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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외교안보 代통령 …‘막강 파워’ 이종석 사단

참여정부 대외정책 조타수로 ‘실세 중 실세’ … NSC 사무처, 대통령 비서실로 편입‘李체제’ 완성

외교안보 代통령 …‘막강 파워’ 이종석 사단

외교안보 代통령 …‘막강 파워’  이종석 사단

국회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1월19일(미국 현지 시간) 한·미 외교부 장관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합의에 대한 이른바 ‘강성 자주파’의 대대적인 반격이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의 형태로 표출됐다.

청와대 자체조사 결과 이 문건이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에 의해 빛을 본(?) 계기는 외교통상부에서 파견돼 청와대 대통령 의전행정관실에서 근무하던 이종헌 행정관이 최 의원에게 ‘별 생각 없이’ 필사(筆寫)를 허락한 탓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 같은 발표에도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번 문건 유출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지내다 2월10일 통일부로 자리를 옮긴 이종석 장관을 겨냥한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보수·진보 양 진영서 지속적 견제

실제로 이 무렵 정치권과 외교가에는 “미국은 노무현 정권이 말만 자주지 실제로는 미국의 뜻에 거의 100% 따라주고 있어 오히려 고마워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돌고 있었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감축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인정 등 일련의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뜻이 관철됐다는 불만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종석 장관이 2003년 3월 NSC 사무차장으로 정식 임명된 뒤 거의 3년 내내 보수진영으로부터 ‘자주파’로 불리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원흉’이라는 거친 공격을 받아왔던 것.

이처럼 이 장관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온 것은 역으로 이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쳐온 실세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NSC 사무차장 시절 이 장관이 본인의 사무실이 들어 있는 청와대의 출입기자는 물론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등 4개 부처의 출입기자를 상대로 번갈아가면서 거의 매달 오찬 간담회를 해왔던 사실은 이 장관의 위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이 장관의 ‘막강 파워’는 통일부 장관 입성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 ‘작전계획 5029’ 논란, 용산 주한미군기지 이전협상 등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의 내사를 받으며 여러 차례 ‘낙마’위기를 겪었지만 노 대통령은 그때마다 이 장관을 ‘재신임’했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서도 이 장관의 ‘사상적 편향성’과 행정 경험 부족 등을 제기하며 장관으로는 ‘절대 부적격’이라는 여론 조성에 나섰지만, 노 대통령은 오히려 이 장관에게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토록 해 전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전임자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지난해 12월 말 통일부 장관 퇴임 직전 노 대통령과의 조찬 회동에서 이 장관을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NSC 관계자는 “이 장관의 최대 강점은 윗사람의 생각을 귀신처럼 읽고 마치 입 안의 혀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장관은 NSC 상임위원장이지만 NSC 내부 조직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정 전 장관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을 했고, 정 전 장관도 이 장관에 대한 바람막이 구실을 해줬다”며 “둘은 절묘하게 서로를 보완해주는 찰떡궁합이었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代통령 …‘막강 파워’  이종석 사단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서주석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서동만 상지대 교수,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 김근식 경남대 교수

NSC 사무처가 대통령 비서실에 편입되면서 2월15일 새롭게 대오를 갖춘 청와대 외교안보팀의 면면을 보면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떠돌던 ‘이종석 체제’가 마침내 그 진용을 갖추고 완성됐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에 임명된 서주석 전 NSC 전략기획실장은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내 이 장관을 보좌해온 ‘이종석의 사람’이다.

서 수석은 친(親)이종석 이미지 탓에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자리에서 제외될 뻔하기도 했다. 논란이 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 문제에서는 이 장관보다 국방전문가인 서 수석의 책임이 더 컸다는 것이 ‘서주석 비토세력’의 시각. 실제로 인사발표 전날에는 서 수석이 아닌 제3자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결과는 이 장관의 지지를 받은 서 수석의 부활이었다.

