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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가족이 힘이다

“가족은 곧 내 존재 이유”

유명인들의 애틋한 가족 체험기 … “힘들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나”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가족은 곧 내 존재 이유”

강지원 변호사 “수배 중인 아들 보러 험한 산길 올라온 두 노인네…”

“가족은 곧 내 존재 이유”
오랫동안 청소년 문제에 열정을 쏟아온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 강지원(57) 변호사. 부인 김영란 씨가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내가 사법고시에 수석합격(18회)했을 때보다 더 기쁘다”며 감격해하자 주위 사람들은 실눈을 뜨고 봤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묘한 경쟁심과 시기, 질투심도 생기게 마련. 그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부부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신기해하는데, 우리 부부는 함께 법조계에 몸담았지만 경쟁이나 질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서로를 존중해왔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죠. 아내한테 참 고마운 게, 동기들이 승진하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을 때 서울고검 검사를 자청한 적이 있어요. 그 문제를 놓고 아내와 상의했더니 조직 생리를 잘 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더군요. ‘역시 아내밖에 없구나’ 싶었죠. 청소년 사업 한다고 28년간 평검사로 있다 퇴임했지만, 아내는 한 번도 바가지를 긁은 적이 없어요. 보통 아내라면 요직이나 승진에 관심 없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댔을 텐데 말이죠. 지금까지 청소년 사업에 전념할 수 있었던 건 나를 믿고 도와준 아내 덕분이에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강 변호사는 3선개헌 반대 시위 주동자로 지목돼 신문에 ‘퇴학’ 기사가 실리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기사를 본 그는 곧장 역으로 달려가 무작정 호남선 밤열차를 탔다. 미처 집에 연락할 틈도 없이 야반도주해 숨어든 곳은 전남 장성의 천진암. 첩첩산중에서 한 달간 숨어 지낼 무렵 부모님이 찾아왔다.

“먼발치에서 사람이 올라오는데 누군가 했더니 부모님이었어요. 서울에서 그 먼 곳까지 찾아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죠. 두 노인네가 옷과 밑반찬을 챙긴 보따리를 들고 혹시 미행이라도 당할까 주위를 살피면서 힘겹게 올라오시는 모습을 보자 코끝이 시큰해졌어요.”



강 변호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부모님의 태도였다. 보통의 부모라면 “어떻게 들어간 서울대학인데 퇴학이라니…” 하면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달랐다. “몸조심하고 건강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날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못할 짓 한 걸 뒤늦게 깨달은 강 변호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세상 누가 뭐라 해도 그저 묵묵히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가족은 늘 힘이 된다.

숨어 지내는 아들에게 호통치기는커녕 “몸조심하라”

“존재의 근원이자 디엔에이(DNA)를 공유하는 사이가 가족이에요. 공통분모 때문에 서로 믿고 이해하고 돕는 거죠. 가출한 아이들을 보면 잘 데 없고 용돈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가족이더라고요. 가족복귀 심리는 본능인데, 현실이 힘드니까 일탈하는 거고요. 가족 울타리가 튼튼하면 서로에게 보호막이 되고 일탈의 충동도 막을 수 있어요. 아이든 어른이든 가족 간에 안정감이 없고 믿음이 부족할 때 사고를 치고 실패를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가족은 삶의 텃밭이자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어요. 수십 년간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가족학을 공부하면서 새삼 가족의 가치를 깨달았어요.”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10리 떨어진 초등학교 입학 때 기뻐하시던 내 아버지”

“가족은 곧 내 존재 이유”
‘화장하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은 유상옥(73) 회장은 55세에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현역 최고경영자(CEO)다.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 ‘33에 나서 55에 서다’ 등 여러 권의 책을 낸 유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선산과 은사나 친구 집안의 묘를 순례한다. 국가에 역사와 문화가 있다면, 가족은 내력과 가풍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생활공동체이자 삶의 본질입니다. 밖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죠. 가족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어요. 선대의 묘는 자신의 뿌리와 존재를 확인하고 가족의 가치와 내력, 추억을 더듬는 장소로 아주 좋은 곳입니다.”

이삭 한 개도 귀히 여기던 아버지의 가르침 이어받아

해방 전, 유 회장의 부친은 10리를 걸어 장남인 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몹시 기뻐했다. 어린 나이의 유 회장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자식들이 학교에 합격하고 졸업하고 취직할 때가 한 집안의 가장이자 부모로서 가장 기쁜 순간”임을 알게 됐다. 부친은 논 세 마지기와 텃밭 천 평을 가꾸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었다. 농한기에 할 일이 없으면 동네 공방에서 목공 기술을 배워 집에서 쓸 물건들을 직접 만들었다.

