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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일파만파 ‘김재록 게이트’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 트면 “형님, 동생”

김재록 씨와 만난 사람들 ‘능력 있는 기획통’으로 인정 … DJ 선거캠프 거치며 경제관료와 인맥 쌓아 활동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parker49@donga.com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 트면 “형님, 동생”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 트면 “형님, 동생”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회장이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혐의로 3월24일 구속 수감되기 전 대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가 1998년 펴낸 ‘정부개혁실-경영진단 담당기관과 대상기관’이란 자료에 낯선 회계법인 한 곳이 눈에 띈다. 99년 안진회계법인에 흡수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세동회계법인이 바로 그곳.

51개 정부부처를 개혁하기 위해 실시한 경영진단 프로젝트에 세동회계법인은 정부의 주요 부처를 배당받았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기획예산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예산청,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 재정·금융 분야를 관장하는 9개 기관이 세동회계법인의 실사 대상이었다.

세동회계법인은 당시 업계 순위를 다투는 대형 법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98년 금융감독 당국은 부실회계 처리를 이유로 세동의 회계사들을 무더기로 제재 조치했다. 이런 이유로 업계는 세동이 정부의 주요 부처를 진단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시 정부 부처의 경영진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컨설팅 업체는 모두 19곳. 기획예산위원회가 이들 업체를 선정하고 51개 부처를 할당했다. 이를 총지휘한 사람은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이었고, 세동회계법인의 경영전략연구소장은 김재록 씨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을까.

재정·금융 관장 9개 기관 세동법인 실사 대상



이한동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 씨는 1997년 이 의원의 소개로 김대중(DJ)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김대중 후보는 김 씨를 면접한 뒤 “똑똑하다”며 특보(특별보좌관)로 채용했다. 선거캠프에선 수십 명의 조직원에게 특보 명함을 내줬고, 김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박지원 총재특보에 의해 특보직을 박탈당했다. “김 씨가 특보 명함을 들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얘기가 박 특보의 귀에 들어갔고, 박 특보는 이를 확인한 뒤 그를 선거캠프에서 내보냈다. 따라서 그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97년 대선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 씨는 DJ 정부의 인수위 시절까지 특보 명함을 들고 다녔다. 그 시절 김 씨는 과거 여행사를 운영하다 만난 세동회계법인 대표와 친해져 세동회계법인의 경영전략연구소장으로 영입됐다. DJ 정권 인수위 시절, 김 씨는 세동회계법인의 연구소장 명함을 들고 진념 당시 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진 회장을 만나기 위해 김 씨는 97년 잠시 기아자동차 경제연구소에 있던 인연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김 씨는 진 회장을 권노갑 전 의원에게 소개했다. 대선캠프 시절 몇 차례 안면이 있던 권 전 의원은 김 씨의 인사를 받고 진 회장을 만났다. 이렇게 서로 악수하고 헤어진 뒤 진 회장은 98년 3월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정계 한 인사는 “권 의원과 악수 한 번 했다고 진 회장이 기획예산위원장으로 발탁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진 회장 쪽에선 정권 실세로 알려진 권 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한 김 씨를 기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 트면 “형님, 동생”
한번 만나면 그 뒤로 “형님, 동생” 하며 친근감을 나타내는 김 씨는 진념 씨와의 인연을 내세워 세동회계법인을 정부 경영진단 컨설팅 기관으로 선정되도록 지원했다. 업계에선 진 씨가 도와줬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이와 관련 진 씨는 최근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며 김 씨 연루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세동회계법인은 경제 부처들의 실사를 맡았고, 정부 발주 프로젝트를 대거 수주해 경쟁업체의 질시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김 씨는 당시 정권의 경제 관료와 인연을 맺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재벌그룹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은행 등 금융가가 초유의 구조조정을 겪던 혼란한 시절, 김 씨는 DJ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을 튼 이후 김 씨는 그들을 ‘형님’으로 모셨고, 그 ‘형님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아 인맥을 확장했다. 인맥이란 것이 초기에 만들기가 어렵지 세포분열을 하기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방식으로 고위 관료들의 인맥을 구축한 김 씨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다. 세동회계법인에 있을 때는 한일, 고합, 아남 등 거대 워크아웃기업을 손님으로 끌어들였고, 아더앤더슨 한국지사에서 일할 때는 예금보험공사 부실채권 처리,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등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

로비스트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일체 숨기면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밑바닥까지 샅샅이 조사한다. 김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정·관계에 한동안 외대 영어과 출신이라거나, 미국 스탠퍼드대학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라는 말을 흘리고 다닌 것은 자신의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금융계 소식에 밝은 K 씨는 1999년 김 씨가 A회계법인 대표를 만난 얘기를 들려주었다. 김 씨가 임원 자리를 요구하자 그 대표는 김 씨에게 이력을 물었다. 김 씨는 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 MBA 과정을 이수했다고 밝혔고, A회계법인 대표는 그 뒤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 여부를 검증한 끝에 거짓임을 알아냈다. 그를 다시 만나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졌으나 김 씨는 “당시엔 그냥 청강생 자격으로 들어가서 공부해도 됐다”고 둘러댔다. 결국 김 씨는 A회계법인의 임원 자리를 얻지 못했다.

