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2006.12.05

미싱사 아줌마들 패션모델 됐네!

20~30년 경력으로 만든 옷 ‘희망 패션쇼’ … 브랜드 화 거쳐 해외시장 개척 남다른 포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11-30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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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싱사 아줌마들 패션모델 됐네!

    전순옥 대표, 곽미순 씨, 이정순 씨, 김한영 기술팀장(왼쪽부터)이 ‘수다공방’에서 만든 의상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아유, 살찐 아줌마들인데 맵시가 제대로 날 리 있나. 그래도 무척 기대가 돼. 실수해도 예쁘게 봐줘. 호호.”

    서울 동대문구 창신2동에 자리한 참여성노동복지센터 내 ‘수다공방’ 기술교육센터에서는 요즘 ‘드르륵드르륵’ 미싱 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진다. 옷 만들기에 여념 없는 이곳 아줌마들은 수다공방 교육생으로 경력 20~30년의 베테랑 미싱사들. 이들은 수다공방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만든 옷을 직접 입고 12월1일 열리는 패션쇼 무대에 설 예정이다. 패션쇼의 이름은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씨가 설립한 수다공방은 지난 6월부터 창신동 여성 미싱사들을 상대로 봉제기술 재교육을 실시 중이다. 지금까지 모두 40여 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바로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번 패션쇼에서 그동안의 성과를 자랑하는 것. 이상수 노동부 장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등 사회 각계 인사 20여 명도 아줌마들과 함께 모델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사장님한테 혼나면서도 악착같이 수다공방 교육을 받았어. 대신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고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그랬지. 근데 그렇게 고생하길 참말 잘한 것 같아.”

    이정순(51) 씨는 생명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큰아들도 패션쇼를 구경하러 온다고 약속했다며 많이 들떠 있다. 전교회장을 맡고 있는 중학생 막내아들도 엄마의 ‘화려한 변신’에 크게 고무된 상태라고.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곽미순(46) 씨는 “수다공방에서 더 많은 기술을 배워 나중에양장점을 차리고 싶다”며 수줍게 희망사항을 밝혔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마친 큰딸은 자랑스런 엄마를 위해 행사 당일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단다.



    봉제기술 재교육 40여 명 수료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동안 창신동 미싱사로 살아온 이들은 한국 섬유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다. 그러나 이들은 늘 소외됐고 성장의 열매 또한 나눠 갖지 못했다. 섬유산업이 한창 성장하던 70년대에는 해 뜰 무렵까지 밤새워 일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미싱 앞에 앉는 날이 숱하게 많았다.

    미싱사 아줌마들 패션모델 됐네!

    패션쇼에 직접 입고 나갈 옷을 만드느라 한창 바쁜 ‘수다공방’ 교육생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다’로 취직한 이정순 씨는 스무 살 무렵 눈이 돌아가는 병을 앓았다. “밤샘하고 공장에서 나오면 세상이 온통 노란 거야. 버스도 간판도 모두 다 말야.” 우귀자(52) 씨는 “그때는 공장의 좁은 다락에서 잠을 자다가 불이 나서 죽는 여자아이들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정순 씨는 전태일 열사에 대한 기억이 있다.

    “점심을 먹고 미싱기술을 연습하고 있는데 밖이 너무 소란스러운 거야. 달려나가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더라고. 그때는 너무 어려서 노동운동이 뭔지 몰랐어. 근데 전태일 열사 일이 있고 난 이후 사장이 집에 좀 일찍 보내주더라고. 그건 좋았지.”

    평생 취미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이 미싱 돌리고 살림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았으면서도 번듯한 아파트 한 채 마련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정순 씨는 “그냥 먹고살고 애들 학교 보내는 정도에 만족하며 살았다”고 했다. 우귀자 씨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남편의 병원비를 대느라 돈을 못 모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자정 넘어도 미싱 돌아가는 소리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중년 여성이 됐지만 창신동의 형편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중국, 베트남과의 경쟁 때문에 일거리가 자꾸 줄고 공임은 더욱 낮아지고 있기 때문. 우귀자 씨는 쌓아놓은 여성용 카디건 옷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당 3500원 받던 공임이 요즘 들어 2300원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곽미순 씨는 “공임이 싸지니까 일을 더 해야 수입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창신동은 자정이 넘어도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전했다.

    수다공방의 김한영 기술팀장은 “이러한 어려운 현실 때문에라도 여성 봉제사들에게 고급기술을 습득시켜 새로운 활로를 찾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 미싱을 돌렸지만 바느질이나 단추 꿰매기, 지퍼 달기 등 한 가지 공정만 집중적으로 반복해왔기 때문에 미싱사들의 기술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래서 수다공방은 좀더 고급기술을 이들에게 전수하려고 한다. 이들은 하루에 겨울점퍼 20장을 뚝딱 박아내는 베테랑이지만, 수다공방에서는 하루 종일 미싱에 매달려 있어도 바지 한 번 정도만 만들 만큼 정성을 다 기울인다.

    패션쇼를 마치고 나면 수다공방은 본격적인 ‘브랜드화’ 작업에 돌입한다. 천연원단과 천연염료만을 사용한 고급제품으로 해외시장까지 개척한다는 포부다. 청계천에 매장을 열어 옷도 입어보고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사랑방’처럼 꾸밀 예정이다. 전순옥 대표는 “한복의 선을 많이 살린 심플하면서도 스마트한 디자인으로 30대 중반부터 50대까지의 여성이 오래 즐겨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창신동 아줌마들이 수다공방을 통해 키우는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품을 만들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수다공방은 창신동에 창이 널찍한 2층 공장을 마련 중이다. 1층에는 공부방을 두어 ‘주부’ 미싱사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근무시간도 하루 8시간, 주5일제를 지키려고 한다. 전순옥 대표는 “창신동 이외의 지역에도 많은 미싱사들이 살고 있다”며 “수다공방의 성공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까지 전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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