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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성이 특급 내조가 며느릿감 0순위”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씨 “감독 마음 읽는 플레이 대견, 나중에 축구행정가 되겠대요”

“지성이 특급 내조가 며느릿감 0순위”

2월7일, 잠시 귀국한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 박성종(48) 씨를 경기도 수원의 자택에서 만났다. 박 씨는 호인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모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말도 시원시원했다. 유머감각 또한 뛰어났다. 언론에 비친 박지성의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

박성종 씨는 아들이 하는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 본다. 연습게임도 빼놓지 않고 경기장에 가서 관전한다. 2월4일 드디어 박지성 선수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 골이 터졌다. 아들이 첫 골을 넣는 순간 아버지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한국에 들어와 있던 터라 TV를 통해 골 장면을 봤다.

“수비 몸 맞은 첫 골 진짜 민망하데요”

“진짜 민망하데요. (공이) 바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상대 수비수 몸 맞고 이상하게 들어갔잖아요. 그날 저녁에 지성이랑 통화했는데 ‘야, 민망하더라’ 그랬더니 지성이가 웃으면서 ‘예, 이상하게 들어갔어요’라고 하대요.”

지금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 나누지만,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초기 시절까지만 해도 부자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박 씨는 그때 아들에게 축구를 시킨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박지성은 PSV아인트호벤에 진출한 첫해 6개월 정도 경기에 출전했는데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고, 이후 1년 동안 쉬어야 했다. 출전한 6개월도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유럽은요, 분위기가 참 희한하데요. 지성이가 성적을 올리지 못하니까 막 욕해요. 맥주 마시던 컵을 지성이한테 집어던지질 않나…. 우리나라 팬들은 잘하지 못해도 박수 쳐주는데 유럽 관중, 그것도 홈 관중이 야유를 보내요. 지성이는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안 그래도 소심한 아인데 홈 팬들이 그러니 성적이 좋아질 수 없었던 거죠.”

박지성에 대한 홈 팬들의 야유는 갈수록 거세졌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박지성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박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솟구치나 보다.

“홈 팬들이 그런 식으로 야유를 보내니 아비로서 화가 나지요. 일본에서는 정상을 달렸는데 이게 뭔가 싶었어요. 돈 많이 받고 이적한 것도 아니고….”

화가 난 박 씨는 일본에 연락했다. 일본에서는 박지성을 원했다. 그는 몇 가지 계약사항을 처리하고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런 박 씨의 결심을 누그러뜨린 것은 박지성이었다.

“지성이가 그래요. 갈 데까지 가보겠다고. 유럽 사람들이 그럴수록 더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고. 무엇보다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요. 마음이 찡했습니다.”

이후 박지성은 한국에 들어와 2개월 정도 훈련한 뒤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박지성의 플레이가 살아났다. 통역, 기자, 홈 팬들…. 모두들 놀라워했다. 유럽 리그에 ‘박지성’이라는 신성(新星)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성이 특급 내조가 며느릿감 0순위”

경기도 수원 자택에 있는 박지성이 받은 각종 상장과 기념패들.

네덜란드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덕분인지 지난해 7월 입단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는 별 탈 없이 잘 적응했다.

“지성이가 소심한 성격이라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질 못해요. 문화적인 적응도 남들보다 더디죠.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유럽 사람들, 유럽 문화를 다 파악했나봐요. 네덜란드에서는 1년 동안 팀 동료들에게 말도 못 붙였는데 지금은 달라요. 맨유 선수들과는 금세 친해졌어요. 루니나 다른 선수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요.”

맨유 입단은 전적으로 박지성의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 네덜란드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국의 축구경기들을 보며 박지성은 “나도 저기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아스날이나 뉴캐슬 같은 팀을 말하는 줄 알았다. 맨유는 워낙 명성이 자자한 곳이라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러던 어느 날 박지성은 아버지에게 비장한 포부를 밝혔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좋으니 맨유에서 1년만이라도 배우고 싶다”라고.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말도 참 많았다.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지성이를 무척 걱정해줬어요. 맨유에서 잘 안 되면 자기에게 다시 오라고도 했죠. 퍼거슨 감독이 지성이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퍼거슨 감독이 얼마나 기다려줄지 모르겠다며 걱정하셨죠.”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서 호평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퍼거슨 맨유 감독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 박지성이 감독들에게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박 씨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지성이는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 않습니다. 스타 기질은 더더욱 없어요. 하지만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를 합니다. 감독의 마음을 읽는다고 할까요. 그리고 플레이가 안정적이라는 점도 감독에게 어필하는 것 같습니다.”