“아버지는 밥그릇에 밥알 남기지 마라, 공부해야 바른 사람이 된다, 부지런해야 먹고산다 등 늘 밥상머리 교육을 시키셨어요. 학교에 갔다오면 금간 쪽박을 들려주고 보리밭으로 내쫓아 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줍게 했는데, 기껏해야 한 바가지도 안 됐어요. 뙤약볕에 양식도 안 되는 걸 주우라니, 어린 마음에 이해할 수도 없고 몹시 싫었죠. 일 년 내내 애써 농사지은 것이니 한 톨 남김없이 아껴야 한다는 걸 나중에 배웠어요. 아버지의 가르침과 근면함은 CEO로 기업을 이끄는 삶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부친은 42세 젊은 나이에 사고로 숨졌다. 유 회장은 6남매 중 장남으로 신문보급소를 하며 집안을 책임졌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6·25전쟁 중에 보급소를 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9·28 서울수복 직후라 구독자라고 해봐야 겨우 100명이었다.

“그때 잠 한번 실컷 자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래도 내 손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어떻게 하면 구독자를 늘릴까 그 궁리만 했지 힘든 줄은 몰랐죠. 역경에 굴하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준 게 가족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농사와 험한 일에 단련된 건강체질이라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던 유 회장이 어느 날 심한 몸살로 병원에 입원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자식들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래서 가족이 좋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나이가 많다 보니 손주들이 태어나는 걸 바라보는 기쁨도 컸습니다. 모두 네 명인데, 특히 넷째는 아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일 때 그곳에서 낳았어요. 멀리 있으니 더 애틋하고 보고 싶더군요. 부모에게 받은 가르침을 대대로 이어 가정을 일구고 화목할 때 가족의 가치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 환갑을 맞아 시집을 출간하면서 출판기념회와 잔치를 함께 했다. 친구와 친지, 동료 등 수백명이 자리한 가운데 유 회장은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을 차례로 세워놓고 소개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노희경 드라마작가내 생애 가장 특별했던 시간들 ‘아버지와의 마지막 한 달‘

일밖에 모르던 중년 가장이 ‘폐암 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뒤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화해하는 내용을 그린 MBC 창사특집극 ‘기적’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얼마 전 종영됐다. ‘꽃보다 아름다워’ 등 드라마를 통해 진한 가족애를 감동적으로 그려온 작가 노희경(40) 씨는 공교롭게도 자신이 집필한 ‘기적’이 첫 방송되던 날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들었는데, 어느 일본 작가는 ‘누가 안 보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대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하며 손뼉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아마 3, 4년 전만 해도 나도 그들과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콤플렉스 같던 가족이 어느새 삶의 기준으로

20대까지 그에게 가족은 ‘별 의미 없는’ 혈연일 뿐이었다. 때로는 짐스런 존재이자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가난과 더불어 가족과 불화했던 그는 스무 살 중반에 독립한 후 가족을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돈 낼 일 있으면 보는 식이었고, 어느 땐 친구보다 못한 것” 같았던 가족. 하지만 이제 그에게 가족은 양심의 전부이자 잘 살았나, 못 살았나를 가늠하는 삶의 기준이 됐다.

“몇 년 전 드라마 ‘고독’을 쓴 뒤 많은 걸 잃었어요. 시청자들에게 비판받고, 마니아층을 잃고, 같이 일한 사람들과도 관계도 나빠졌죠. 이러다 더 이상 방송생활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그 와중에 오빠가 이혼하면서 조카 둘을 떠맡게 됐죠.”

아버지를 비롯해 결혼한 언니네, 조카까지 9명이 그의 집에서 함께 부대끼고 생활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혼자 살 땐 돈과 친구, 일이 있어 아쉬울 게 없었지만 문득문득 치솟는 화를 억누르기 힘들었고 그 화의 정체도 알지 못했다.

“성격이 뒤틀린 걸 알면서 가족과 풀지 못한 게 있었어요. 그런데 한집에 살면서 아버지와 차를 마실 때, 조카들이 믿음을 주는 눈빛을 보내올 때 예전에 몰랐던 행복감이 느껴졌어요. 40년 된 아버지의 눈빛은 10년 된 친구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눈빛이었죠. 아, 내가 그동안 가족의 다정한 눈빛,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가족에 대한 미움과 원망, 부담감이 날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이중적으로 살았던 거예요.”

가족과 화해하면서 정체 모를 화와 자신을 짓누르던 것들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한 달간 하루 30분씩 손을 꼭 잡고 대화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땐 두 시간이 됐고, 어느 땐 일이 바빠 거르기도 했다.

