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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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국어교사가 전담? 천만에!

논술 고정관념 뒤집기 ③

  •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입력2006-04-10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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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은 국어교사가 전담? 천만에!
    사교육의 중심지 서울 강남권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현상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논술학원이 많이 생겨나면서 학원마다 특색 있는 이름을 붙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와 연관 지어 이름을 지은 곳이 부쩍 많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인 ‘philos(사랑)’와 ‘sophia(지혜·앎)’를 응용한 이름도 많아졌다고 한다. 때로는 억지로 맞추다 보니 어감은 그럴듯하지만 의미가 이상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둘째는 학원가 논술교사 중 철학과 출신임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필자도 간접 경험한 바 있다. 초등학교 동창들 중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있는데, 특정 논술교사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필자의 후배가 맞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가끔 받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술은 인문·사회·자연과학 포괄 … 도덕·사회 교사도 참여해야

    이런 현상은 철학을 전공한 필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철학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아니다. 논술에 대해 절박한 심정으로 접근하는 수요자들이 이미 논술을 국어 영역에 한정지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논술 교육을 위해서는 이런 인식이 사교육보다 공교육에 좀더 확산돼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공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논술의 십자가를 국어교사에게만 지우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술은 국어교사가 혼자서 떠맡을 일이 결코 아니다. 국어교사에게 논술 교육의 책임을 떠맡기는 관행이 공교육 내 논술 교육을 부실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논술 교육을 국어교사에게만 책임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일인지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글쓰기에서 콘텐츠 측면(내용)과 프레젠테이션 측면(형식)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는 두 측면을 나누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콘텐츠 측면이 ‘무엇을 쓸 것인가’를 교육하는 것이라면, 프레젠테이션 측면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교육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재의 교사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된 국어교사가 혼자서 두 측면을 다 교육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하기에 벅찬 것이 아니라 콘텐츠와 프레젠테이션 두 측면에서 모두 논술을 혼자 지도하기에 벅차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용 면에 대해 살펴보자. 본질상 통합교과적일 수밖에 없는 논술 교육에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다양한 주제와 쟁점, 그리고 복합적인 문제들이 다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다양한 쟁점들을 개별 교과 입장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어학·문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국어교사가 혼자서 이를 담당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수능 언어의 비문학 읽기 영역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국어교사가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주어진 지문을 독해하고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논술 교육에서 콘텐츠 부분은 누가 도와줘야 하는가? 과학이나 외국어 교사도 참여할 수 있지만, 최소한 도덕 및 사회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논술 교육의 한 축으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국어교사와 십자가를 함께 나눠 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혹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원리적이고 포괄 적인 접근이 개별 교과의 입장에서 한계가 있다면, 철학교사들을 활용하여 논술 교육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여하튼 여러 교과의 교사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는 팀티칭(team-teaching)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교육 안에서 논술 교육이 영원히 구원받기 어렵다는 예언에 자꾸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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