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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일파만파 ‘김재록 게이트’

경영권 승계 과속하더니…

정의선 기아차 사장 여론 개의치 않고 초고속 승진 … 글로비스 통해 자금 마련 지분 매입 꾀한 듯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경영권 승계 과속하더니…

올해 초 오스트레일리아 출장에서 돌아온 정의선 사장은 아버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의기양양하게 결과보고를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본사 사옥으로 사용할 건물을 물색해놓고 왔습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는 손색없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정몽구 회장은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아들이 집무실을 나가자 즉시 기아차 고위 임원을 불러들였다. 정 회장은 아들이 못 미더운 듯 이 임원에게 “오스트레일리아 현지로 가서 정의선 사장의 보고를 확인해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출장을 다녀온 이 임원은 정 회장에게 “오스트레일리아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보고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얘기가 현대·기아차그룹 내에 퍼진 이후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 한쪽에서는 “기아차 임원이 정몽구 회장의 ‘뜻’을 미리 헤아려 보고를 올렸다”고 해석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정의선 사장의 급속한 그룹 장악에 위협을 느낀 나이 든 임원들의 우려를 반영해 일부러 ‘정의선 깎아내리기’를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의선 사장에 대한 기존 경영진의 보이지 않는 견제 심리가 발동된 것”이라는 얘기다.

아버지의 그늘 …아직 자기 색깔 드러내진 못해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은 1999년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입사한 이후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2003년 기아자동차 사장, 2005년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려왔다. 아무리 오너 경영 체제라고는 하지만 충분한 능력 검증 기간을 거치지 않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 수장에 앉았다는 뒷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의 초고속 승진은 3세 승계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그룹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현대·기아차그룹만한 재벌 그룹에서 3세 경영인이 대표이사 사장까지 올라간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론에 크게 개의치 않는 현대 특유의 뚝심으로 인사를 밀어붙인 결과다. ‘지분상으로는’ 이미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도 직급으로는 정 사장보다 한참 아래다.

그러나 정 사장은 아직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정 사장으로서는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기아차 사장을 맡은 만큼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내 시장에서의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비전 마련인데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기아차는 지난해 레저용 차량(RV) 부문 내수 점유율 1위에 등극하고, 중형차 내수 시장에서 2위 자리를 탈환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또 최근에는 디젤승용차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업이익이 2003년 8124억원에서 2004년 5131억원, 2005년 740억원으로 떨어지는 등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추세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내부적으로는 기아차의 이런 현실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정 사장 입장에선 그룹 전체를 지배할 만한 지분 확보가 더 시급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현재 현대·기아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지분을 갖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정 사장은 현재 기아차 지분 2%만 보유하고 있다. 정 사장이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매집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영권 승계 과속하더니…
이와 관련 주목되는 회사가 바로 이번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글로비스다. 이 회사는 명목상으로는 현대·기아차그룹의 물류비 부담을 덜고 선진 물류시스템을 이용해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설립된 그룹의 물류전담 업체. 그러나 그룹 안팎에서는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이 실질적인 설립 목적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매출은 출범 첫해 1984억원에서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다(1조5408억원). 순익도 첫해 65억원에서 지난해 8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처음 30억원을 투자한 정 사장은 이미 지분 매각과 배당금 등을 통해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거두었다. 또 지난해 말 기업 공개를 실시, 3월29일 현재 정 사장의 글로비스 주식 평가액은 4543억원에 달한다.

“오너 회장 아들 지위 이용 사업 기회 가로채” 비판

시장에서는 정 사장이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기아차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정의선 사장이 얻은 이익은 ‘회사 기회의 편취’에 의한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정 사장이 오너 회장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회사의 유망한 사업 기회를 가로챘다는 것이다.

정 회장 부자가 대주주인 건설회사 ㈜엠코나 광고회사 ㈜이노션 역시 글로비스와 같은 방식으로 정 회장 부자에게 막대한 자본이득을 올려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2년 출범한 엠코는 계열사 건설 물량을 독점해 작년 매출액 7983억원의 중견 건설업체로 성장했다. 검찰은 이 회사가 현재 짓고 있는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사옥 옆 연구개발센터 증축 공사 인·허가 과정의 로비 의혹을 캐고 있다. 이노션 역시 한 해 2000억원에 이르는 계열사 광고를 독점, 광고업계 2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로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일단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칼끝이 정몽구 회장 부자를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도 “글로비스 비자금 조성과 관련, 고용 사장이 구속됐는데 오너 경영인이 몰랐다고 하면 ‘국민 정서’가 납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언젠가는 결국 정 사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을 텐데 너무 서두르다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14~15)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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