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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일파만파 ‘김재록 게이트’

내부 제보… 은밀 내사… 007식 전격작전

검찰 김재록 씨 수사하면서 혐의점 확보 … 연구개발센터 인허가 건교부·서울시도 수사 대상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내부 제보… 은밀 내사… 007식 전격작전

내부 제보… 은밀 내사… 007식 전격작전
올 2월 검찰 인사에서 대구지검으로 발령받은 여환섭 검사는 웬일인지 소속 지검으로 출근하지 않고 대검으로 ‘계속’ 출근했다. 여 검사는 2005년 8월부터 수원지검에서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수사반(공자금반)에 파견 나와 예금보험공사에서 고발한 공적자금 비리 관련 사건을 담당해왔다. 그는 대검에 남은 이후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는 “여 검사가 뭔가 큰 건을 하나 파헤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궁금증은 3월 말에야 풀렸다. 3월24일 ‘금융계 마당발’로 통하던 기업투자자문회사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대표 김재록 씨를 구속한 데 이어 3월26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여 검사의 ‘역할’이 알려졌기 때문. 여 검사는 공자금반에서 일하면서 김 씨의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은밀히 내사한 끝에 김 씨를 구속할 수 있었다.

올 1월 김 씨 소환 후 풀어줄 때부터 수사 낌새

검찰은 김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 현대차그룹의 비자금이 김 씨에게 흘러간 사실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 주변에서는 “2000년 이후 기업과 금융권 구조조정 작업이 거의 끝나면서 일감이 줄어들자 김 씨의 인베스투스글로벌은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 방식에 대한 컨설팅을 해준 대가로 현대차 비자금을 ‘과외로’ 덥석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는 현대차그룹 내부 관계자의 결정적인 제보로 활기를 띠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원효로 글로비스 본사 압수수색 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비자금 금고의 위치 등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검찰 수사관들은 또 현대차그룹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는 청소부를 뒤따라 들어가 회장 부속실까지 진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자체적으로 내부 제보자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월31일 현재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상태. 현대차그룹 주변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최근 들어 임원 인사를 지나치게 자주 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밀려난 고위 임원이 앙심을 품고 검찰에 제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동안 검찰이 해온 설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국가청렴위원회에서 국회의원 K 씨 등과 관련한 사건 수사 과정에 김재록 씨의 비리 혐의를 찾았고,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 현대차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포착했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김 씨에 대한 ‘표적 수사’ 의혹 제기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드디어 칼을 빼든 것은 김 씨를 체포한 3월22일. 김 씨의 구속영장에는 김 씨의 대출 알선에 관한 혐의만 기재하고, 현대차그룹 관련 부분은 넣지 않았다. 당초 정·관계 고위 인사에 대한 김 씨의 로비 부분에 수사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검찰은 현대차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김 씨의 로비 부분과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에 대한 낌새는 대검이 올 1월 김 씨를 소환조사했다가 돌려보낼 때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건설 인·허가와 관련한 내사를 고강도로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특수통 검사는 “대검이 처음 김 씨를 풀어준 것은 그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의미였다”면서 “그동안 김 씨뿐 아니라 현대차를 압박할 수 있는 내사를 통해 상당한 혐의점을 잡고 검찰이 다시 칼을 빼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검찰은 김 씨의 로비 의혹과 관련, 현대차그룹이 서울 양재동 본사 옆에 짓고 있는 연구개발센터 신축 과정의 인허가 과정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수사 대상일 수 있음을 강력 시사한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연구개발센터 인허가와 관련해 검찰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린 상태”라는 얘기가 파다한 상태. 정치권에서는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서울시장을 겨냥한 수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재계 큰 파문 … 정치 공방 격화 가능성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설은 또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재록 씨와 가까웠던 민주당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 ‘청와대의 양극화 해소 정책을 무시하고 하청업체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인하한 데 대한 괘씸죄 차원의 현대차 손보기’ ‘황우석 수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검찰의 역공’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런 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것이지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검찰 관계자들은 “검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대검이 현대차 압수수색에 이어 3월30일 탈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미국계 펀드 론스타코리아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대형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한 것은 최근 이완된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충격 요법’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검찰 수사가 정·재계에 큰 파문을 던질 것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이번 수사 주임검사인 최재경 대검 중수1과장은 특수수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엘리트 검사여서 ‘한번 걸리면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

속수무책(?) 현대차 김재기 법무팀

특수부 내사 ‘깜깜’ … 압수수색에 큰 충격


내부 제보… 은밀 내사… 007식 전격작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3월26일 대검 중수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한 데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부속실까지 뒤진 검찰의 전격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기 때문. 정 회장은 특히 검찰이 올 1월부터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은밀히 내사해왔음에도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그룹 법무실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에서 ‘법무실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검찰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법무실의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4월 상임 법률고문 겸 총괄법률실장으로 영입된 김재기 전 수원지검장(사진)이 법무실을 주로 공안검사 출신들로 채우다 보니 현직 특수통 검사들의 움직임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 한 특수통 간부는 “특수부 검사들은 평소 공안검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데, 특히 수사 보안이 철저한 대검 중수부의 내사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검찰을 떠나 현대차로 옮긴 김재기 전 수원지검장 역시 공안통. 그는 1974년 사법시험 16회에 합격해 대검 공안1·2과장 및 공안기획관, 서울지검 공안1· 2부장 등 공안검사의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2000년 검사장으로 승진해 춘천·울산·대전·부산·수원 지검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검찰 내에서는 “그가 현대차 울산공장이 있는 울산지검장을 역임한 인연으로 현대차에 영입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재계에서는 현대차의 경우를 보면서 법무실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현대차와 달리 법무실이 위기 대응을 잘한 그룹으로는 최근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두산그룹과 한진그룹이 꼽히고 있다. 두산그룹 법무실에는 거물 출신은 없지만 다행히 두산그룹 사건 수사팀 검사와 가까운 변호사가 있어 그가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회장 동생들의 고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한진그룹은 서울고검의 재기 수사 명령으로 서울지검에 사건이 배당되자 수사팀 검사와 가까운 변호사를 재빨리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반면 대선자금 수사 당시의 삼성그룹과 분식회계 수사 당시의 SK그룹 역시 현대차 법무실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로 꼽힌다.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검찰이 삼성 대선자금에 대해 상당 부분 밝혀냈는데도 삼성 변호사는 극히 일부만 인정하겠다고 해 오히려 수사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SK 법무실은 최태원 회장 구속 직전까지도 상황을 낙관하는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12~13)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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