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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관 징발과 ‘승리 이데올로기’

  •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장관 징발과 ‘승리 이데올로기’

장관 징발과 ‘승리 이데올로기’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4개 부처를 대상으로 개각을 단행했다. 개각은 물론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고유권한이라고 해서 여론의 비판이나 평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개각만큼 대통령의 국정 비전이나 국정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국정 쇄신을 다짐하는 개각도 있고, 국정 안정을 목표로 하는 개각도 있다. 또 민심수습용 개각도 있을 수 있고, 국민화합용 개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번 개각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쩐지 새 인재를 장관에 기용함으로써 국정에 활력을 도모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보다는 5·31 지방선거에 여당 후보로 출마시키기 위해 장관들을 징발하는 정략적 선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장관들이 선거용으로 차출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장관이라면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나랏일을 책임지고 챙기는 중차대한 공직이다. 또 장관마다 소관 부처를 운용하면서 추구해온 어젠다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현직 장관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권층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선거에서 이겨야겠다는 ‘승리 이데올로기’에 젖은 권력 의지의 발로로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선거주의’ 혹은 ‘선거제일주의’가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선거주의’를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양자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선거로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치에서 선거 승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이 아닐까. 국리민복은 견실하고 안정된 국정 운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 정파적 승리에 ‘올인’하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치가 정파적 승리에 집착할 때 국리민복은 오히려 실종될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들어와 장관 징발 현상이 부쩍 늘었다. 2004년 2월 개각에서도 4월 총선을 위해 장관들을 징발한 바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선거 결과가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는 의석과 관계없이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최대 의석은 여당이 갖고 있다. 그럼에도 지방 권력을 탈환하겠다고 개각까지 하는 것은 국정 수행에서 진정성을 자임하는 태도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소모품처럼 사용 ‘후진정치’의 모습



참여정부의 장관 징발 현상이 하나의 순환 고리를그리고 있음도 주목할 일이다. 특정인이 장관이 되면 인지도가 높아지고, 그렇게 알려진 이름을 이용해 선거에 출마하며, 또 선거에서 패한 사람은 구제책이 마련돼 고위 공직자로 임명된다. 악순환이다. 정치의 정도(正道)가 아니라 뒤죽박죽된 정치 장사꾼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거용 장관 징발은 장관을 장기판의 졸(卒)로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장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처사며, 국정 운영 자체도 품위를 잃게 된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다. 가능하기는 하나 이치에 닿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존재로 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선거를 위해 장관이나 고위 공직자가 존재한다면, 국정 운영의 엄숙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오히려 국정을 위해 선거가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정부 여당은 승리 이데올로기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선거 때마다 지명도에 따라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장관, 인기가 있거나 있음직한 인물의 장관 차출을 위한 개각, 이런 일련의 현상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목매는 ‘후진정치’의 행태이지 국리민복을 앞세우는 ‘선진정치’의 모습은 아니다.



주간동아 2006.03.14 526호 (p96~96)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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