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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남자는 시계를 좋아해!

패션 완성 명품으로 손목 위에서 부활 … 기계의 복잡·정교함 선호 오토매틱 인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성공한 남자는 시계를 좋아해!

성공한 남자는 시계를 좋아해!

남성들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시계들. 애비뉴엘의 시계 편집 매장 ‘크로노다임’.

‘당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진정한 사치란 우리가 시간과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문제. 한 남성잡지에 실린 이 어마어마한 광고 카피들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1. 자동차

2. 인상파의 그림 3. 시계 4. 와이프. 정답은 시계, 특히 손목시계다. 이 잡지 3월호는 무려

8쪽에 걸쳐 수십만원에서 수억원대에 이르는 남성용 시계 신상품 85종을 소개하면서 ‘당신의 시선을 흡입하고 당신의 관심을 압축해 소유욕을 폭발시키고, 은행 잔고를 마르게 해줄 것’이라고 충동질한다.



한 백화점 시계 매장에서 만난 남성들의 ‘수다’는 이보다 현란하다.

“시계는 작은 우주의 결정체입니다.”

“오토매틱 시계를 갖는 건 디지털 시대에 대한 저항이죠. 시계의 태엽을 감으면서 생명체를 키우는 기분을 느낍니다.”

“좋은 시계를 차려면 시간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쿼츠나 차라고 하죠!”

성공한 남자는 시계를 좋아해!
휴대전화의 액정시계에 밀려 사라지는 듯 보였던 시계가 남성들의 손목 위로 돌아왔다. 그것도 전자시계가 아니라 아날로그, 배터리를 사용하는 쿼츠가 아니라 태엽으로 감는 오토매틱이다. 손으로 크라운(용두)을 빼서 감아줘야 하는 메커니컬도 꽤 많다. 시계의 견고함이나 정밀도 면에서 보면 최소한 100년은 후퇴했다. 적어도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남성들이 시계를 다시 사기 시작한 건 아니란 얘기다.

시계가 돌아온 데 대한 가장 타당한 설명은, 2000년 이후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커졌기 때문이다.

“X Y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주얼리를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이 있어요. 하지만 시계는 그런 위험 없이 남자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감식력을 시험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취향을 정확히 보여줍니다.”(이충걸, GQ편집장)

우리나라에서 남성시계에 대한 마케팅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은 2년 전부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롤렉스가 공식 수입되고 브래드 피트, 피어스 브로스넌, 존 트라볼타 등 남성 톱스타들이 시계 모델로 나섰다.

수입차 판매 늘어난 시기와 겹쳐

남성들의 시계에 대한 관심은 자동차에 대한 선호의 정도와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양쪽 업계 마케팅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시계 애호가들은 시계 등급을 ‘롤스로이스급’ ‘페라리급’ ‘벤츠급’ 등 자동차 등급으로 나누기도 한다.

자동차가 ‘힘’과 ‘열정’을 상징한다면 시계는 ‘지성’과 ‘예술적 안목’을 보여준다는 것이 남성들의 오랜 믿음이다. 그래서 자동차회사와 시계회사의 공동 마케팅이 빈번하게 이뤄지는데, 영국의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과 자동차회사 벤틀리는 아예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금속 소재와 디자인, 도색 방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 원한다면, 벤틀리를 운전하면서 손목과 계기판에서 같은 디자인의 브라이틀링 시계를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시계 마니아들 중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시계시장에 먼저 불을 붙인 쪽은 물론 여성용 패션시계와 주얼리 시계였다. 패션시계는 배젤(시계 유리를 고정하는 앞부분)과 문자판, 브레스밴드를 화려하게 디자인하고, 옷이나 가방처럼 트렌드를 반영한 시계다. 주얼리 시계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의 보석 세팅을 한 시계로 대개 배터리로 작동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석 장신구들이 유통단계를 거칠 때마다 고율의 특별소비세를 내야 하는 반면, 주얼리 시계는 보석이 붙어 있어도 ‘시계’로 분류돼 통관할 때 세금을 한 번만 낸다는 점 때문에 본격적인 주얼리 마켓을 여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성시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보석이라면, 남성시계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의 복잡함과 정교함이다. 그래서 남성시계 소비자들은 유명한 주얼리나 세계적 패션 브랜드보다 시계 하나만 만들어온 스위스 국적의 장인 브랜드를 선호한다. 세계 최초의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을 비롯해 ‘브레게’ ‘파텍 필립’ ‘오데마피게’ 등이 ‘롤스로이스급’으로 꼽히는 4대 브랜드. 여기에 스위스 시계 명인들의 이름을 딴 ‘로저 뒤뷔’ ‘안투완 프레지우소’ 등도 명성을 누리고 있다.

