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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집 나간 ‘행정’을 찾습니다

선거 ‘콩밭’에만 북적, 지방행정은 잡초밭?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너도나도 출마 준비 줄사퇴, 권한대행 체제로 중장기 시책 파행 불 보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선거 ‘콩밭’에만 북적, 지방행정은 잡초밭?

선거 ‘콩밭’에만 북적, 지방행정은 잡초밭?
현역 광역단체장인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국민중심당을 창당해 대표직에 오른 것은 올 1월. 현직 자치단체장이자 정당 대표라는,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이 기록을 만들기 위해 심 지사는 1년여 동안 정치와 행정을 오가는 고도의 줄타기를 해왔다.

심 지사는 신당 창당을 위해 정치인들과의 모임, 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줄잡아 100여 차례 이상 개최했다. 충남도청 출입기자들은 지사 관사를 신당 창당의 터전으로 간주한다. 심 지사는 ‘서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종종 ‘위수령 지역’을 벗어났고, 이를 두고 홍문표 의원(한나라당)은 “충남도지사가 왜 서울로 출근하는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심 지사의 서울행이 문제 됐을 때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당 행사에 관용차와 도 소속 운전기사를 동원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며 책임과 권한 문제를 환기하기도 했다.

심 지사가 도백(道伯)임에도 정당정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5·31 지방선거에서 국민중심당을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정치인으로 변신을 선언한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심 지사는 ‘당연히’ 도정보다 정치 우선의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도백이 본업보다 정치에 매달리다 보니 공무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홍 의원은 “도정 책임자가 정치판을 기웃거리는데 부하직원들이 업무에 전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행정보다 정치가 먼저” 선거 바람 몰아쳐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됐다. 10월30일 국회 농림수산위 충남도 국감장.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이 충남도 고위 공무원 3~4명의 이름을 부르며 일으켜 세운 뒤 “쫛쫛쫛 국장, 내년 지방선거에 쫛쫛군수 출마할 계획인가”라고 물었다.

심 지사와 뜻을 같이할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들의 정치 행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최근 공직을 사퇴한 뒤 지방선거 출마를 노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신당 바람에 휩싸였던 충남도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야 정치와 선거 바람에서 해방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둔 자치단체의 행정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현상은 충남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단체장 및 공직자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는가 하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기초단체장 등으로 인해 자치단체의 행정공백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출마 예정 자치단체장들은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행정보다 정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2월20일 박광태 광주시장은 이날 오전 열린 민주당 중앙당 대표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로 인해 그날 예정돼 있던 광주시 간부회의 및 실·국장회의는 다음 날로 연기됐다. 박준영 전남지사도 같은 시간대에 서울로 향했고, 그가 주재하려던 실·국장회의는 행정부지사가 처리해야 했다.

박 시장과 박 지사는 당분간 민주당의 월요회의에 계속 참석할 예정이고, 이로 인해 그들의 업무 일정은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김환규 광주시장 비서실장은 “다른 업무와 연계해 상경하기 때문에 행정공백은 없다”고 해명했다. 정병재 전남도지사 비서실장도 “도정과 연계된 출장길에 잠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 실장은 박 지사의 20일 서울행에 대해 뒷말이 나오자 “박 지사가 반나절 연가를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개정 선거법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뽑힌 광역·기초 의원은 지자체로부터 매달 세비를 받는다. 광역의원의 연봉은 7000만~8000만원, 기초의원의 경우 5000만~6000만원 수준이다. 이렇듯 연봉이 높다 보니 출마 경쟁이 치열하다. 광역의원 709명, 기초의원 2888명을 뽑는 이번 선거의 경쟁률은 예년 평균 2.6대 1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열에 자치단체장과 공직자들이 합류하면서 공직자들의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공직자들의 줄 사퇴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조관일 강원도 정무부지사는 3월3일 춘천시장 출마를 선언한 뒤 사퇴의사를 밝혔고, 원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최동규 강원발전연구원장은 19일쯤 사퇴할 예정이다. 충북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청 3급 이상 공직자 9명 중 3명이 사퇴했고, 한대수 청주시장도 한나라당 후보로 도지사 선거에 나서기 위해 3일 퇴임했다. 경북은 지난해 말부터 4급 이상 8명, 5·6급 각 1명 등 총 10명이 공직을 떠났다. 전북에선 송웅재 군산시장 권한대행(부시장)이 3일 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했고, 그 뒤를 이을 후보도 부지기수다. 기초단체장에서 광역단체장으로, 시·도의원에서 기초단체장으로 말 갈아타기 등을 이유로 공직을 사퇴한 사람은 2월 말 현재 100여명에 육박한다.

