한 국민의 탄식은 씁쓸한 상실감으로 남았다.

    그러나 상실감보다 더 큰 아픔은 우리 사회에서 극도의 증오를 목도한 일이다. 이념과 이익이 서로 다른 집단들 간에 주고받는 언사나 행동에는 죽기살기식의 증오감만 그득하다. 정부를 향한 언론의 논조도 예외가 아니다. 비판의 도를 넘어 살벌하기가 이를 데 없다. 광기에 가까운 증오는 한국 사회가 겪어왔던 역사적 과정의 정직한 징표일 것이다. 격심한 대립과 투쟁이 어느덧 집단 체질화되고 문화가 되어 관용과 혜량의 여유는 주변으로 내몰렸다. 앞만 보고 달렸던 압축성장 시대와 민주화 투쟁의 업보를 지금 우리 시대가 고스란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노도(怒濤) 같은 아우성과 상실감이 2007년에도 쉬이 가실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타협과 관용의 학습기간이라고는 하나 너무나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포용하고 통합을 주도해야 할 사회적 주체들도 되레 대립의 전선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기관이나 언론도 대립전선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도 정부 권력과 자본 권력으로부터 협공당하듯 위축돼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희망을 건져 올리려 한다. 아우성과 상실을 한쪽으로 밀어놓으면 그 빈자리에 희망이 채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눈부신 해에 희망의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희망을 가져보자. 미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예측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내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도와 결심으로 만들어진다.

    2007년 새로운 희망에 커다란 의미 부여



    얼마 전 어렵사리 재개된 6자회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만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갖자. 2007년 어느 시점에 북한의 핵 포기와 북미 외교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정치적 결단이 있었으면 한다. 그 구도 속에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노력도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한반도 냉전구도를 변화시키는 일은 숙원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에도 희망을 가져보자. 노무현 정권 마지막 1년에 마무리해야 할 일도 많고, 다음 정권이 계승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레임덕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타박만 할 것이 아니라 정권 스스로 희망을 견지하면서 국정을 마무리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2007년은 새 희망을 약속하는 지도자를 뽑는 해다. 새로 선출될 지도자는 뚜렷한 역사적 인식과 미래상에 대한 목표와 비전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현시대의 좌표를 찾아내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구시대로의 회귀를 부추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위기에 직면한 경제를 탄탄한 토대 위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어떤 구실로도 민주주의 원칙을 손상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울러 한민족 통합의 토대를 열어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증오나 대립보다는 타협과 통합을 일궈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경륜을 지니면서도 노회하지 않고, 지혜가 충만하되 계략을 일삼지 않는 지도자를 만들어보자. 그를 통해 아우성과 상실보다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들로 가득할 2007년의 제야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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