성공한 남자는 시계를 좋아해!

시계사에서 처음 ‘투르비용’을 갖춘 시계로 유명한 ‘브레게’. ‘투르비용’이 들여다보인다.

“시계란 정확하면 그만이었죠. 그러나 고가 시계들이 공식 수입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 시계의 가치가 톱니바퀴와 작은 부품들이 정교하게 맞아 들어가며 정확한 움직임을 이뤄내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점점 많은 남성들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손으로 만든 기계를 갖고 싶어합니다.”

애비뉴엘 시계매장 매니저 진승현 계장은 “ ‘파인워치’, 즉 남성 고가품 시계 시장에서 오토매틱과 쿼츠의 수요가 9대 1에 이를 만큼 오토매틱(메커니컬 포함)에 대한 선호가 절대적”이라고 덧붙인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시계는 ‘투르비용(tourbillon)’ 종류다. 오토매틱 시계는 중력에 의해 오차가 발생하는데 중력의 방해를 상쇄하는 장치가 1801년 루이스 브레게가 발명한 ‘투르비용’으로, 지금까지 최고가 시계들의 상징이 돼왔다. ‘투르비용’을 가진 브레게 시계의 가격은 최저 1억400만원에서

3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선 공식적으로 2억원대 ‘투르비용’이 판매된 기록이 있다.

정작 남성시계 보는 쪽은 여성

또한 두 개의 시계 시스템을 갖고 있어 초단위 시간을 쪼개서 측정하는 시간기록장치 ‘크로노그래프’, 시침과 분침이 분리돼 정확도를 높인 ‘레귤레이터’, 400년 동안 달력을 맞출 필요가 없는 ‘퍼페추얼 캘린더’, 29.5일이라는 달의 주기를 보여주는 ‘문페이즈(moon phase)’, 남은 동력을 보여주는 ‘파워리저브’, 정교한 시계 무브먼트를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스켈톤’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 중 몇 가지 기능을 함께 가진 시계는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란 이름으로 시계 마니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현재 인기 있는 파인 워치들은 대부분 크로노그래프, 문페이즈, 파워리저브를 갖고 있다.

1892년 오데마피게는 기계장치에 의해 공을 때리는 소리를 알람처럼 들을 수 있는 ‘미니트 리피터’ 기능을 만들어 이름을 날렸다.

단순히 시와 분을 보는 기능 외에 이처럼 복잡한 기능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작전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해군에게 납품되던 ‘파네라이’는 우리나라에도 시계 동호회가 형성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만큼 마니아층이 두텁다. 44~47mm에 이르는 커다란 페이스와 야광 인덱스, 시·분침이 파네라이의 ‘기원’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런 기능이 발휘될 기회는 거의 없다. 현대인에게 오늘 밤 달의 모양을 알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현대의 남성들은 2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사용했던, 지금은 무용한 기능들에 어마어마한 돈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시계에 대한 남성들의 팬터지를 보여주는 예다.

정작 남성들의 시계를 눈여겨보는 쪽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은 남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 그 남자의 시계에 얼마나 많은 기계들이 붙어 있는지 재빨리 파악한다. 우리나라에서 로저 뒤뷔를 판매하는 DKSH의 김현정 과장은 “고가의 파인워치 소비자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남성들이다. 이들은 손목시계에 자동차 값을 쓴다. 웬만한 직장 남성들도 명품 구두를 신고 다니므로 ‘그들과 확실하게 차별화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시아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한국의 한 기업가다. 그는 “사업하는 세계에서 남자의 성취도를 설명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시계와 자동차”라고 말했다.

시계는 남성의 성공을 한눈에 보여줄 뿐 아니라 ‘고맙게도’ 아랫배가 나오고 나이가 들면서 더 잘 어울리는 묘한 성질이 있다. 젊은 꽃미남들의 하늘하늘한 실크셔츠도 그 앞에선 빛이 바랜다. 시계회사들은 남성의 시계에 대한 욕망 속에 다른 ‘수컷’에 대한 견제와 경쟁의 심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100% 활용한다. 시계의 광고 카피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장에서 한 기자가 바쉐론 콘스탄틴의 이사에게 “귀사의 턱없이 비싼 시계들이 방수도 잘 안 되고 충격에도 약하다는 건 문제가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고객들은 평생 물에 손 담글 일도 없고, 망치질할 일도 없다오. 그러니 전혀 걱정하지 마시오.”



주간동아 2006.03.21 527호 (p60~6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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