박성종 씨의 입담은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말에 막힘이 없었다. 이따금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가며 리드미컬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를 닮았다면 박지성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지성이는 네덜란드에서, 그리고 지금 영국에서도 여자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말하기를 한국 언론에 지성이가 수줍음을 잘 타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보도된 걸 보면 이해가 안 된대요. 지성이는 할 말 다 하고 말도 무척 많이 하는 매력적인 남자라고요.”

여자친구는 있을까?

“없어요. 지성이도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해요. 네덜란드에는 한국인 여자 유학생이 별로 없었어요. 교민이 한 다섯 명 있긴 했는데 모두 지성이보다 나이가 많았죠. 영국에는 유학생들이 많아서 지성이도 참 좋아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 지성이가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시내를 나가지 못할 정도가 된 겁니다. 이젠 한국에 들어와야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데 그건 더 힘들죠. 올해 스케줄을 보니까 국내에 들어올 날이 거의 없더군요. 엊그제 통화했는데 지성이가 그러더라고요. ‘아빠, 나 결혼은 다 했네.’”

박 씨는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고 싶어한다. 아들을 장가 보내야 박 씨 부부도 일일이 외국에 따라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월드컵이 끝나면 반드시 장가를 보내겠다는 게 박 씨의 생각. 박 씨는 며느릿감의 외모는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재치 있고 슬기로운 여성이면 좋겠다고. 박 씨가 쾌활한 며느리를 원하지만 박지성은 차분하고 조용한 아내를 원한다고 한다.

“지성이는 조용한 여자가 좋대요. 그래서 한마디만 해줬습니다. ‘그래 다 좋다, 하지만 예쁜 여자만 만나지 말라’고요. 예쁜 여자 데리고 살면 평생 고생한다고 말이죠.(웃음)”

혹시 박 씨가 점 찍어놓은 규수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넌지시 물어봤다.

“없어요. 하지만 중매는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전문직 여성들도 있고…. 의사가 있어서 지성이한테 만나보라고 했더니 지성이가 그러대요. 아침에 수술하고 온 사람과 어떻게 사느냐고.”

“여자친구 정말 사귀고 싶어하는데…”

중매 제의는 요즘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박 씨는 안다. 운동선수의 아내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를. 화려함만을 보고 왔다가는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박 씨가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려 하면서도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성이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돼죠. 직장을 가진 여성이 지성이를 따라다니며 내조한다는 건 무리예요. 근데 요즘 자기 일 안 하고 남편 뒷바라지만 하고 지내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남 고흥 출신인 박성종 씨는 몹시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자랐다. 하루 한 끼는 고구마로 때웠을 정도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했다. 그러다 ‘한국금속’이라는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입사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가난의 고통을 뼈저리게 체득하며 자랐기에 그는 아들 한 명만 낳았다. 제대로 못 먹이고 못 가르칠 바엔 하나만 낳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던 것.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란 아버지를 잘 알기 때문일까. 박지성은 특히 유소년 축구에 관심이 많다. 결손가정 아이들이 돈 문제로 축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어한다.

“지성이는 ‘박지성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싶어해요. 지금 구장을 짓고 있는데, 선수용품이나 유니폼 등은 모두 지성이가 후원하게 됩니다. 지성인 자신이 가진 걸 나누면서 살고 싶어해요.”

박지성은 축구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20명의 선수가 있다고 했을 때 감독은 그중 몇 명을 뽑아 경기에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벤치에 남은 선수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런 감독의 역할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 대신 박지성은 축구행정가가 되기를 꿈꾼다.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고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지성이는 선수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가 나와 자신과 교체되는 게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서른다섯 살까지 대표선수로 뛴다면 그건 한국 축구의 후퇴라고 여기죠.”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며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박성종 씨는 오히려 아들 걱정을 했다.

“수원에는 ‘박지성 도로’가 있습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훗날이 걱정됩니다. 지금이야 지성이가 잘하니까 만들어진 건데, 만약 이후에 잘못되면 어떻게 될지…. 사람 일이란 게 알 수 없는 거잖아요. 30년, 40년 후에도 지금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58~60)

  • 김승훈/ 월간 정경뉴스 편집장 대우 shkim@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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