아더앤더슨 부회장 시절 정부 관련 프로젝트 독식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아더앤더슨 한국지사를 찾아간다. 아더앤더슨은 그가 정부 실세와 친분이 있다는 점을 감안,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이 회사는 은행 부실 해외채권 관리, 경남기업 매각 주간사, 현대석유화학 처리 실사, 하이닉스 부채 실사 등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2001년 아더앤더슨과 결별할 때까지 그는 정부 관련 프로젝트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김 씨의 이력을 돋보이게 했던 아더앤더슨과 갑작스럽게 결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컨설팅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 씨가 로비 자금을 현금으로 지원해달라고 수차 요청했으나, 아더앤더슨이 거부해 결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현금 지원을 요청했던 것일까.

아더앤더슨과 헤어진 뒤 김 씨는 2001년 인베스투스글로벌이란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만 바꿨을 뿐 그의 영향력은 그대로여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확보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가 구속되고 베일에 가려졌던 그의 이력이 드러나자 김 씨의 회사가 어떻게 정부 관련 입찰을 대거 수주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이 부분에선 크게 두 가지 분석이 있다. 우선 관료의 자녀를 회사에 입사시키면서 이를 미끼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 김진표 재경부 차관, 강봉균 KDI 원장, 정건용 산은 총재 등의 아들과 딸이 아더앤더슨에서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들은 모두 “자녀들이 정식으로 입사했고, 자녀들이나 김 씨가 로비를 부탁한 적은 없다”며 유착 의혹을 부인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안면 트면 “형님, 동생”

2006년 1월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인 ‘우리프라이빗에퀴티(PE)’ 출범식 때 테이프를 자르고 있는 주요 참석자. 문정식 워싱턴글로벌펀드(WGF) 회장, 이인영 우리PE 대표, 오호수 인베스투스글로벌 당시 고문,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당시 회장, 김종욱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왼쪽부터).

다음으로 김 씨의 성장에 도움을 준 인물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지목된다. 혹자는 이헌재 사단에 김 씨가 있다고 하고, 혹자는 김재록 사단에 이헌재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경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이 전 부총리와 김 씨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막역하게 지낸 사이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와 관련 홍콩에서 활동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헌재 전 부총리와 각별한 친분관계 유지

“1999년쯤 일이다. 김 씨가 홍콩에 와서 펀드매니저들을 불러놓고 술을 한 잔 샀다. 그는 꽤 거물처럼 보였고 톱 탤런트를 데려와 술시중도 들게 했다. 그는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했고, 즉석에서 이헌재 금감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헌재 형님’ 하며 막역한 사이처럼 통화했다. 통화를 끝낸 뒤 김 씨는 우리에게 한국에 오면 이 위원장과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우리는 한국에 갔고, 약속대로 이 위원장 부부를 조찬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03년 말, 경제부총리로 이헌재 씨가 거론될 때 청와대 일각에선 김 씨와의 친분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김 씨는 “그럼 내가 한국을 떠나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이 씨가 경제부총리가 되자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부동산 문제로 이 전 부총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도 그는 대언론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를 목격한 한 재계 인사는 당시 재경부 참모들이 김 씨와 긴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이 전 부총리는 왜 김 씨와 가깝게 지냈을까. 이 전 부총리를 아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그가 상당히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이 없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그의 눈에 들면 둘도 없는 친구처럼 대한다. 금융가의 한 소식통은 “이 전 부총리가 김 씨와 친분을 유지한 데에는 김 씨의 탁월한 능력이 뒷받침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가. 김 씨는 검찰에 체포됐을 때 “나를 로비스트로 취급하지 말라”며 나흘 동안 단식을 감행했다. 자신은 단순 로비스트가 아니라 기획 능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컨설턴트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실제 김 씨를 만난 사람 중 일부는 그를 사기꾼으로 평가하기보다 능력 있는 기획통으로 인정했다. 대우그룹 고위 임원을 지낸 B 씨는 “김 씨에게 일을 맡겼는데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 놀랐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2000년 김 씨가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차 발전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해 정 회장이 ‘아주 똑똑하다’며 칭찬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김 씨를 조사하고 있는 검찰도 이례적으로 “김 씨의 금융지식이 해박해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김 씨에 대한 시선이 따가운 이유는 그가 금융계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데 있다. DJ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제 관료 출신 인사는 “DJ 정권 때부터 김재록은 최규선에 이어 대형사고를 칠 인물로 지목됐다”며 “은행장 인선에 관여하고, 금융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검찰의 칼날은 김 씨를 넘어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헌재 전 부총리, 그리고 다수의 재경부 출신 인사와 금융계 인사를 향하고 있다. 검찰이 현대자동차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데 이어 외국계 금융회사인 론스타마저 압수 수색한 것은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김 씨와 재경부 고위 관료의 연루설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정가 소식에 밝은 한 교수는“김 씨를 통해 모피아(재경부 관료) 출신 인사를 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18~20)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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