자치단체장이 떠난 자리는 ‘권한대행’이 일을 맡는다. 전북 전주와 정읍, 무주군 등 3개 자치단체는 곧 권한대행 체제로 돌입할 예정이다. 김완주 전주시장과 유성엽 정읍시장, 김세웅 무주군수 등 현직 단체장 3명이 도지사 출마를 위해 머잖아 사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퇴한 송웅재 군산시장 권한대행까지 포함하면 4군데로 늘어난다. 송 대행까지 사퇴하면 군산시는 ‘대행의 대행’ 체제로 돌입한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 대한 일선 공무원들의 믿음은 확고하다. “시스템화한 공조직의 특성상 자치단체장이 빠진다고 해서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경기도 K 국장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한 명. 김환규 광주시장 비서실장도 “(자치단체장이 없더라도) 시스템이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권한대행 신봉파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이들의 주장과 다른 부분이 많다. 권한대행 체제가 되면 전임자의 업무를 넘겨받고 파악하는 데 일정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화급을 다투는 현안 및 정책집행은 불가능해진다. 행정공백의 출발점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현직 단체장들은 3월 말 예비후보 등록 때까지 행정을 선거판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현직을 대신한 권한대행이 소신을 가지고 권한을 행사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차명진 전 경기도 공보관은 “주요 결정사항이나 업무 추진에서 직무가 정지된 단체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거 ‘콩밭’에만 북적, 지방행정은 잡초밭?

2월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 직원들이 공명선거 홍보 포스터 시안을 살펴보고 있다.

그나마 일찌감치 현직을 포기하고 선거판에 뛰어든 경우는 업무 인계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상 공직 제한기한인 선거일 전 60일 사퇴 조항을 들어 3월 말까지 현직을 유지하며 선거와 행정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우 속수무책으로 행정의 정치도구화를 지켜보아야 한다. 심기섭 강릉시장이 ‘동서화합과 균형발전, 글로벌 강원’을 도정 목표로 내세워 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3월6일. 그러나 그는 “대형 산불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이어서 이달 말 법정기일까지 시장직을 유지, 행정공백 현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선거법이 허용하는 5월17일(광역단체장이 광역단체장으로 출마하는 경우 선거 15일 전 사퇴)까지 공직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김 지사 측은 “현행 선거법이 엄격해서 예비등록을 해도 선거운동에 한계가 있다”며 “현직을 유지해야 짧은 시간에 많은 도민들을 만나고 행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며 지사직 유지의 배경이 현역 프리미엄임을 솔직히 밝혔다.

권한과 역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대행 체제의 장기화는 행정의 파행을 불러온다. 현직 단체장이 출마하는 지자체의 경우 주민 복리증진을 위한 각종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싶어도 권한대행이 몸을 사리고 ‘선거 후’를 외치면 불가능해진다. 수도권 기초단체장의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L 씨가 대표적인 경우. 그는 특정 업체의 건설공사 허가문제와 관련, 실무자들이 결정을 요구하자 “단체장이 몇 달 동안 고민하던 것을 내가 어떻게 결정하느냐”며 도장 찍기를 거부했다.

책임 문제가 뒤따르는 모험을 피하려는 몸 사리기에 ‘선거용 시책’이라는 상대 후보의 공격이 가해지면 대행들의 복지부동은 더욱 확실한 명분이 서게 된다. 이들은 중·장기 시책이나 대형 사업 대부분을 차기 단체장 선출 이후로 보류하는 경향이 많다.

‘공직사회는 능력보다 끈이 중요하다’는 줄서기 문화는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또 유력 후보와 연을 맺어 더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눈도장을 찍으려는 현상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두드러지며, 이 또한 행정공백을 앞당기는 주요 배경으로 지적된다.