“이때 당신이 살아오신 얘기를 처음으로 들려주며 미안하다, 고맙다 그러시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저는 못되게 군 것을 용서 빌었죠.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한 달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덕분에 형제들과도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에 담아둔 응어리를 풀 수 있었죠.”

장례를 치르면서 가족들은 내내 웃었다. 문상 온 사람들은 “이런 장례식장 분위기는 처음이다” “재미있었다” “행복하게 있다 간다”는 인사들을 전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시간을 주고 형제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한집에서 북적대며 살 맞대고 살지 않았다면 ‘아름답고 행복했던’ 마지막 한 달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아는 분이 해주신 말씀인데, 돌아가시는 분은 절대 그냥 안 죽는대요. 남겨진 가족에게 선물을 주고 가는데 불효자는 뒤늦게 선물을 받고 효자는 당장 받는대요. 아버지가 아프시면서 그 선물을 정말 받고 싶었는데, 한 달 동안 폭포수처럼 받은 것 같아요. 가족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쓴 가족사랑 편지“아이들의 엄마 사랑, 남편의 아내 배려가 나의 버팀목

“가족은 곧 내 존재 이유”
”우리 아들은 “엄마!” 하고 자주 전화를 한다. 그러고는 바쁘다는 엄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근데…” 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로 게임을 해도 되는지, 컴퓨터를 해도 되는지로 이어지는 아들의 이야기들은 정말 절절하다. 그래서 회의 중이어도 아이 전화는 꼭 받으려고 한다. 그 순간 해결해주지 않으면 다음부터 엄마 몰래 탈선(?)할까 봐서다. 한번은 의원총회장에 있을 때 전화가 왔는데, 아이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앞에 계신 의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런 아들이 “엄마가 아주 가끔이라도 일찍 들어오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면 가슴이 찡하다. 엄마 노릇 못하는 엄마를 이해해서 그마저도 ‘매일’이 아니라 ‘아주 가끔’이다.

하루는 그런다. “엄마, 내가 비밀 장래희망이 있었는데, 이제 그것은 안 하기로 하고 만화가가 되기로 했어”라고. 그래서 “원래 장래희망이 뭐였는데?”라고 물었다. “응, 대통령. 근데 사람들이 하도 욕해서 안 하기로 했어.” 어이쿠! 난 집에 가서 절대로 대통령 욕을 하지 않는다. 나라의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아이들이 가질 수 있도록. ‘도대체 우리 아이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주워듣고 그러는 거지’라는 생각에 속상했다.

우리 아이, 우리 남편 ‘미안하다, 사랑한다’

아들에 비하면 우리 딸은 세련 그 자체다. 주로 문자를 이용한다. ‘엄마 내일 불우이웃돕기 3000원 내야 해.’ ‘버스카드 충전해야 돼.’ 일상의 문자대화도 즐거운데, 하루는 감기가 심한 나에게 ‘엄마 감기 조심하시고, 몸조림 잘하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 녀석, 몸조리를 몸조림으로 알고 있구나.’ 그래도 눈물이 핑 돈다.

2006년 우리 딸의 생일이 하필이면 보궐선거일이었다. 나는 오후 9시쯤에 당사에 가야 했으므로 아이랑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축하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당내에 약간의 사고가 있었고, 내 전화기는 그야말로 불이 났다. 아이와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엄마 갈게.” 우리 딸의 황당한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우리 딸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가 없으면 의기소침해진다. 그래서 조찬회의가 있으면 되도록 식사가 끝난 시간쯤에 가려고 한다. 아이 얼굴이나 더 보고 가려고. 엄마가 잘 해주는 것 하나 없어도 끊임없이 엄마에게 지지를 보내는 우리 아이들, 엄마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보내는 우리 아이들, 난 늘 빚진 기분이다. 밖에서 장애아동 행사에 다니다 보면, ‘참 우리 애는? 날씨가 추운데 옷은 제대로 입고 갔나?’ 불현듯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우리 아이가 좀더 편히 사는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남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남편은 아내의 일에 매우 무관심한 것 같다. 그러나 가끔 툭하고 내뱉는 말에 깊은 관심과 걱정이 담겨 있다. 가끔 바쁜 나에게 투정을 부리고 이해도 안 해주는 것 같지만, 심하게 투정을 부린 다음 날은 어김없이 일찍 들어와 아이들의 머리를 감긴다. 나도 남편에게 국회와 당 이야기를 하다가 퇴박도 듣지만, 시간만 나면 밖에서 함부로 하기 어려운 말들을 계속 떠들어댄다. 그럼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밖에서 어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 가면 사그라진다. 나에게 늘 잔잔한 기쁨을 주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과 나를 감싸주는 남편이 있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우리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주간동아 2007.01.02 567호 (p34~37)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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