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5

2006.03.07

지방 덩어리가 난치병을 치료?

지방에서 줄기세포 분리 보관 업체 등장 … 실제 치료에 적용까지는 하세월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02-28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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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덩어리가 난치병을 치료?

    휴림바이오셀 부설연구소 전경.

    출렁이는 뱃살’의 주범인 지방. 가능하다면 그까짓 것 대충 떼어내버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불쑥불쑥 솟구치는 이가 적잖을 것이다. 그런데 이 ‘쓸데없는’ 지방을 보관해주겠다고 나선 바이오벤처가 있다. IT(정보기술) 솔루션 기업인 휴림미디어의 자회사 휴림바이오셀(대표 이항규, www.hurimbiocell. com)이 그 주인공. 줄기세포를 이용한 고효율 ‘세포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2005년 7월 설립된 이 업체는 같은 해 11월 말부터 ‘헬프 셀 뱅크(Help Cell Bank)’라고 불리는 국내 최초의 지방줄기세포은행 상품을 시판해오고 있다.

    지방줄기세포(Adipo Stem Cell)는 성인의 지방조직에 들어 있는 줄기세포로 복부나 엉덩이, 허벅지 등에서 추출한 지방에서 분리해낼 수 있다. 지방에서 분리해낸다는 점만 다를 뿐 골수나 혈액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와 같은 기능을 지녀 심근, 뼈, 연골, 뇌신경세포 등 신체의 여러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신체 여러 조직으로 분화 가능

    휴림바이오셀은 바로 이 지방줄기세포를 지방 덩어리에서 분리해낸 뒤 영하 196℃의 액체질소탱크에 장기간 냉동보관하면서 줄기세포를 맡긴 고객이 향후 심근경색·뇌경색·뼈엉성증(골다공증) 등 성인병이나 난치병에 걸릴 경우 해당 세포를 배양·분화해 손상 부위에 주입, 치료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방줄기세포 외에 일반 지방세포도 보관한다. 인체 친화적인 성형 보형물을 개발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휴림바이오셀 도병록 연구소장은 “우리 회사는 골수 등에서 극소량만 얻을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지방조직에서 대량으로 분리한 뒤 배양하는 기술력을 갖췄다”며 “지방줄기세포를 재료로 한 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일반 지방세포를 성형 소재로 활용하는 등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주장한다. 성인 지방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므로 출산율 감소로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는 제대혈(탯줄혈액)은행과 달리 지방줄기세포은행의 시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는 것. 특히 지방조직에서는 제대혈이나 골수에서 얻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고, 지방 자체가 워낙 차고 넘치는 성분이므로 그 이용에 대한 윤리적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지방줄기세포의 ‘원료’ 격인 지방의 확보가 쉽지만은 않다. 이 때문에 휴림바이오셀은 지방흡입술이나 지방적출 시술을 통해 적출물로 폐기되는 지방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성형외과를 주목한다. 이를 위해 지난 설 연휴 직전,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 밀집지역에 지방줄기세포은행 상품 정보를 담은 브로슈어와 리플릿을 돌리며 지방흡입술을 시술받는 환자에 대한 소개를 병원 측에 부탁하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친 것으로 확인됐다.

    간략히 말하면 지방줄기세포은행은 버려도 무방한 지방을 장기간 보관하면서 ‘재활용’하는 ‘생물학적 보험상품’인 셈이다.

    지방 덩어리가 난치병을 치료?
    지방 덩어리가 난치병을 치료?

    지방줄기세포 보관 장비인 액체질소탱크(오른쪽)와 지방줄기세포를 관찰하는 연구원.

    문제는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세포 치료’를 인체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의학기술의 발전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있다. 따라서 고객이 지방줄기세포 보관을 의뢰한다 해도 실제 치료 효과를 보려면 기약 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 경험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지방줄기세포의 활용 영역이 넓고 부가가치도 높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실제 질병 치료에 쓰이려면 임상실험을 거쳐야 함은 물론 까다로운 법적 규제도 충족해야 하므로 실용화 단계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3~4년 전쯤 미국의 한 지방줄기세포은행이 한국 진출을 꾀했다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계획을 철회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관련 연구의 성과가 미흡해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라는 장밋빛 환상은 현시점에서 경계해야 하겠지만, 냉동보관한 지방줄기세포를 본인 얼굴에 주입할 경우 주름이 펴지면서 팽팽해지는 미용성형 효과는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5~6년 전부터 관련 사업을 벌여 지방줄기세포은행의 모태 격으로 통하는 미국 바이오기업 ‘마크로포아(Macropore)’는 현재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한 심장혈관 재생에 대한 임상 2상 실험을 진행 중으로, 아직 실용화하지는 못한 상태다. 일본에서는 2005년 9월 한 연구그룹이 실험 쥐의 지방조직에서 지방줄기세포를 분리해낸 뒤 골수를 재생하는 실험에 성공했고, 휴림바이오셀도 같은 해 11월 4종류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분리한 성체줄기세포를 배양 ·분화해 뇌경색으로 운동성 장애가 나타난 쥐에게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두 사례 모두 아직은 동물 실험에 그칠 뿐이다.

    지금까지 4명만 회원 가입

    다른 한편으로, 지방줄기세포의 보관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다. 회원제 형태로 운영되는 지방줄기세포은행의 보관 비용은 일반 공유형, 일반 소유형, 고급 공유형, 고급 소유형 등 4가지로 나뉜다. 보관기간이 3년인 일반 소유형의 보관 비용은 250만원, 고급 소유형은 350만원이다. 이에 비해 보관기간이 4년인 일반 공유형은 220만원, 고급 공유형은 320만원이다. 공유형은 지방조직에서 분리된 지방줄기세포의 10%를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조건으로 보관기간이 1년 연장되고 요금도 할인되는 것. 일반형과 고급형의 차이는 세포 보관 외에 지방줄기세포의 증식까지 시켜주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4가지 유형 모두 기간 만료 후 고객의 의사에 따라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렇듯 보관 비용이 고가이다 보니 2월22일 현재 지방줄기세포를 맡긴 사람은 단 4명. 이중 3명은 이 업체 임직원의 지인들이다. 지금까지의 매출도 1000만원 정도로 미미하다. 반면 현재 휴림바이오셀이 보유한 냉동보관 장비인 액체질소탱크는 1000명분 이상의 지방줄기세포를 보관할 수 있다.

    휴림바이오셀은 2006년 상반기 중으로 주요 영업대상인 성형외과·피부과·산부인과 병원 530여개 중 30개 이상의 병원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10개가량의 성형외과의원에 그치고 있다. 휴림바이오셀 유석준 부사장은 “보관 비용이 비싼 이유는 주요 고객층을 노후 건강에 관심이 많은 40~50대 VIP로 삼은 데다 5년 보관 비용이 70만원대로 내려갈 정도로 덤핑이 판치는 제대혈은행과 달리 지방줄기세포 보관에 2배 정도 복잡한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방줄기세포은행에 대한 적잖은 의구심에도 일각에선 휴림바이오셀이 선발주자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릴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휴림바이오셀이 앞으로 각광받을 사업 아이템을 잘 잡은 것으로 본다”며 “학구적인 성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많은 양의 지방줄기세포를 뽑아낼 수 있는 지방조직을 지방흡입 시술 후 적출물로 폐기하지 말고 재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논의를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BT(바이오기술)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시대를 앞서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지방줄기세포은행. 이젠 기름 덩어리, 지방도 돈이 되는 세상이 됐다. 과연 ‘은행’엔 지방이 가득 넘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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