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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맛과 음식 사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5인의 요리사 & 미식가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 세상에는 요리 때문에 인생을 바꾼 이도 많고, 요리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도 있다. 여기 대한민국에서 음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5인의 요리사 & 미식가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이들이 각각의 레시피로 완성한 음식은? 바로 ‘인생’이다.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효재처럼-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저자인간 세상의 일은 ‘한 상 잘 차리면 끝난다’는 게 경험에서 얻은 확신이다. 세계 평화도 사람들을 잘 먹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촌장 말처럼.

나는 먹는 일로 유난을 떠는 집에서 자랐다. 우리 집 돼지 한 마리 잡고, 만두소를 한 가마씩 만들어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는 일이 흔했다. 우리 사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렇게 먹어대더니…”라고 말한 외척도 있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먹는 일에 대한 내 인생관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싼 재료를 써가며 음식을 많이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식재료를 아끼고 아껴 남은 것들로 여러 사람이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나만의 레시피들이 만들어졌다. 연잎 한 장, 달걀 한 개, 도토리묵 한 조각,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들을 산삼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자투리’ 재료에 정성을 쏟으면 조각천으로 만든 이불처럼 멋진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옷을 만들 때도 색이 뜨겁다, 비릿하다는 말을 쓰게 되나보다.

식재료를 골라내고, 말리고, 우리고, 조리는 동안은 내가 세상을 생각하고, 또 세상을 잊는 시간이다. 나는 음식을 천천히 만든다. 요리는 내게 명상이며 수행이다.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이 그러하듯, 음식은 컴맹인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끈 혹은 중재자다.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고형욱 음식평론가

와인칼럼니스트, ‘올댓와인’ 저자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매력적이었다. 하늘 아래 펼쳐진 땅들을 누비며 산해진미를 맛보았다. 몇 년 전 칠레에 가서 마셨던 달콤한 와인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이 됐고, 파리 시내 최고급 레스토랑은 여전히 미슐랭 별 3개를 달고 있다. 당시엔 입으로 맛을 보았다. 그런데 과연 먹는다는 행위, 맛을 본다는 행동은 입으로만 혀로만 하는 것일까?

최고 요리사들이 만들어준 음식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초창기 서울 신사동 라미띠에(L’Amitie)의 요리들, 파리 뤼카 카르통(Lucas Carton·미슐랭 별 3개에 빛나는 레스토랑)의 양고기 스테이크, 샤토 무통 로칠드(보르도 특급와인 생산지)에서 포도나무 가지로 구운 쇠고기 샌드위치, 타이베이 아교반점(阿橋飯店)에서 먹었던 대만 토속음식들, 최근 청담동 에오(Eo)에서 먹은 이탈리아식 해물요리들…. 이 기억들을 한곳에 응축시킨다면 1962년산 ‘라 타슈(La Tache)’ 한 병에 담길 법도 하다. 와인 한 모금을 마신 순간 그간 먹어왔던, 마셔왔던 기억들이 모두 생생히 떠올랐다. 그 후 미식과 탐식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대신 나와 음식의 관계를 객관화해보게 됐다.

음식은 맛이 아니라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상호소통이며 재료와 사람, 역사와 문화를 이어주는 하나의 우주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목적을 잃은 대신 음식은 더 중요한 이유로 다가왔다.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사는 일이다. 지금은 살기 위해 먹는다.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이승철 가수

‘이승철의 쿠킹콘서트’ 저자요리에 대한 나의 지론은 돈 내고 사 먹든, 직접 만들어 먹든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어떤 쾌감보다 크다. 지인들은 내 입맛이 까다롭다고 한다. 이는 정통 궁중요리를 전수하신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이쑤시개로 밀가루 고추장 떡볶이를 먹을 때 나는 쇠고기와 표고버섯을 넣고 간장 양념을 한 궁중떡볶이를 먹었으니까. 그러나 미각도 연륜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 무시했던(?) 값싼 재료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음식을 맛보고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맛에 대한 애정은 내가 세상의 사소한 행복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정한진 요리사

- 맛칼럼니스트,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후 코르동 블루 졸업

요리란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이다. 지쳐 있을 때도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피로가 풀린다. 새로운 맛의 음식을 찾아냈을 때는 흥분되고 마음이 들뜬다.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시작하면 식재료에 말을 걸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어떤 짝을 고를까, 어떤 식으로 조리할까, 이런 양념이 어울리지 않을까 등 계속 말을 주고받으니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 음식을 만들 때는 재료의 특성과 최선의 조리법도 알아야 하지만, 때때로 상식적인 음식 궁합을 깨가면서 짝짓기를 하다 찰떡궁합을 찾아내는 재미란 만드는 즐거움 이상이다. 이것이 바로 창작의 즐거움이다.

오랫동안 책상물림으로 살아온 나에게 요리는 몸을 움직이고 오감을 자극하기에 더 매력적이다. 뚝딱뚝딱 재료를 다듬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색색의 때깔을 내면 나의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물론 직업적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반복작업이기 때문에 항상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불 앞에서 땀에 전 파김치가 될지라도 희열을 느끼는 것은, 그 순간 나의 육체와 감각이 펄펄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기: 지금 제 앞에는 14시간의 노동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요리사입니다.

지지고 볶는 재미 … “요리는 내 인생”
한승택 요리사

- 최연소-최다 요리대회 수상자,

‘2000원으로 사랑요리 만들기’ 등 저자나에게 요리는 삶 자체다. 어릴 때 오븐 판매원의 빵 굽는 시범이 너무 멋져 보여 요리를 시작했고, 곧 요리대회에 나가 상을 탔다. 계원예고 1학년 때 미술 대신 요리를 선택해 전학을 했다. 이에 실망한 어머니가 대학 등록금을 주시지 않아 중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었다.

18세에 전국요리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 수많은 요리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요리 천재’ ‘요리 신동’이란 별명을 얻었다. 레스토랑, 케이터링, 파티플래너, 프랜차이즈, 요리 강사, 요리책 저자 등 요리와 관련된 일은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친구들의 질시와 따돌림에 시달렸고, 요리로 번 돈 때문에 믿었던 사람들을 잃었다. 너무 괴로워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사장 도우미로 산 적도 있다. 최근엔 ‘요리 천재’가 연예인이 되려 한다며 누리꾼들이 험하게 공격해와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요리 때문에 평생 겪을 쓴맛, 단맛을 모두 본 것 같다.

오랜 길을 돌아와보니 요리사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 듯하다. 그것은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먹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기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요리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없다. 내 꿈은 음식공학자가 되어 ‘초코파이’처럼 세계인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발명’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이 아플 때 만나는 의사가 아니라,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에 만나는 요리사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주간동아 2006.12.05 563호 (p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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