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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콩나물콩 원산지 실종사건

중국산이 北韓産 둔갑 세금 추징 … 국세심판원은 민경련만 믿고 세액 부과 취소 결정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수입 콩나물콩 원산지 실종사건

수입 콩나물콩 원산지 실종사건
북한 민족경제인련합회(이하 민경련)를 신뢰해야 할까, 아니면 중국 해관총서(중국세관)를 믿어야 할까.

중국산 대두(콩나물콩)와 녹두를 북한산으로 허위 표시해 한국에 반입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포탈했다며 인천세관이 C사에 추징한 79억6000여 만원의 세금에 대해 국세심판원이 최근 세액부과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서 국세심판원은 한국에 반입된 대두는 ‘중국산’이라는 해관총서의 회신보다 ‘북한산’이라는 민경련의 주장을 신뢰했다. 북한의 경협 창구인 민경련이 북한산이라고 밝힌 만큼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산 대두가 북한산으로 세탁돼 반입되면서 C사가 세금을 탈루했다며 관세청이 2004년 9월에 발표한 이 사건은, 인천본부세관에 공문 형식으로 들어온 통일부 관계자의 제보에서 비롯했다. 제보의 요지는 이렇다.

“중국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선박의 적재물품이 의심스럽다는 제보가 통일부로 들어왔다. 추적해달라.”



당시 인천세관은 중국산 말린 고추가 단둥에서 손질돼 북한산으로 둔갑한 뒤 한국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또 다른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말린 고추 사건의 조사결과는 제보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4개 업체가 민경련 소속 기관에게서 받은 원산지증명서를 제출하고 통일부로부터 북한물품 반입 승인을 얻은 뒤 중국에서 말린 고추를 수매, 탑차(깡통차)를 이용해 남포항으로 옮겨와 북한산으로 둔갑시킨 것.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산 농산물에는 200~60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북한산 농산물은 사실상 국가 내부 거래로 인정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중국산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직접 유통시키면 시세차익을 쏠쏠하게 거둘 수 있는 것.

말린 고추도 북한산 둔갑 막대한 시세차익

통일부 관계자가 제보한 대두 및 녹두 반입 사건의 얼개도 말린 고추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천세관은 2004년 9월8일 중국산 대두 1730t과 녹두 1300t(시가 60억원 상당)을 북한산으로 위장해 반입한 혐의로 C사 대표 이모(당시 31세) 씨를 검거한 뒤, 79억5000여 만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씨가 중국동포(조선족) 방모 씨와 공모해 중국산 콩을 구입, 북한 남포항으로 옮긴 뒤 허위 원산지증명서와 수출검사서를 이용해 ‘북한산 콩’으로 둔갑시켜 한국에 들여왔다는 것. 인천세관은 주 중국대사관을 통해 중국 단둥에서 북한 남포로 출항한 C사 관련 선박에 실린 콩의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해관총서의 답변을 증거로 제시했다.

“단둥해관에서 조사한 결과, 통관신고서에 제기된 화물은 모두 중국산이며 북한으로 수출한다고 통관 신고된 것이다.”(해관총서)

이 답변대로라면 C사가 반입한 대두와 녹두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중국에서 북한으로 수출됐다가 남포항에 잠시 머문 뒤 한국으로 들어온 셈이다.

당시 업계에선 ‘북한산 물품 반입 승인서=돈’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베이징과 단둥에 상주하는 수입업자 사이에선 민경련의 원산지증명서를 받아내기 위한 경쟁도 벌어졌다고 한다. 조선족 사업가들이 민경련과 무역상을 잇는 브로커 구실을 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산 당면·호두·녹두·참깨가루·북어채·상황, 러시아산 한약재·냉동명태 등 그동안 북한산으로 둔갑해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내린 농산물 명세를 보면 이들 물품의 반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교역이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러한 원산지 세탁은 북한 당국의 직접 개입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인천세관 조사팀의 판단이다. 민경련이 원산지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주면서 조직적으로 외화벌이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물론 북한 당국의 개입 없이, 민경련 소속의 무역회사 수준에서 가짜 원산지증명서가 발급됐을 수도 있다. 또 북측 무역회사 직원의 개인 비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국세심판원은 왜 관세청이 C사에 추징한 79억6000여 만원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렸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민경련이 국세심판원의 질의에 대해 “북한산이 맞다”고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콩을 반출한 주체인 민경련이 공식적으로 우리가 수출한 품목이 맞다고 밝혀왔는데, 어떻게 세금을 추징할 수 있느냐?”(국세심판원 관계자)

“해관총서에는 확인해봤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중국 측에는 따로 묻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검찰도 인천세관이 고발한 C사의 관세포탈 혐의에 대해 “중국 해관총서 회신서의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C사는 당시 해관총서의 확인을 뒤집는 또 다른 문건을 제시했다.

C사는 “C사가 용선한 선박에 화물을 선적한 사실이 없다”는 중국 대동항해관 명의의 확인서를 제출했는데, 이 문건은 “중국산 콩이 북한으로 수출됐다”는 해관총서의 확인을 뒤집는 것이었다.

관세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C사 측이 제출한 문서의 진실성이 오히려 의심된다”면서 “중국은 돈을 내고 공문서를 구입할 수도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단둥의 한 무역상도 전화통화에서 “허위로 중국의 공문서를 발급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통관된 콩 어디로 갔나

“사명감을 가지고 추적했는데 결과가 너무 허망하다. 북한산이라고 확인해준 북한의 민경련은 농산물 세탁의 공범일 개연성이 없지 않다. 국세심판원이 취소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중국 해관총서의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인천세관 관계자 A씨)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한국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평화정착 수단의 하나로 남북 경제교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곳곳에서 ‘심한 악취’가 발생했다.

농산물 세탁사건이 잇따라 적발된 뒤 정부는 위장 반입을 막기 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2004년 11월). 정부의 조처 이후 북한산 농산물 수입 과정은 과거보다 투명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세관 관계자들과 무역상들에 따르면 북한산 농산물과 관련한 ‘구린내’는 여전하다.

C사는 관세청의 조사를 받을 때부터 일관되게 “우리가 수입한 콩은 북한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관총서가 북한으로 수출됐다고 밝힌 대두와 녹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민경련의 원산지증명서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한국의 국가기관들은 아직도 중국과 북한의 ‘확인’을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국세심판원이 세금추징을 취소하라고 결정했음에도 대두와 녹두의 원산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향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원산지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한 이 사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주간동아’는 477호 커버스토리에서 “북한 민경련이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통일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민경련이 외화벌이를 위해 가짜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는 보도는 자칫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 교류하다 보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들이 ‘원산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판단을 할 만큼 그 실체적 진실이 불투명해서는 안 된다. 불투명한 경제교류는 남북관계 진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6.12.05 563호 (p54~5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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