서주석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 부활

서 수석의 부활과 관련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봉조 통일부 차관의 퇴임과 관련된 내용. 이종석 장관은 NSC 사무차장 시절 1년 3개월간 정책조정실장으로 호흡을 맞춰온 이 전 차관의 유임을 강력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전 차관은 ‘이종석의 NSC’ 내에서 이 장관과 뜻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정통 관료 출신으로 부처 간 협력과 내부 의사 조율에 큰 구실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이 장관의 적극 천거에도 △차관 재임기간이 1년 6개월이 넘었고 △지난해 정부 부처 평가에서 통일부의 혁신부문 점수가 최하위권이었으며 △일부 통일부 직원들 사이에 조직의 화합과 소통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통일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서주석 실장이 되살아난 것은 이봉조 차관의 퇴임이 큰 힘이 된 것 같다”며 “청와대로서도 이 장관이 적극 추천한 사람 모두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보정책실 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된 박선원 전 NSC 행정관은 노 대통령 정권인수위원회 시절 통일외교 분과에서 이 장관과 호흡을 맞춰왔으며, NSC에서도 3년간 동고동락해온 인물. 연세대 82학번으로 운동권 출신인 박 비서관은 6자회담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왔으며, 지난해 9·19 공동성명이 나올 당시에는 ‘창의적 모호성(creative ambiguity)’이라는 전략을 수립해 북한의 핵 폐기와 6자회담 참가국의 경제적 보상을 맞바꾼다는 틀에서 합의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정동영 의장은 사석에서 여러 차례 “박선원은 제갈량이고 꾀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현실정치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이종석 장관의 본업은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다. 1993년 성균관대에서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통해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주체사상과 유일지도체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딴 뒤 2002년까지 세종연구소에서 북한 문제만 다뤄왔다.

그런 그가 외부세계와 접촉을 한 것은 석사 2년차이던 1988년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중심이 된 ‘한국정치연구회’에 들어가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곳에서 서동만(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상지대 교수,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 김연철(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조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길을 달리하고 있지만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와도 1997년에 만들어진 ‘북한연구회’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북한대학원 대학교 유길재 교수,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 등도 이 모임에서 북한 문제를 놓고 이 장관과 토론을 벌이던 멤버다.

‘세븐일레븐’ 실무 전문가형 장관

하지만 ‘학자 이종석’이 오늘날과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뒤에는 ‘햇볕정책의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역할이 지대했다. 이 장관 스스로도 “1994년 세종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데는 임 전 장관님의 도움이 컸다”고 이야기할 정도. 실제로 당시 세종연구소는 이 장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지만 임 전 장관이 적극적으로 이 장관을 천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임 전 장관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에서 햇볕정책을 설계하고, 1998년 DJ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으로 활약할 때 이 장관은 햇볕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고 여론 조성을 하는 데 적극 협력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이 장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식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임 전 장관이 DJ의 대북특사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도 임 전 장관의 옆을 지켰다. 동북아시대 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의 인연도 이즈음에 본격화된다.

문 교수는 이 장관을 한마디로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실용주의자”라며 “이 장관을 좌파 성향의 ‘이데올로그’로 바라보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장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소장 학자도 이 장관과 서동만 교수를 비교하면서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고 할 정도로 이 장관은 대통령의 의지를 정책에 잘 반영해왔다. 현 정부 출범 당시 노 대통령과 더 가까웠던 서 교수에 비해 이 장관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단적으로 표현하면 서 교수와는 술 한잔 하면서 함께 울분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장관은 그러기에는 좀 건조하다는 평가가 맞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인간성’에 대한 세간의 평가야 어떻든 이 장관의 타고난 성실성과 업무 열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NSC 사무차장 시절 평균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돼야 퇴근한다는 뜻에서 ‘세븐일레븐’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실무 전문가형인 이 장관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의 중책을 무리 없이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당장 꼬일 대로 꼬인 북한 위폐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이종석 체제’가 당면한 현안이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8~10)

  •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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