10월2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홍준표 의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정태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시 소속 국장급 직원 서너 명이 행사장을 찾은 것을 목격했다. 며칠 뒤 정 부시장은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서울시 공무원이 차기 서울시장 후보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줄서기와 편가르기 행태를 질타했다. 정 부시장은 3월9일 전화통화에서 “줄서기 등으로 비칠 수 있는 부적절한 처신을 삼가해달라는 당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 공무원 중에는 1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맹형규 의원(한나라당)의 출판기념회에 얼굴을 내민 사람도 있어 공무원들의 줄서기 행태가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선 조직 풀어지기 십상, 선심행정 등 부작용 유발

정치권에 줄이 없는 출마 후보자들은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지역구 행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공천 구걸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나 도지사 출마 선언식 등은 정치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

2월27일 서울에서 열린 이의근 경북도지사의 출판기념회. 대구·경북을 포함 전국의 기초단체장 30여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날 참석했던 U군의 K 군수는 “행정자치부와 업무협의차 상경했다가 출판기념회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수행하던 한 측근은 “출판기념회 참석 외 다른 일정은 없다”며 다른 말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나라당 고위관계자 K 씨는 “대구·경북 지역 일부 시장·군수·구청장들의 경우 한나라당 공천을 따기 위해 중앙당 간부나 국회의원 등이 많이 참석하는 출판기념회를 찾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월9일 김광원 의원(한나라당)의 경북지사 출마 선언식이 열린 대구 한 행사장에는 김 의원의 지역구 기초단체장 4명이 참석, 선거법 시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노리는 정장식 전 포항시장과 김관용 전 구미시장은 수시로 서울행 KTX에 몸을 싣는다. 정 전 시장의 경우 “지역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중앙 정가에 아는 사람이 적어 경선에 불리하다”며 중앙정치권을 찾는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불출마를 전제로 발령을 받은 뒤 부임한 지 며칠도 안 돼 출마를 선언, 행정공백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경북도 고위 간부 A 씨는 부임 한 달 만인 2월20일 시장 출마를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북도에서 근무하던 A 씨는 6년여 전 행정자치부로 전출됐다가 1월20일 경북도로 돌아왔다. A 씨는 행정자치부 근무 시절 지역 전출을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조직이 이처럼 선거 분위기에 휩싸이면 일선 공무원들의 기강도 풀어지기 십상이다. 공무원들의 기강해이는 선심행정이나 인허가 남발 등 각종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충청권의 한 중소도시 C시. 지난해 말 상품권 교환 등 성인오락실의 도박장을 방불케 하는 오락실 불법영업 등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지만 해당 관청은 아직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 노래방 불법영업도 마찬가지. “좋은 게 좋다”는 선거풍토를 의식, 5월 말까지 민원을 야기하는 단속 등의 행정은 가급적 삼가자는 분위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의 줄서기, 비방 등으로 인한 행정공백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통·반장, 이장도 줄사퇴

후보들 구애 공세 … 선거판으로 갓!


통·반장과 이장, 주민자치위원 등 행정조직의 손과 발도 선거 열풍에 동참했다. 이들은 행정 최일선에서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이를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주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 그들이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구애’를 받고 선거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2월 말 광주 및 전남의 통·반장과 이장, 주민자치위원 가운데 270여명이 사직했다.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난 규모. 경기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3월6일 경기도에 따르면 통·반장과 이장, 주민자치위원장, 향토예비군 소대장급 이상 간부 가운데 322명이 선거를 이유로 사직했다. 충북은 106명, 경북도는 93명이 옷을 벗었다.

현 공직선거법에 따라 통·반장과 이장, 향토예비군 소대장급 이상 간부 중 선거사무 관련 자는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 이 조항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2월 말 사퇴서를 제출했다.

통·반장과 이장, 주민자치위원 등은 지역에서 모두 마당발로 통한다. 주민들의 성향은 물론 이웃 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주민 밀착도가 높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동네에서 여론몰이가 가능하다. 선거에 나설 후보들이 이들을 비장의 무기로 선택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간동아 2006.03.21 527호 (p14~1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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