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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음악 ‘말아톤’ 오유진과 어머니 유계희 씨

장애·편견 뛰어넘은 ‘母子 하모니’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장애·편견 뛰어넘은 ‘母子 하모니’

장애·편견 뛰어넘은 ‘母子 하모니’
모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일 것이다. 그렇게나 어머니는 강하고 또 강한 존재다. 그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라도 눈물겹다.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군의 어머니나 전신 화상을 입고도 꿋꿋이 일어나 보스턴대학으로 유학 간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양 어머니, 또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아이를 피아니스트로 키운 이희아 양 어머니 등등.

빠듯한 살림 속 자폐 쌍둥이 형제 대학 뒷바라지

그 뜨겁고 애절한 모성의 스토리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청주에 사는 오운진, 오유진(23) 쌍둥이 형제의 어머니 유계희(52) 씨 이야기다. 쌍둥이 중 형인 운진 군은 충청대 산업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청주 성신학교 차량보조원으로 일하고 있고, 동생 유진 군은 올해 배재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인 오군 형제는 세 돌이 채 못 되었을 때 둘 다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하나도 아닌 두 아들 모두 자폐아였다.

“두 돌이 넘도록 아이들 말문이 안 트여서 주위의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정신과에 데려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자폐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치료하면 낫는 병인 줄만 알았지요.”

선천적인 뇌기능 장애로 인한 발달장애? 유 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갈릴리집, 청주 성신학교 등 특수학교를 다니며 아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택시운전을 하는 아이 아빠와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살던 시절이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자폐 성향은 뚜렷해졌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말조차 하지 못했고, 사회성도 전혀 없어 세상과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구원은 뜻밖의 방향에서 찾아왔다. 둘 중 자폐증세가 좀더 심한 동생 유진이가 네 살 때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를 한 번 듣고 반주까지 정확하게 쳐냈다. 마침 단칸방에는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들여놓은 중고 피아노가 있었다. 유진이는 자폐장애아들 중에서 특정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Servant)’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유 씨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화성학, 작곡 공부도 하고 트럼본, 트럼펫 같은 관악기까지 가르쳤다. 각종 장애인 음악경연대회에도 열심히 참가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유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번듯하게 잘 키우기보다는, 세상에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기만 열심히 기도하면서.

청주에 있는 유진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유진이는 마침 집에 있었다. 말은 약간 어눌했지만 유진이는 “지금 뭐 하고 있어요?” 같은 기자의 질문에 “동영상 만들어” 하고 대답할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예쁜 여자 친구들이 많고 ‘알바’로 돈을 벌 수도 있는(유진이는 지금 대학의 남자기숙사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한다) 학교 가는 게 너무 좋단다. 피아노를 쳐달라고 부탁하자 입이 삐죽 나오면서도 피아노 앞으로 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쳐 보인다. 곳곳에 미스 터치는 있었지만 기존의 연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편안한 연주였다. 이어 자신이 작곡한 곡도 능숙하게 연주해 들려주었다. 졸업연주회 때 직접 연주한 ‘즐거운 졸업’이라는 곡이란다.

장애·편견 뛰어넘은 ‘母子 하모니’

대학 졸업연주회에서 자작곡을 연주하고 있는 오유진(위). 할머니와 함께한 고교 졸업식 사진 속의 유진이와 운진(왼쪽).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었지요. 그런데 저희를 계속 도와주신 안예도 신부님과 이프란치스코 수녀님께서 ‘집을 팔아서라도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으시기에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고 아이들을 관악부가 있는 청주농고에 넣었어요. 처음으로 일반 학교에 진학한 거지요.”

말이 쉽지 발달장애 3급인 쌍둥이 형제에게 일반 학교는 참으로 모진 시련이었다. 급우들의 놀림과 폭행은 기본이었고, 교사들의 시선마저 싸늘했다. “아이들 아빠가 매일같이 학교에 찾아가 때리는 아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맛있는 걸 사 먹이기도 하고, 대신 때려주기까지 했지만 다 소용없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유 씨가 덜컥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3개월밖에 못 살 거라고 했지만,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죽으면 아이들 아빠한테 이 무거운 짐을 지우고 가는 거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유 씨는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 각종 항암 치료를 견뎌냈고 9년이 된 올해,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온갖 시련을 딛고 쌍둥이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능을 쳤다. 운진이는 2년제 대학에, 유진이는 트럼펫으로 연주 실기시험까지 치르고 배재대 작곡과에 합격했다.

발달장애아 중 4년제 대학 졸업한 최초 사례

대학은 악몽 같았던 고교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유진이의 지도교수인 채경화 교수는 “유진이 머리에는 많은 음악이 들어 있다”며 한 사람의 작곡가로 인정해주었고 친구들 역시 유진이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MT와 봉사활동까지 빠지지 않으며 즐겁게 대학을 다닌 유진이는 2월16일 열린 졸업식 무대에 올라 자작곡 ‘밀레니엄 소나타’를 연주했다. 유진이는 발달장애아 중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케이스다.

또 유진이는 4월12일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기념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이병우, 김정원 등 일류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주변의 도움이 너무도 컸어요. 사실 저희는 워낙 빠듯한 살림이라 아이들 학비 대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 학교에서 유진이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셔서 대학원까지 가게 됐어요. 앞으로 유진이가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 등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기사로 이야기하기는 차라리 쉬울지도 모른다. 쌍둥이가 동시에 장애아라는 현실. 두 아이 엄마인 기자는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다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다 같이 죽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유 씨는 환하게 웃으며 “너무도 행복하다. 다만 아이들이 사회에서 작게나마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운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취직할 데가 정말 없었어요. 결국 자기가 다닌 학교에 취직을 할 수밖에 없었죠. 국가가 장애를 가진 성인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장애아들을 돕는 프로그램은 많아도 그 장애아가 커서 성인이 된 뒤의 재활 프로그램은 없거든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집을 나서는 기자 일행을 유 씨 모자가 배웅했다. “유진이, 앞으로 좋은 곡 많이 쓰고, 엄마한테도 효도 많이 해.” 듣는 유진이 표정이 뚱하다. 유진이에게는 좀 어려운 말이었나 보다. “유진아, 앞으로 엄마 하루에 세 번씩 꼭꼭 안아드리기.”

그 말에 유진이가 천진하게 웃으며 엄마를 꼭 안았다. “아이고, 우리 예쁜 아들.” 엄마도 활짝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58~59)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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