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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가다②

잿빛 도시 ‘장안’ 이곳이 천 년 수도 맞아?

급격한 도시화로 사방이 빌딩숲 … 옥문관 인근엔 漢나라 장성의 흔적 남아

  •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잿빛 도시 ‘장안’ 이곳이 천 년 수도 맞아?

잿빛 도시 ‘장안’ 이곳이 천 년 수도 맞아?

장안성

여행의 출발점은 시안(西安)이었다. 실크로드의 상징적 도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크로드의 도시는 시안의 옛 이름 장안(長安)이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여 장안을 한나라 도읍으로 정한 뒤, 후한 때 뤄안(洛陽)으로 잠시 옮겼을 때를 제외하곤 천 년의 수도였다. 당나라 때 장안은 국제무역이 번성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고 서역풍이 유행했다. 그야말로 동양의 로마였다. 그래서 곳곳에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하룻밤 묵어가는 여행객의 눈에 비친 시안은 서울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도망치다시피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는데 서울의 빌딩숲은 ‘네가 어딜 가냐’는 듯 뒤따라와 낯설지 않은 잿빛 풍경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간판 글자들을 모두 중국어로 바꾸고 바탕만 빨갛게 칠한 것 같았다. 10여 년 전에 한 번 와보았던 시안은 우리가 거쳐온 지난날 서울을 닮아가고 있었다.

흙인형들의 정교함 부담스러울 정도 … 박물관 유물은 기대 못 미쳐

짬을 내어 병마용과 역사박물관을 들렀다. 일일이 만들고 날랐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구운 흙인형들의 정교함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일행이 열심히 의미를 캐는 유물들 사이로 고개를 밀어넣고 살폈다. 진지한 얼굴 표정과 달리 속으로는 어리둥절했다. 유리장 안에 갇힌 유물들이 말이나 글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는 그저 복도가 좀 길게 난 평범한 전시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현대의 대도시는 내 주의를 끄는 데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역사박물관에서 호텔로 가는 길. 잠시 장안성 앞에 내렸다. 차들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칠 듯이 달려들었다. 일행을 방패 삼아 뛰었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건널 엄두도 못 냈을 터였다. 실크로드는 원래 이렇게 터프한 것일까.



성의 한 모퉁이에서 서쪽을 바라다보았다. 장건이 떠나고 법현과 현장이 돌아왔던 곳이다. 미지의 정신과 가져보지 못한 재회에 대한 열정으로 목숨을 걸었던 여행자들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이었다. 그제야 시안은 내게 가슴을 열고 다가왔다.

둔황으로 가는 날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설다. 둔황으로 간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서역 여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시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경유지인 란저우 공항에 도착했다. 어느덧 시멘트 빌딩 대신 벌판의 백양나무들이 우리를 맞았다. 활주로를 하얗게 덮으며 눈발까지 날렸다. 눈송이만큼이나 마음도 가볍게 부풀었다. 그렇지만 굼뜬 비행기가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기상이변을 이유로 비행기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란저우의 가르침일지도 몰라. 어떤 일이든 시작 전에 너무 기대를 높여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둘러 가라는….’

잿빛 도시 ‘장안’ 이곳이 천 년 수도 맞아?
이런 억지 논리까지 만들어가며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기다림에 익숙해졌을 무렵 둔황행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은 온통 황토로 뒤덮였다. 고비사막은 화석이 된 공룡의 척추처럼 드문드문 산맥이 솟아 있었다. 란저우는 시안과 둔황을 이어주는 곳이다. 산맥 사이에 낀 그 유일한 통로는 주로 허시저우랑(河西柱廊)이라 불린다. 행여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이라고도 하는 그 길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여 비행기 창에 얼굴을 붙였지만 도무지 어디를 날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늘의 비단길은 그랬다.

서역에서 옥 들어오던 ‘옥문관’ …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란저우와 달리 둔황의 날씨는 쾌청했다. 비행기 문을 나서는데 서역의 강한 햇빛이 얼굴에 쏟아졌다. 실눈을 뜨며 찌푸려야 했지만 서역의 햇살은 시안에서까지만 해도 여전히 끌어안고 있었던 서울의 때를 한꺼번에 벗겨내는 듯했다.

눈 쌓인 먼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항의 둥근 지붕은 ‘둔황(敦煌)’이라는 간판을 도드라지게 내걸고 있었다. 그 금빛 글자에 반사된 햇빛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장관을 연출했다.

서둘러 간 곳은 옥문관이었다. 시안에서 외길인 실크로드는 둔황에 와서 서역북로와 서역남로로 갈린다. 한때 중국의 서쪽 변방(邊防) 구실을 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중앙의 세력이 닿지 않게 되자 황폐해져버렸다. 옥문관은 서역에서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황량한 벌판 위에 덩그렇게 서 있는 옥문관은 이름이 무색할 정도.

옥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한나라 장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옥문관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은 명대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 장성이야말로 옛것 그대로다. 흙으로 장성을 쌓을 때 층층이 넣은 건초 더미가 지층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손을 대어 비비니 2000년 전의 시간이 손에 잡히는 듯 아련함이 밀려들었다. 흙이 녹아내린 장성의 모습에서 지나버린 세월이 겹쳐지기도 했다.

옥문관 역사적 의미보다 주변 풍경이 더 인상적

옥문관과 한대의 장성은 헝가리 태생의 영국인 오렐 스타인이 발굴했다. 1907년 둔황에 도착한 스타인은 둔황 석굴의 보물에 접근하기 위해 전초 작업을 벌여놓고 기다리던 막간을 이용해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미국의 고고학자 랭던 워너는 스타인의 만리장성 확인을 우리 시대 가장 극적인 발견의 하나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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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의 장성.

옥문관은 둔황 시내에서 80km, 관광객을 위한 매표소에서만도 50km나 떨어져 있었다. 옛사람들의 속도로는 둔황에서 이틀 정도 가야 하는 거리다. 옥문관 주위가 지금은 황량하지만 한대에는 크게 번창했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다. 그러니 둔황에서 옥문관까지의 길 위로는 불안감을 누르며 사막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무사를 기원하며 배웅하는 사람들, 사지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필자의 감성은 그들의 각오나 슬픔을 함께 느껴주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옥문관을 오가면서 그저 주변 풍경에 온 정신을 팔았다. 둔황 시내를 벗어나 왼편으로 보이는 몇몇 산들을 지나치자 어느 순간 땅 위의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고비사막의 위용이었다. 하늘과 대지가 맞닿고 선(線)은 우리를 에워쌌다. 버스는 그 땅 위를 곧게 달렸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오직 나지막한 낙타풀들만 듬성듬성 하얗게 마른 모습으로 이방객을 맞는다. 낙타는 가시 돋친 그 풀을 피를 흘리며 씹었을 터.

멀리 신기루가 곧 닿을 수 있을 듯한 호수를 만들어냈다. 이따금 호수는 파도치는 바다로 변신해서 신비감을 더했다. 포장도로인데도 버스는 자갈길을 달리듯 들썩거렸다. 둔황 시내로 돌아오는 길, 지는 해는 주변에 다른 풍경을 토해놓았다. 낙타풀들이 제각기 하나씩 그림자를 드리우나 싶더니 노을이 붉게 졌다. 그 순간 예전 다른 여행에서 본 비슷한 광경이 새삼 마음속에 되살아나면서 추억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까지의 여행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남미의 사막들을 꼽는다. 탁 트인 공간 위를 달리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남미의 사막이다.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에는 내 키만한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사막을 지프로 달리면 가끔 노랗고 빨간 색색의 호수들이 나타났다.

그 사막의 호수들은 분홍빛 플라밍고 떼를 품고 있었다. 해발 3600m의 소금사막은 30분 이상을 달려도 흰색만 보여주었다. 자갈이 쌓인 황무지 위를 밤새도록 달린 뒤에는 젖힌 의자에 가만히 기대어 있기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밤하늘에 가득했던 별빛과 동이 틀 무렵 오묘한 색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며 아침 햇빛에 빛나던 돌산의 모습은 아직 눈에 선하다.

돌이켜보니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사랑한 것은 그 풍경들이었을까, 아니면 티티카카 호수에서 만나 동행한 이역의 친구들이었을까. 나는 옥문관에서 돌아오는 그 길을 정말 즐긴 것일까, 지난날의 추억을 즐긴 것일까.

돌아오는 길, 일행은 제각기 노을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떠느라 분주했다. 아직은 서먹하지만 점점 우리 일행과도 친밀하게 교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실크로드는 새로운 곳을 향한 꿈을 현실로 이어준 곳이다. 낯선 사람이나 이질의 풍물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지 않았던가. 비로소 실크로드의 초입에 다다랐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80~82)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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